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5. 10:45

한국 드라마는 왜 복수에 빠졌나?

한국 드라마에 복수 대행 혹은 사적 복수가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하나의 재미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사회 현상의 반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변화는 시민들이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다. 삼권분립이 되어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법치주의는 법에 의해 사회가 움직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나라가 법치주의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법치주의 국가는 역설적으로 법이 악용되는 경우가 일상이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 복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복수극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복수 대행 서비스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나온 드라마는 목적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이 정도면 노골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주 종영한 <빈센조>도 복수극이다. 부모와 관련된 복수가 근간이 되어 악랄한 거대 기업 회장의 만행을 처단하는 형식도 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을 다루는 자들도 포함되는 것은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다. 가장 악랄한 존재로 법조인들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범택시>는 이런 복수 열풍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드라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피디 출신의 연출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와 가치는 더욱 커진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알>의 드라마 버전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실제 <그알>에서 다뤘던 소재들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모범택시>의 재미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사건들을 드라마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은 범죄자들이 드라마에서는 끔찍한 처벌을 받는다. 물론 드라마에서도 악인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사법기관을 비꼬고 조롱한다. 그래서 그들은 복수 대행 서비스를 만들었다.

 

학폭에서 사악한 불법 비디오 유통한 웹하드 회장의 만행까지, 여기에 보이스피싱을 다룰 다음 회차까지 <모범택시>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사건들은 특이하지 않다.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만든 창작물이 아니다. <모범택시>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말 그대로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한 수많은 사건이 그대로 재현된다. 실제 존재하는 범죄자들의 범행이 그대로 재현된다는 점에서 더욱 끔찍함으로 다가온다.

 

드라마는 가상의 공간이다.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현실과 괴리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범죄물의 경우 안도감을 가지게 만든다. 물론, 로맨스의 경우 선망의 감정을 선사하기도 한다. 드라마라는 장르는 실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모범택시>는 이 환상 속에 현실을 심어놨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에 여전히 강렬하게 각인된 악랄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현실과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통쾌함을 얻고는 한다.

 

웹하드를 운영하며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는 전관들을 내세워 징역 5년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했다. 엄청난 수익을 지금도 받아가고 있는 웹하드 사건은 그래서 끔찍하다. 불법 동영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벌금은 천만 원이 조금 넘는 것이 전부다.

 

드라마에서 그 엽기적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죽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이런 자들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드마라는 던지고 있다. 현실에서는 법의 비호를 받으며 돈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지만, 드라마는 단죄를 했다.

 

많은 이들이 이 복수극에 끌리는 이유다. 왜 현실 속에서 법은 범죄자의 편에 선 것일까? 법치주의라면서 왜 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 그들은 존재해야 하는지 의아한 이들은 너무 많다.

 

법은 법을 전공한 자들의 싸움이다. 일반인들이 법 기술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보니 돈을 가진 자들은 돈으로 법 기술자들을 산다. 그들에게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돈의 가치가 최우선인 괴물들이기 때문이다.

 

대형 로펌이라는 곳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들은 오직 돈을 가진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 기술자 모임이다. 그들이 공정함과 정의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존재한다면 그는 동화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돈이면 뭐든 가능한 시대다. 법치주의는 결국 돈으로 인해 훼손되고 왜곡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법을 이야기한다. 법을 기만하는 법 기술자들과 공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하는 자들 사이에 간극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도 없다. 

 

법복을 입고 형 집행을 하던 자가 다음날 대형 로펌에 가서 자신이 형을 내린 자에 대해 비호하는 것이 현재의 법이다. 그렇게 법이 만들어가는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법에 대한 불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복수를 다룬 드라마가 성행하고, 그 안에 부도덕한 법조인들이 항상 등장하고 조롱받고 죽어야만 속이 시원해지는 일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다. 현실에서 사법 개혁을 막기 위해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그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봐왔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정의를 드라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현실은 절대 정의롭지 않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괴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복수극은 큰 환호를 받지만, 검찰들을 비호하고 미화하는 드라마에는 조롱이 쏟아진다. 이게 바로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복수를 담은 이야기들은 더욱 성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안에는 법조인에 대한 조롱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법을 돈주고 사는 물건으로 만든 자들에 대한 불만은 그렇게 드라마를 통해 재현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니 말이다. 돈만 있으면 법 기술자들을 사서 법을 이용할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에서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따를 수밖에 없다. 사적 복수를 유도하는 법치주의 국가의 문제를 법 기술자들은 알고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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