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를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 장수하기를 바란다
음악방송들이 시청률이라는 자대로 인해 사라져가고 이를 대신해 등장한 예능(?) 방송 '나가수'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꾸준하게 활동을 해왔지만 마치 지구상에 생전 처음 접하는 것이라도 되는 듯 매번 화제를 불러오는 모습을 보면 많은 이들이 어떤 음악 무대를 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한 외형보다는 음악 자체가 주는 매력에 갈증을 느낀 많은 이들의 바람은 '나가수' 광풍으로 이어졌고 이런 광풍은 하나의 현상처럼 대중음악계 잠식해가고 있습니다. 흐름이 바뀌고 보컬리스트들이 사랑받는 무대가 더욱 많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런 현상이 아이돌만이 지배하던 시절과 다름없이 바뀐다면 이 역시 문제가 될 듯합니다. 모두가 함께 혹은 다양한 형태로 어울릴 수 있는 상생의 무대가 대중음악계에도 절실한 시점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일 듯합니다.
음악 전문 방송이 한때는 유행처럼 혹은 당연함으로 각 방송사에서 방송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MBC와 SBS가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강제 폐지시키며 공중파에서 음악만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방송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유일해졌습니다.
다양한 가수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콘서트를 개최하듯 노래를 들려주는 '스케치북'은 멋진 방송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 방송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은 100회를 기념하기 위해 준비했던 네 가지 선물이었습니다. '더 프로듀서', '더 레이블', '더 드라마', '더 뮤지션'으로 구성된 특집은 그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시선으로 음악방송을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답안지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대중음악 프로듀서를 조망하고 인디 레이블의 음악을 함께 하기도 합니다. 최근 대세라는 드라마 OST는 어느덧 대중음악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100회를 맞이한 6월 3일 방송에서는 그 주인공을 '뮤지션'으로 잡았습니다.
보컬리스트 특집은 사라진 채 음악을 만드는 다양 함들에 집중하고 그들을 바라보던 '스케치북'은 드러나지 않지만 음악을 완성시켜주는 '세션맨'이라 불리는 뮤지션들에게 그 공을 모두 돌렸습니다. 국내 최고의 뮤지션으로 구성된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특집은 특별한 감흥으로 관객과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김건모를 시작으로 아이유, 유종신, 최백호, 이적, 화요비, 한영애 등 최고의 보컬리스트들마저 조연으로 등장해 그들을 기리는 장면은 음악이 주는 힘과 감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길게는 50년 이상 짧게는 2, 30년 동안 음악만을 하고 살아왔던 최고들이 모여 완성도 높은 공연을 보여준 이 방송은 음악전문방송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만큼은 스타 가수들이 주인공이 아닌, 그 뒤에서 그들을 화려하게 만들어준 뮤지션들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세션 연주로 시작했던 유희열은 '뮤지션' 특집을 통해 '유희열의 스케치북' 첫 회 시작을 알렸던 '라디오 천국'을 합주하며 100회 특집을 자축했습니다.
베이시스트 신현권, 기타리스트 함춘호, 드러머 배수연, 색스폰 김원용 등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무대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100회 특집은 특별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대중음악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이 대단한 뮤지션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는 모두 담겨져 있었습니다.
50년이 넘게 아코디언을 연주해왔던 심성락씨가 출연해 하림, 함춘호와 함께 만든 무대는 정말 멋있었습니다. 평생을 음악만 하고 살아왔던 그들이 무대 뒤 조명 없는 곳에서 음악만 연주하던 모습이 아니라 무대 중앙에 나와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들여다보게 해주었습니다.
음악 경력 40년이 넘은 최백호에서 아직 19살인 아이유까지 오늘 무대를 위해 나선 가수들의 모습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무대를 장식해주었습니다. '나가수'이후 처음으로 방송에 모습을 보인 김건모의 'Sir Duke'는 여전히 그가 왜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칭찬을 받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경쟁이 아닌 음악 자체에 집중하며 부른 그의 무대는 여유와 흥겨움에 선배 뮤지션들에 대한 경의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소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아이유만의 음색으로 색다른 무대로 다가왔습니다. 가수 윤종신으로 돌아온 그는 그 유명한 "교복을 벗고~"로 시작하는 '오래 전 그날'로 무대에서 호흡을 맞췄습니다. 화요비 특유의 매력적인 보컬과 여전히 자유롭고 강렬한 한영애의 무대 역시 오늘 '더 뮤지션' 특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하몬드 오르간을 연주한 그룹 11월의 김효국의 '착각'은 아마도 많은 이들은 많이 들었던 곡이었을 겁니다. 리메이크도 되었던 그 곡을 하몬드 오르간 연주와 함께 부르는 모습 역시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방송에서는 20년 만에 부른다며 수줍게 시작했지만 열정적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오늘 특집의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뮤지션과 보컬리스트가 하나가 되어 멋진 하모니를 보여준 오늘 무대의 매력은 최백호와 이적이 보여준 '낭만에 대하여'와 '다행이다'였습니다. 동시대 함께 활동하지 않았던 두 가수가 자신들의 대표곡을 함께 부르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가수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 최백호의 멋진 목소리는 여전했습니다. 그가 부르는 이적의 '다행이다'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고 이적의 '낭만에 대하여' 역시 이적만의 보이스로 새로운 흥겨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대단한 가수들이 등장해서 단 한 곡씩만 부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오늘의 주인공은 뮤지션들이었기 때문이지요. '더 뮤지션'의 대미를 장식하는 '아이 노 코리다'는 뒤에서 코러스만 해주던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부르고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루시드 폴이 코러스를 하고 인순이가 깜짝 등장해 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우는 장면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주인공이었던 가수들이 조연을 자청해서 그들의 연주와 노래와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하는 모습은 감동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주인공이 된 코러스와 뮤지션들을 위해 관객들과 하나가 되어준 인순이의 모습은 행복해보였습니다.
출연한 뮤지션을 대표해 함춘호가 공연소감을 말하며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울먹이며 자신들에게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한다는 소감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가수 중심의 방송에서 연주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 말이지요.
'나가수'가 보여주는 가수들의 탁월한 무대 공연은 우리 시대 가장 즐거운 경험입니다. 이런 무대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올 정도로 그들의 무대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하지만 노래와 상관없는 이야기들로 논란만 일으키고 있는 '나가수'는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들과는 달리 조금은 밋밋해 보일 수도 있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좋은 이유는 경쟁이 없는 즐거운 무대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유희열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방송을 이야기하며 "인기가 많은 분들은 '스케치북'이 여러 방송 중 하나인지만 인디하는 친구들에게는 유일한 하나다"라는 말로 인디 뮤지션들이 좀 더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그의 시각도 반갑기만 합니다.
어느 한 장르나 나이 대를 가리지 않고 아이돌부터 최고의 보컬리스트까지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음악방송이 우리가 추구하고 지향해야만 하는 방송일 것입니다. 그가 모시고 싶다는 조용필, 나훈아, 이미자, 서태지 등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날이 조만간 다가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친 혹은 무한 경쟁을 부추기며 이를 통해 시청률에만 모든 것을 맞추는 것이 아닌, 조금은 느리고 무채색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음악'에 방점을 찍고 다양한 응악들을 펼쳐 보이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참 좋은 방송입니다. 무리한 경쟁 구도보다는 음악이 주인이 되는 음악전문방송이 좀 더 늘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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