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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binet 묵은 기억들

더 플랫폼-파격적 설정으로 만든 또 다른 설국열차

by 자이미 2020.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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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계층 갈등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원작이 품고 있는 가치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잘 풀어냈던 이 작품의 또 다른 버전이 등장했다. 한정된 공간을 떠도는 기차가 아니라 수직으로 연결된 갇힌 공간 속에서 계층 갈등을 극대화 한 <더 플랫폼>은 분명 <설국열차>에서 파생된 작품이다.

 

스페인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자본주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섬뜩하기도 하다. 갈데르 가스텔루 우루티아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더 플랫폼>은 2019 시체스 국제영화제 오피셜 판타스틱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직으로 연결된 2인실에서 거주하기만 하면 된다. 일정기간을 수료하면 나갈 수 있는 이 공간은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이들도 있고, 감옥이 아닌 이곳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정중앙에 거대한 사각의 공간이 존재한다.

 

중간의 거대한 빈공간은 하루 한 번 만찬이 차려진 음식이 일정한 속도로 내려간다.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그 공간을 오가는 이 식탁에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 매일 최고의 요리사들이 성찬을 만들어내는 이 홀의 문제는 이 만찬을 모두가 나눌 수는 없다는 것이다.

 

1층부터 원하는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 이는 당연하게도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음식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체계적으로 아끼며 나누면 모두가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이를 어기는 순간 모든 것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30일마다 한 번씩 랜덤으로 층이 바뀐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죽음의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 고렝(이반 마사귀)은 자원해서 이 실험에 참여했다. 수료 후 얻어질 가치를 생각하고 참여한 그와 달리, 첫 공간에서 함께 하는 트리마가시(조리온 에귈레오르)는 정신병원 대신 이 홀을 선택했다.

 

개인별 원하는 한 가지 물품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이 공간에 고렝은 책을 들고 왔다. 고렝과 달리, 트리마가시는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칼을 지니고 있다. 이곳이 처음인 고렝과 달리, 나이 든 트리마가시는 익숙한 듯 수직 공간을 내려오는 거대한 식탁이 내려오자 거침없이 먹기 시작했다.

 

황당한 상황에 며칠은 먹지 않았지만 굶으며 버틸 수는 없는 일이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먹고 남긴 것을 먹는 구조. 이 구조에 익숙한 트리마가시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고렝은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나마 모든 것이 익숙해지려는 상황에서 고렝은 식탁과 함께 내려온 여성에 놀랐다. 미하루(알렉산드라 마상카이)는 아이를 찾는다며 그렇게 식탁을 타고 공간을 이동하고 있었다. 누구도 믿지 않지만 고렝은 미하루에 공감하고 있었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층이 아닌 바닥으로 떨어진 고렝은 당황했다. 트리마가시는 고렝을 꽁꽁 묶어두고 있었다. 이 상황이 섬뜩한 이유는 트리마가시가 이전 층에 있으며 들려주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신도 트리마가시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고렝을 도와준 것은 또 다른 섬뜩한 존재인 미하루였다. 아이를 찾아다니는 미하루는 최악의 순간 고렝을 살려냈다. 트리마가시와 다를 바 없이 야만적이고 공포스럽지만 미하루는 고렝을 적이나 사냥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무작위로 주어진 층. 그 층은 하나의 계급이다. 그 계급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생존에 절실한 식사를 마음껏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나뉜다. 위로 갈수록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수직 자기 관리센터'라고 불리는 곳에서 근무하던 이모기리(안토니아 산 후앙)가 이 공간에 들어오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더 플랫폼>은 분명 흥미로운 영화다.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일상은 우리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안에서 펼쳐진다. 계급으로 나뉜 우리 사회의 단면이 그 홀에 존재하니 말이다.

 

공평하게 나눈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발적 연대는 불가능하다. 모두가 연대하지 않으면 효과를 낼 수 없으니 말이다. 이모기리와 달리, 고렝이 택한 강압적 연대가 오히려 일시적 효과를 드러낸다는 점도 너무 사실적으로 섬뜩하다. 

 

감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천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과연 정상적인가? 하는 의문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그 과정을 찾아가려는 노력은 그래서 이 영화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고 있다. 

 

신분제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그런 풍경을 화려한 만찬이 차려진 움직이는 식탁으로 표현한 <더 플랫폼>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삶과 직결된 음식을 지배하는 권력. 그리고 이에 반응하는 인간 본성을 탐구하듯 들여다보는 이 영화는 너무 사실적으로 끔찍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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