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5. 12:34

밤쉘-극우 폭스TV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성들이 주인공이고 성범죄의 희생자라는 이유로 <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하 밤쉘)>을 단순한 여성영화 정도로 언급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하게 여성영화가 아닌 권력 범죄를 다룬 영화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언급할 뿐 남과 여를 나눠 논란을 부추기는 영화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 영화는 실제 벌어진 사건을 영화화했다. 실제 이 사건을 다룬 TV 드라마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서 폭스 사건은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급격하게 확산되며, 폭스 회장의 성범죄 역시 터졌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남자가 여성을 성착취했다는 점에서 이를 단순한 여성 영화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남자가 여자를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했다며 고발하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권력이 만든 범죄라는 점에서 남과 여의 위치가 달라져도 동일한 범죄는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꼭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한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모두를 이롭게 한다면 그건 잘된 일이지만,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완장질'은 인간의 고유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본연의 욕망을 억제하고 합리적으로 완장의 가치를 실현하는 이들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완장은 악한 행동으로 이어지고는 한다. 그런 점에서 <밤쉘>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폭스 방송은 미국을 대표하는 극우매체다. 루퍼트 머독이라는 미디어 황제가 만든 폭스의 CEO인 로저 에일스의 성범죄를 다룬 <밤쉘>은 그저 말초적인 자극을 위해 사건을 휘두르지 않고, '권력'에 방점을 찍고, 이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로저 에일스는 공화당 소속 대통령들인 닉슨, 레이건, 부시 대통령과 줄리아니 뉴욕 시장의 언론 컨설턴트를 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이런 능력이 머독의 눈에 띄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방송사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켰다.

 

페이퍼 언론은 다양한 정치적인 색을 띠었지만, 방송만큼은 중립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머독이 폭스를 만들며 극우 언론을 표방하며 이 철칙은 무너졌다. 이에 반하는 CNN이 반대편에 서며 미국 언론은 자극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진정한 괴물인 머독으로 인해 미국 사회는 양분되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미국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이제는 복원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미국 사회는 대립과 분노만 가득한 곳으로 변모했다. 이 모든 것은 호주 출신 머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2016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폭스는 트럼프의 편에 서서 그에게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여성 앵커가 트럼프에 맞서는 상황이 발생한다. 폭스의 간판 앵커인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와 미스 아메리카 출신의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이 트럼프와 대립하며 균열은 시작되었다.

트럼프의 막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그런 트럼프를 공격한 메긴과 그레천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간판인 메긴은 폭스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타사 출신의 그레천은 좌천될 수밖에 없었다.

 

그레천은 좌천된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폭스에 반하는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로저가 추구하는 뉴스는 여성 앵커의 성적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다. 무조건 짧은 치마를 입어야 하고, 카메라는 여성 앵커들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둔 폭스이기도 하다.

 

모든 전권을 가진 로저는 성공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성상납을 받고 앵커 자리를 줘왔다. 물론 모든 여성 앵커들에게 성상납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며 권력질을 한 로저의 행태는 용기있는 그레천의 고소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여성의 성을 상품으로 포장해왔던 로저에게 크레천은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로 방송에 나서는 등 여성의 가치와 삶에 대해 폭스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던졌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로저에 의해 그레천은 해고를 당하고 본격적인 법정 투쟁은 시작되었다.

 

이미 폭스의 행태에 신물이 난 그레천은 오래 전부터 이들의 성적인 희롱들을 참지 못하고 법적인 준비를 해왔다. 머독이 이끄는 폭스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기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로저였다. 개인에 대한 고소를 머독이 전면전으로 나설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영화는 거대한 미디어 기업을 이끄는 루퍼트 머독을 정면 조준하지 않고 폭스를 이끈 로저 에일스에 집중해 권력형 비리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 해쳤다. 이 영화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는 점에서 실존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메긴과 그레천 모두 실존 인물이고 로저와 맞서 싸운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 인물로 등장한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은 실존 인물이 아닌 만들어낸 캐릭터다. 그런 점에서 그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적용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케일라가 로저에게 불려가고, 그곳에서 승진을 보장받기 위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그레천이 고소를 시작하고 폭스 전체가 들썩이는 상황에서 케일라는 메긴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중요한 발언을 한다. 당신도 당했다면서 왜 말해주지 않았냐고 한다.

이 문제를 언급하고 해결했다면 지금까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케일라의 발언은 감독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 혼자 참고 넘기면 된다는 생각이 결국 로저와 같은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케일라라는 인물은 실존인물들인 메긴과 그레천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실존인물들로 할 수 없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밤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케일라다. 성공에 대한 욕심과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공정한 기회를 주고 그렇게 경쟁해 성공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이 곧 관리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캐스팅 전권을 가진 로저가 행한 것은 자신의 탐욕이었다. 여성 앵커들에게 성상납을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면 더는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TV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이미지 산업이다. 뉴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캐스팅을 하는 입장은 절대 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래된 남성 위주 사회 속 성착취는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고착화되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여성 위주 사회가 지속되면 역전된 상황에서 성착취 등 권력형 비리는 나올 수밖에 없다. 그게 인간의 삶이니 말이다.

<밤쉘>은 실제 일어났던 폭스 방송사의 성범죄를 바탕으로 권력형 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용기있는 내부고발자, 그리고 힘겨운 내부고발자와 함께 연대하는 피해자들의 용기.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런 용기 있는 이들의 한 발자국이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변화시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이 영화는 남과 여를 나눠 비난하는 식의 전개는 없다. 권력을 쥔 자들이 남성일 뿐이다. 로저 회장의 비서는 여성이다. 그는 성착취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침묵하며 동조했다. 로저의 비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은 오히려 피해 여성들을 핍박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남과 여의 전쟁을 다룬 것이 아니라, 권력이란 무엇인가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로저가 사설탐정이라 불리는 집단까지 갖춘 채 조직에 이간질을 시키며 싸우도록 독려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IT강국이라는 대한민국. 수많은 게임 회사들의 노동자 착취는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여기에 거대 공룡 기업이 된 네이버나 카카오라고 예외는 아니다. 네이버에서 벌어진 노동자 학대는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남자가 남자에 가한 폭력은 결국 권력형 범죄의 심각성을 다시 깨닫게 했다.

 

제작자이기도 했던 샤를리즈 테론의 명연기만이 아니라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밤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기생충>만 아니었다면 아카데미의 승자가 될 수도 있었던 이 영화는 우리에게 권력에 대해 많은 고민들을 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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