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29. 11:24

보건교사 안은영-제옷 입은 정유미가 만들어낸 젤리월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보건교사 안은영>이 화제다. 지난 25일 공개된 6부작 드라마는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장르라는 점에서 반갑다. 기존 방송사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파격적인 설정과 세계관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 충분했다.

 

귀신을 보는 퇴마사 안은영(정유미)은 친구의 소개로 목련고의 보건교사로 가게 되었다. 간호사였던 안은영이 그 학교로 가면서 모든 일은 시작된다. 평범해 보이지만 뭔지 모를 독특함이 가득한 그 학교에서 갑작스럽게 젤리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교사들에게도 인기가 없는 한문교사인 홍인표(남주혁) 반 아이가 젤리의 습격을 받으며 안은영의 진가는 빛을 내기 시작한다. 해파리라고 불리는 성아라(박혜은)을 좋아하던 오승권(현우석)은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농구부 주장이 공개적으로 아라에게 프러포즈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영혼은 사라지고, 오직 아라에게 자신이 먼저 고백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목련고의 비밀 공간이 지하실이 은영에 의해 열리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인표와 함께 들어간 지하실에는 은영만 보이는 젤리로 가득했다. 거대한 젤리들을 상대로 싸우는 은영과 장난감 칼로 허공을 휘젓는 듯한 모습이 당황스러운 인표. 하지만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문을 인표는 열고 만다.

 

아무도 지하실에 가서는 안 된다는 할아버지인 이사장의 말을 어기고 들어간 그곳에서 모든 것의 중심이 인표에 의해 열리고 말았다. 그렇게 땅속에 갇혀 있었던 거대한 젤리가 세상에 나왔고, 아이들을 집어삼키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난감 총과 칼로 무장한 은영의 대활약은 시작된다. 기괴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자연스럽게 빠져들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최고의 드라마로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칫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더는 봐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명확하게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퇴마와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는 너무 많다. 이제는 좀비도 식상해질 정도로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민하게도 이 드라마에서는 귀신을 '젤리'로 표현했다.

 

젤리가 등장하며 호불호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이 가지는 가치가 드러난다. 귀신을 젤리로 치환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전 세계적 소통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 셈이다.

이번에 공개된 이야기는 6개다. 2015년 정세랑 작가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이경미 감독과 함께 각색을 한 작품이다.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퇴마사 이야기가 이렇게 재기발랄한 드라마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성취다.

 

이경미 감독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할 수밖에 없다. 2008년 <미쓰 홍당무>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이 감독은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강렬한 잔상을 남긴 <미쓰 홍당무>가 품고 있는 가치는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2016년 작인 <비밀은 없다> 역시 아쉬운 작품이다.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큰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비밀은 없다>에서 수많은 비밀을 가진 딸 미옥의 모습은 안은영 혹은 그 세계관에 존재하는 누군가와 닮아있다.

 

평범하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비범함을 가진 이들의 '쿨'하지만 뜨거운 이야기를 만들어왔던 이경미 감독이라는 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은 특별했다. 여섯 개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이 여전히 단단하고 충분히 확장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원작의 힘과 이경미 감독의 독특한 세계관과 집요함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은영 역할을 한 정유미가 없었다면 이 드라마의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찰진 욕과 독특한 상황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한 정유미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정유미는 영화 <염력>에서 기괴한 존재감을 지닌 홍상무로 등장했다. 기존의 역할과 비교해보면 더욱 기괴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정유미의 모습이 오히려 더욱 찰지게 다가왔다는 점에서 안은영 역할은 인생캐가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귀신을 젤리처럼 보던 아이가 성장해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무리들과 맞서 싸우는 보건교사가 되는 기괴하지만 흥미롭게 매력적인 이 드라마는 정유미가 아니라면 소화하기 어렵다. 이미 안은영이 되어버린 정유미는 대체 불가였다.

 

이 드라마를 보며 일드나 세계관을 언급하는 이들도 많았을 듯하다. 국내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복합장르적 구성이다 보니, 이런 식의 세계관을 자주 만들었던 일드와 비교될 수도 있어 보인다. 교복 역시 일드에서 보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도 있어 보인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넷플릭스에서 제작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는 어느 한 국가를 특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지만 한국적인 요소들이 배제된 채 복합적인 문화가 가득하다. 안은영의 캐비닛에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듯 말이다.

 

6회로 마무리되기에는 너무 아쉬운 드라마다. 이미 시즌2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킹덤>의 성공처럼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시즌제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독특한 세계관과 귀신을 젤리로 대체해 만들어낸 기괴한 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음이 기다려진다.

 

[글이 마음에 들면 공감과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반응형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