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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8회, 고수와 한예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by 자이미 2009.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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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상위 개념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가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엔 전쟁도 질투도 미움도 모두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에 슬퍼하고, 사랑에 목숨마저 내걸기도 합니다.
지완에게 다시 찾아온 사랑과 그렇게 찾아 헤메이던 지완을 만난 강진. 그들은 그렇게 마냥 즐거울줄 알았습니다. 어쩔 수없이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말아야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 어떤 기억이 자신들을 힘들게 강제하더라도 더이상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강진은 자신이 사랑하게된 지완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게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하고 싶었던 단 한명이었던 지완. 힘들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던 그녀가 그렇게 독한 이야기를 퍼붓고 사라질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없었습니다.

8년이 흘러 정말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된 지완. 남의 여자가 되어버렸지만 결코 잊을 수없었던 지완. 사랑이라 불렀지만 사랑으로 지완을 속인 태준은 강진에게는 그래서 원수와 다를 바없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 지완을 이용한 태준. 그런 태준에게 마저 현실에서 도망치듯 안주하려는 지완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되찾은 지완이 너무 슬피울고 있습니다. 좀처럼 꺼내기 싫어하던 이유를 듣게된 강진은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프기만 합니다. 자신에겐 너무 소중했던 팬던트 때문에 목숨같은 여인의 오빠가 죽어야 했다는 사실은 너무 힘든 아픔입니다.

그렇게 잊고 싶습니다. 훌쩍 다시 떠나버리고도 싶습니다. 회사에서도 그를 내쫓으려는 태준의 비열함에 손내밀듯 타협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모든것 다 버리고 가족들과 순대국밥집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랑이 또다른 사랑때문에 슬퍼한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게만 합니다.

그런 슬픔을 억누르고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지완의 모습은 강진을 더욱 힘들게만 합니다. 첫 데이트를 망쳐버린 그들 그래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지완. 8년을 슬퍼했으니 이제 자신을 놔달라며 사진속 오빠를 보고 우는 지완에게도 강진만큼이나, 아니 강진보다도 더욱 보고싶고 기다려왔던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옥죄고 있는 오빠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는 좀처럼 자신을 놔주지 않습니다. 눈앞에 자신이 그토록 바래왔던 사랑이 있건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오빠는 자신을 놔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꾸 음식으로 감정의 허기를 채우려 하지만 그것마저도 몸은 받아주지 않습니다.

강진을 삼키지 못해서 생긴 병. 그렇게 지완은 수업도중 쓰러져 버리고 맙니다. 사랑에 아프고 사랑에 배고팠던 그녀는 그 사랑마저도 삼키지 못해서 병이 나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병에 걸린 지완을 살릴 수있는 방법이 강진이 떠나는 것이라면...그런 이야기를 듣는 강진이라면. 또다시 사랑을 위해 사랑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지독한 거짓말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강진은 가장 비겁하고 지독한 방법으로 지완을 떠나보내려합니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우정에게 지완이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함으로서 그녀에게 사랑의 병을 치유하게 하려는 강진의 노력은 비겁할 뿐입니다. 그저 지완의 가슴속에 오빠의 죽음과 강진의 지독한 사랑의 상처만 더해주고 있음을 그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지완의 아버지인 준수가 뇌종양 판결을 받았습니다. 7회에서 춘희의 병을 의심케하던 제작진의 반전이 뒤통수를 친 격이되어버렸네요. 그나마 춘희를 죽음으로 내모는 뻔함을 탈피했다는 것은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준수를 죽음으로 내몰아 지완을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독한 결말을 예고하는 듯해서 씁쓸합니다.

강진과 지완을 힘들게 하는 트라우마는 지완의 오빠인 지용입니다. 아니 지용이라는 인물은 지완과 강진 가족들 전체에 가장 벗어던지기 힘든 굴레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강진과 지완의 사랑이 맺어지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랬던 이가 지용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음으로서 아이러니하게 그들의 사랑을 막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이 지독한 사랑이야기는 지용의 죽음으로 촉발되어 준수의 죽음으로 치유될 듯 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힘겨울 수밖에 없는 그들이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화해할 수있다는 것은 이경희 작가의 지독한 장난이 아닐 수없습니다.

파스빈더 감독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주민 남자와 독일인 여자의 사랑과 이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독일의 모습을 이야기하던 이 영화는 그 지독한 사랑과 편견, 독일에 대한 근원적 문제들등 내재된 의미들마저도 지독하게 사랑스러웠던 영화였습니다. 너무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 가물가물한 기억이 한스럽지만 문득 내용보다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던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지완과 강진을 힘들게 하는 불안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그들의 영혼마저도 잠식해버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랑하기에, 더욱 지독한 사랑으로 사랑을 지키려는 무모함이 얼마나 바보스러운지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원죄에 빚지고 살아가는 강진과 지완. 그들은 그렇게 사랑에 울고 사랑에 아파합니다. 

이경희 작가는 은유와 비유가 난무하는 이야기들 속에 다양한 의미들을 흩뿌려 두었습니다. 커다란 줄기로 죽음을 내세운 만큼 그들의 사랑도 죽음앞에서 흔들리고 죽음앞에서 치유되는 지독한 운명입니다. 

죽음을 앞둔 준수는 자신이 사랑했던 춘희를 위해 독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강진은 죽을지도 모를 지완 때문에 독해져야만 합니다. 그녀를 그토록 힘들게한 오빠 지용과 다짐했듯 그녀를 죽을때까지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이 '외면'이라 생각한 강진은 준수처럼 바보스런 결정을 한 셈입니다.

자신만 감수하면 모든게 될거라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욕심은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만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요. 이미 '미쳐버린 그들의 사랑'을 죽음이 가로막지는 못합니다. 이 지독한 사랑은 이제 본격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바이러스를 함박눈처럼 뿌리려 합니다. 그 지독한 눈을 맞을 준비는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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