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4. 11:42

악마판사 1회-지성의 시원한 판결, 그는 전사인가?

문유석 전 판사이자 작가가 내놓은 신작 <악마 판사>가 첫 방송되었다. 역병으로 인해 사회 자체가 무너진 디스토피아 세상이란 가상의 공간을 주무대로 삼았다. 현재와 다른 가상의 공간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보다 더 다양한 실험도 가능해진다.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만든 시범 재판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전두환 시절 체육관 대통령이 된 후 3S 정책으로 분노한 국민들의 시선을 빼앗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고, 이를 통해 사법부 신뢰도를 올리려는 전략은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다. 적당하게 국민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분노할 수 있는 먹잇감을 데려와 처벌을 하는 것은 충분히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가 될 테니 말이다.

 

강요한(지성)은 시범재판부를 이끄는 판사다. 요한이 선택되자 대법관인 민정호(안내상)는 자신이 아끼는 제자인 김가온(진영)을 시범재판부 배석 판사로 앉혔다. 민정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강요한의 폭주를 막기 위함이었다.

 

믿을 수 있는 제자를 통해 강요한이 무슨 짓을 벌이는지 알아내 막겠다는 것이 대법관이 된 민정호의 생각이다. 명확하지 않지만 민정호는 강요한을 경계했다. 그가 벌이는 모든 일들에 뭔가 숨겨져 있다고 확신했기에, 아끼는 제자를 곁에 두고 감시할 수 있도록 했다.

 

가온은 부모를 잃고 힘들게 공부해 판사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민정호는 아버지와 같은 은사이다. 그리고 가온에게는 어린시절부터 함께 해온 형사 윤수현(박규영)이 있다. 경찰대 출신의 남자보다 더 강력한 여자 형사가 바로 수현이다.

 

수현은 가온을 좋아한다.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낸 사이다. 어찌보면 동성 친구보다 더 친근한 관계이기도 하고, 가족과 같은 느낌도 버릴 수 없다. 그럼에도 가온을 남자로서 사랑한다. 수현의 마음은 명확하지만, 가온 역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가온에게도 수현은 특별한 존재다.

 

오진주(김재경)는 이번 시범재판부의 우배석 판사로 임명된 인물이다. 서울이 아닌 지역만 옮겨 다니던 오 판사는 요한의 찐 팬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우배석 판사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 가온과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어떤 상황들을 만들어낼지도 궁금해진다.

 

디스토피아 세상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집단은 사회적 책임재단이라는 곳이다. 이사장 서정학만이 아니라,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방송사 사장과 재벌들까지 모두 모인 이곳은 이너서클이기도 하다. 조연배우에서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된 허중세(백현진)는 대중을 이용해 그 자리까지 올랐다.

 

음모이론을 앞세워 이야기를 하던 유튜버가 역병으로 인한 경제 몰락 등 사회적 붕괴가 시작되자 강력한 발언들로 떡상한 유튜버가 되었다. 그렇게 독한 말들을 쏟아내며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선 입지전적 인물이지만, 그래서 주류 지배세력들에게는 하찮은 존재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신분도 그렇지만 정치적 신념도 뚜렷하지 않은 그저 대중의 심리를 잘 아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 자가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되자 이너서클 내에서도 그를 노리는 자들이 많다. 차기 대선주자인 법무부 장관 차경희(장영남)는 눈엣가시 같은 허중세를 빨리 끌어내리고 싶다.

 

사회적 책임재단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들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허세는 그저 허세일뿐이다. 자신이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실이 특별하게 다가오지만, 재단 측에서 보기에는 차 장관 역시 장기판의 말일뿐이다.

 

정선아(김민정)는 사회적 책임 재단 상임이사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뛰어난 외모를 가진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재단을 이끄는 인물이다. 차 장관 앞에서도 예의를 갖추지만 할 말 다하며 압박하는 선아는 요한을 마음에 들어한다.

 

JU 케미컬 주일도 회장을 시범 재판의 첫 대상으로 선택했다. 이너서클의 중요한 한축이기도 한 주일도를 공개 법정에 세우는 것은 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저 대중들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사건들을 다루면 되는데, 재단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는 주 회장을 첫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공장에서 나온 약품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현실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풀어줄 곳이 없다. 유치원 버스를 운전하던 이도 주 회장의 피해자였다. 그렇게 분노해 법정을 향해 질주하는 차량 앞에 길을 건너던 유치원생 하나가 넘어졌다.

 

마침 현장에 있던 가온은 아이를 품었고, 요한은 특수부대의 총을 빼앗아 차량을 향해 쐈다. 운전자를 맞추기 위함이 아니라, 멈추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요한과 가온이 얼마나 다른 인물인지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첫 재판이 열리며 모든 이들은 공개재판에 관심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공분을 산 주 회장이 법정에 섰다는 것도 큰 화제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작된 재판은 살인죄 vs업무상 과실치사 사이에서 공방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대법관과 그의 요청에 요한을 은밀하게 감청했던 가온은 그를 의심했다. 사회적 책임 재단의 광대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회적 책임재단의 법무부 장관 역시 자신의 요구대로 쇼를 하고 주 회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로 적당히 정리할 것이라 믿었다.

문제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한은 단순하지 않았다. 이 판 자체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기다렸던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주 회장을 첫 대상으로 삼았다. 요한에게 선과 악은 분명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자들이 정말 사회적 약자인지 반문하는 판사다.

 

언뜻 보면 AI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요한은 정말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다. 국민들은 주 회장이 유죄라는 여론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친구인 주 회장에게 낮은 처벌이 내려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격론이 오가던 재판정에서 요한은 선고를 하기 전 살인죄로 주 회장을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직접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살인죄 처벌은 힘겨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업무상 과실치사를 적용했다.

 

업무상과실치사를 적용하면 최대 5년이다. 이를 노린 주 회장은 쾌재를 불렀지만, 요한은 달랐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차선을 통해 최선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범죄 하나하나를 따로 계산하고 합산해 최종 선고를 한다. 그래서 중죄의 경우 100년, 200년 형 선고가 가능해진다.

극 중 그곳에서도 피해자별 형량 합산이 가능하도록 법령이 바뀌며, 주 회장의 선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늘어났다. 주 회장은 최대 5년을 봤지만, 요한은 47명의 피해자 이름을 거명하며, 이를 합산해 총 235년 형을 선고했다.

 

무기징역보다 더 지독한 금고형이 내려지자 국민들은 환호했다. 부도덕한 사업가에 대한 단죄였기 때문이다. 47명의 사망자가 나왔음에도 피해 보상은 하지 않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외면하던 사업가에 대한 처벌은 통쾌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은 가습기 사건을 극화한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왔지만, 책임을 져야 할 재벌들은 외면하고 있다. 공정위마저 재벌의 편에 선채 수많은 희생자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혀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습기 사건이 만약 드라마처럼 선고가 내려진다면, 이들 업체들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설정이지만 흥미로웠다. 물론 전개 과정이 거칠고, 뻔해서 아쉽게 다가오기도 했다. B급 막장을 보는 듯한 상황들이 언뜻 드러나며 아쉬움을 줬지만, 주제의식은 흥미롭다. 사회적 정의, 법이란 무엇인지, 수많은 의혹들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답은 없다. 그 어떤 것도 손쉽게 정답이라고 외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법정에 선 판사들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그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이후 이런 부분들이 어떻게 표현될지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전직 판사가 만드는 법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기대와 아쉬움이 공존했던 첫 회였다. 

 

[글이 마음에 들면 공감과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