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6. 11:26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액션 무비에 담은 여성주의, 담백하고 강렬하다

흥미로운 영화다. 나봇 파푸샤도라는 이스라엘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제작의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미주 지역에서는 넷플릭스로 볼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극장을 이용해야 한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극장에서 보는 액션 영화의 힘은 분명 흥미롭게 다가온다.

 

퀸틴 타란티노와 프랭크 밀러의 <씬시티>를 생각나게 하는 비주얼 디자인은 익숙한 기시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타란티노식 잔혹한 액션이 이 영화에서도 당연하게 다가왔으니 말이다. 색을 빼면 <씬시티>의 감성까지도 주는 이 영화는 노골적인 여성 영화다.

남과 여를 나누고 서로 경쟁하듯 싸워야 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물론 그동안 모든 기득권을 가진 남성들에 대한 반감과 그로 인해 갈등이 극심한 상황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더욱 남녀갈등을 부추겨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무리까지 득세하며 본질이 흐려지는 상황들은 반복되고 있기도 하다.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 현상이다. 우월적 지위를 가진 남성들이 여성들을 성적인 노리개로 삼는 일은 더는 일어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그 상황이 바뀌지 않거나, 더딘 국가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이제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 중이다.

 

균형추를 맞추는 것은 공생의 가장 합리적 방법이란 사실은 누구나 인지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런 흐름들은 대중문화가 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펼쳐나가고 있다. 국내 드라마나 예능, 영화 등에서도 기본에 볼 수 없었던 변화들이 오고 있다.

 

주변부에 머물던 여성이 중심이 되고, 여성의 이야기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니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 주인공들의 서사들이 다양하게 드러나고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이런 흐름을 액션 영화에도 적극적으로 적용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동안 근엄한 표정으로 총을 겨누는 살인 청부 일을 하던 남자 주인공의 역할을 여성들이 대체했다. 샘(카렌 길런)은 회사에 소속된 킬러다.

 

샘의 어머니 스칼렛(레나 헤디) 역시 킬러다. 마치 대물림을 하듯 샘 역시 엄마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장소는 미국의 흔한 식당이다. 그곳에서 엄마와 함께 밀크셰이크를 마시는 것이 어린 샘이 느끼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샘의 볼에 남겨진 상처는 15년 전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행방을 묻던 한 남자가 칼로 세긴 흔적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등장해 눈을 감으라고 하고, 식당에 모인 모두를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행복하게 밀크셰이크를 딸과 먹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샘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회사에게 지시가 내려지면 대상을 제거하면 된다. 그런 샘이 이상한 상황에 빠졌다. 회사의 지시를 받고 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했지만, 네이선(폴 지아마티)이 파악한 상황과 달랐다. 지시를 내리는 위치인 네이선으로서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이선이 문제의 식당에서 만나자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라는 의미이니 말이다. 샘이 처리한 존재가 다른 누구도 아닌 최악의 범죄집단의 우두머리인 짐 매칼리스터(랄프 이네슨)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를 제거했다는 것은 회사 자체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위기감이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샘은 추가 지시를 받고 현장을 찾았다. 그렇게 현장에서 한 남자를 저격했지만, 잘못되었다. 그는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협상을 하려던 인물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샘을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샘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총상을 입은 남자를 회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다. 죽이기만 했던 샘에게 이 남자는 살려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게 납치범들과 만나기로 한 볼링장에 간 샘은 무기와 옷을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란 지시에 볼링장에 전시된 점퍼를 챙겼다.

 

그런 샘을 기다린 것은 납치범만은 아니었다. 네이선이 보낸 주먹들 셋은 샘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왔지만, 그들이 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납치범들로서는 자신들이 협박하는 여성이 무지막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총상을 입은 남자의 딸인 에밀리(클로에 콜맨)를 구출하고, 납치범을 추적하지만 그들은 서로 총질을 하다 자멸하고 만다. 돈까지 날아간 상황에서 샘은 에밀리를 아버지가 있는 병원으로 가지만, 그곳에는 샘을 잡으러 왔던 3인방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에밀리 아버지의 사망과 의사의 배신으로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린 에밀리의 도움을 받아 적과 대결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중 하나였다. 잔인함과 코믹함을 연결해 기묘한 상황을 연출하면서도, 샘이란 인물과 에밀리의 영특함이 잘 드러났으니 말이다. 

 

샘이 찾은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도 크다. 디지털 시대와 그런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도서관이란 유물이나 다름없다. 책을 읽기보다 정보를 정리해 습득하는 세대에게 도서관이란 의미 자체도 모호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 도서관을 지키는 애나 메이(안젤라 바셋), 플로렌스(양자경), 매들린(칼라 구기노)다. 이들은 모두 샘 어머니의 친구들이다. 그런 자신을 찾아온 샘에게 내주는 책들은 여성 작가들의 서적들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서 싸웠던 전설적 여성 작가의 책들 속에는 다양한 무기가 가득하다.

그런 장소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대규모 격투씬이 담기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조용하게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처럼 살아왔던 전설적 킬러들이 모두 모여 남자들로 구성된 조직들과 맞서 싸우는 과정은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피가 튀기는 강렬한 장면 속에서 여성 다섯이 수많은 남성들과 싸우는 과정들은 여성들이 남성중심남성 중심 사회에서 어떻게 싸워나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무너지지 않고 이들을 제압하는 과정은 의지와 다짐이기도 하다. 결국 남성 중심 사회는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자신을 버린 네이선을 집밖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 에밀리와 저격수가 되어 심장에 표적을 삼고, 샘이 하는 말은 의미심장했다. 에밀리에게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고백을 하며 회사에 대한 언급이 되었다.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만들어진 회사는 오랜 시간 일을 해왔고, 모든 규칙을 만들고 그들의 필요에 의해 바꿔왔다고 한다.

 

샘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에밀리는 이제는 안 그렇겠죠 라고 되묻는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샘은 네이선에게 내 앞에 있는 아이가 미래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모든 남성들에게 경고를 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며, 우리가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발언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다.

대 전투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밴을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좋아요. 여러분 떠날 시간입니다. 몸조심하시고 반대편에서 뵙겠습니다"라는 남성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8살 9개월의 다인종 혼혈 아이는 상징 그 자체였다. 

 

흑백을 넘어 다인종 사회에 대한 가치를 어린 에밀리를 통해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이 반대편에서 기다리겠다는 것은 여전히 갈길은 멀지만 여성 스스로 남성 중심 사회를 바로잡으라는 응원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남성을 조롱하는 영화라고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잘못된 남성중심 사회에 대한 경고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키치 문화로 포장한 과장된 액션으로 보여주었다. 

 

타란티노의 잔인한 액션들이 새롭게 재현된 듯한 느낌이 드는 이 흥미로운 영화는 킬러의 상징과 같은 '건파우더'와 모녀의 정과 추억을 담은 '밀크셰이크'가 하나가 된 이 영화는 그만큼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메시지를 잘 보여주었다. 

 

[글이 마음에 들면 공감과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