2019. 8. 20. 10:01

스트레이트-증오 주식회사와 죽음의 외주화

증오 산업이 뜨고 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증오 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있는 무리들이 있다. 국내 만이 아니라 세계 공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증오와 공포를 앞세워 극단적 혐오를 만들어 이득을 보는 집단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시대가 변하며 그 기회와 접근성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죽음의 외주화 역시 이제는 보다 체계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외주의 외주를 통해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노동자는 언제 사망해도 이상할 것 없는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이런 체계는 정교하게 굳어지고 있어 쉽게 개선하기도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바꿀 수 있다.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집단 이기심이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꾼들 집단이 가장 큰 가치로 두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하게 국민들을 위한 가치 창출과 국가를 위한 봉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정치꾼들 중 몇이나 이런 가치에 집중하고 있을까? 국민 대다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폐기 처분되어야 할 집단들 중 가장 1순위는 정치꾼들이다.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꾼들만 모여 자신들의 안위에만 급급한 현실은 우리의 불행이다. 국회를 마치 자신들의 망나니짓을 무한대로 해도 좋은 공간 정도로 생각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정치를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직업 정도로 인식한 자들은 그렇게 모여 집단 이기주의로 자신들의 권력만 강화시켜나갔다. 수많은 특권에 둘러싸여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민들을 능욕하는 무리들은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말 존경할 수 있는 정치인들도 존재하지만 이는 정말 극소수라는 사실이 불행이다. 

 

극우 세력들과 정치꾼, 목사 집단, 유튜버 등이 하나의 이익 집단이 된 모습은 그래서 기이함으로 다가온다. 거리에 나가 구호를 외치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당연한 가치일 것이다. 하지만 도를 넘어서면 민폐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텐트 정치를 펼치는 정당의 가치는 그들 만을 위한 논리일 뿐이다.

 

한국 기독교의 시작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은 많이 하고 있다. 철저하게 정치적인 뿌리로 시작된 종교는 정상일 수 없다. 독재자와 함께 성장한 기독교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기괴한 주장을 하는 정치 목사들이 양산되도록 만들었다. 목회자라고 할 수 없는 자들로 인해 신성한 기독교인들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극우 상품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광장에서 잡다한 상품을 파는 것부터 종교를 앞세워 극단적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다. 가짜 뉴스를 양산해 아무렇지도 않게 퍼트리는 유튜버까지 이 먹이사슬은 하나라도 끊어지면 안 되는 공생 관계다.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하나의 세력화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런 시스템을 움직이는 가장 큰 가치는 하나다. 이념이나 사상이 아닌 돈이다. 그 모든 것에는 돈이 존재한다. 돈이라는 가치가 사라지는 순간 이 모든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허망하기만 하다. 그들에게는 돈이 하나의 신흥 종교 정도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남의 글들을 훔쳐 블로그를 채우며 죄의식이라고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한심한 네이버 블로그 '힘내라 맑은물'의 행태는 경악스럽다. 수많은 이들의 글들을 무단으로 채우며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이런 자가 '정의'를 앞세워 개인적 이익에만 집착하고 있는 모습은 황당할 뿐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은 모든 것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는 돈이 존재했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도 팔 기세였다. 그렇게 체계화된 외주화는 이제는 굳어져 일상이 되어버렸다. 기업의 최고 가치는 결국 수익 극대화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오직 돈에만 집착하는 기업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이를 규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정책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하나 바뀐다고 사회 시스템이 바뀌는 세상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보다 체계적으로 이를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동의도 필요하다.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도 사망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라도 사망할 수밖에 없는 작업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회적 논란이 일고 지적을 받아도 사업장은 변하지 않는다. 국가 역시 이런 사업장에 강력한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위함인가?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때로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는 한다. 독재주의 국가라면 문제가 있는 사업장을 당장 폐쇄하고 사업자를 극형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오히려 악을 바로잡는데 취약하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을 사는 돈은 그렇게 악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고는 하니 말이다. 

 

민주주의 완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과정을 계속 함께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국민들이 해왔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결국 국민들이 만든 역사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여정을 이어가야 한다. 촛불로 이룬 변화는 한꺼번에 천지개벽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그저 시작이 되었고 이제 더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 시점이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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