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1. 11:02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샘 해밍턴의 존재감과 집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집은 뭘까? 당연하게 집은 거주 공간이어야 한다.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는 집을 재물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부동산 투기꾼들에게 집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돈만 벌려는 자들에게 집은 그저 오직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거주가 목적이 아닌 집은 당연하게도 거주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 투기꾼들만 가득한 세상에서 오직 삶을 살기 위해 집을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서울에 거주하는 천만 인구는 다 목적이 있어 그곳에 거주한다. 일자리를 찾아 상경하고, 그렇게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그곳이 이제는 더는 거주하기 어려운 공간이 되고 있다. 인구 밀집이 고밀도로 이어지며 사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공간이 되었다.

 

수요가 많으니 투기꾼들이 늘어나고 그렇게 돈벌이 수단으로 집을 거래하며 실거주를 원하는 이들은 이들의 볼모를 잡혀 돈을 강탈당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투기꾼들을 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미 고착화된 그들은 견고하다.

 

부동산업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언론과 정치권력까지 투기꾼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명한 답안일 수도 있다. 물론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점에서 한계는 명확하지만 말이다. 특정 지역의 수요를 줄이면 당연히 투기꾼들의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SBS에서 방송되는 <나의 판타집>이 말 그대로 로망을 실현시키는 집을 찾아 하루 실거주를 해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재미적 요소가 뛰어나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MBC의 <빈집 살래>는 서울에서 재건축을 통해 거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빈집 살래>와 정반대의 방향성을 가진 것이 JTBC의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다. 서울을 벗어나 사람답게 살아가자는 취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서울만 벗어난다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세상의 이야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일자리 때문에 서울에 살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 하지만 언론이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부동산 투기도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거주가 아닌 오직 투기의 목적이 된 집은 그렇게 인간들의 영혼까지 좀먹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반대만 해오던 언론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투기꾼과 동일한 존재들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삶이 아닌 재물에 탐닉하는 한심한 자들의 협작질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을 벗어나 거주하는 삶에 대한 고찰은 반갑게 다가온다.

 

땅까지 포함해 5억으로 자신의 로망을 실현시킨 집을 지어 사는 것은 서울을 벗어나면 가능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의 로망을 실현시킨 양평 우리집을 보면 왜 서울에 살아야 하는지 의아할 정도다. 완벽한 오디오 시스템과 영화 감상까지 가능한 그 공간 하나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존재하니 말이다.

 

야외 활동 자체에 관심이 없었던 아내는 마당이 있는 집을 가지자 꽃과 나무를 심는 취미가 생겼다고 한다. 남편을 위한 공간이 이제는 가족 모두가 즐기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도 행복한 경험일 것이다. 그렇게 가족들이 더욱 가까워지니 말이다.

 

언덕 위 하얀 집을 실현하고 살아가는 충북 보은의 리조트 같은 집은 깔끔함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하얀색인 그 집은 집 내부와 테라스의 규모가 동일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이 집은 모든 것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막히는 것이 없는 시골에서 실현할 수 있는 보은의 '유리의 성'은 어쩌면 한번쯤은 살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가능한 많은 창을 내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개방감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는 불가능한 호사다.

 

이 집의 핵심은 안방의 세 면이 통창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유리집의 묘미는 매력 그 자체였다. 유명한 글라스 하우스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 이 방의 진가는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에 집이 많지 않다는 점과 블라인드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런 고민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런 고민보다는 밤에는 별들을 안방에서 직접 볼 수 있고, 사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보은의 우리집 주인이 밝혔던 집의 가치는 부동산 투기꾼들이 판치는 나라에서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집을 재화로 보지 않고, 평생을 함께 하는 공간의 가치로 본다는 점이다. 마치 또 다른 가족처럼 생각하는 가치관이 곧 행복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생 아파트라는 닭장과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보은 우리집 주인은 그래서 많은 통창을 낸 이유이기도 했다. 답답한 도시의 삶이 아닌 통창으로 모두 열린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모두의 로망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에는 샘이 필요하다. 고정 MC 중 한 자리를 비워 다양한 게스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자리에 샘이 자주 등장하며 그의 진가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아이들의 로망을 채운 집들이부터 시작한 샘의 집들이는 시간이 갈수록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집에 대한 관심이나 통찰력을 갖춘 이가 필요하다. 박하선이 준 전문가 수준으로 집에 대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샘이 또 다른 방식의 준 전문가의 가치를 보여준다면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는 더욱 알찬 방송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더욱 송은이와 찰떡궁합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은 집. 하지만 여전히 집이 없어 힘겨운 수많은 이들. 전문 투기꾼들과 이를 옹호하는 언론과 권력 집단들이 모든 것을 망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프로그램이 던지는 의미와가치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 전체를 부동산 투기꾼으로 만들려 노력하는 한심한 상황 속에서 집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는 다양한 '하우스 예능'이 늘어나는 것은 흥미롭고 서글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집의 가치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된다면 투기꾼을 몰아내고 스스로 투기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선기능도 작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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