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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나의 해방일지 첫 회-모든 인간관계가 노동인 이들을 위한 해방일기

by 자이미 202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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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 작가가 돌아왔습니다. ‘또, 오해영’과 ‘나의 아저씨’로 엄청난 열혈팬을 거느린 박해영 작가의 신작은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소시민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계란 노른자인 서울이 아닌, 흰자인 경기도에 사는 염씨 삼남매 이야기는 시작부터 묵직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평범한 우리를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이번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염씨 삼남매를 중심으로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구씨, 그리고 싱글대디 태훈 가족 등 이들이 사는 이야기가 너무 그리웠습니다.

첫 방송이라는 점에서 기정과 창희, 미정이란 삼남매의 캐릭터를 알리는 각각의 에피소드와 이를 묶어주는 가족들의 풍경과 사건들로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첫 회는 박해영 작가가 소개하는 이야기의 집에 시청자들을 초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째 기정은 리서치 회사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모쏠입니다. 연애는 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죠. 그래서 항상 화가 나 있고, 그런 기정을 보고 엄마는 못된 심뽀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돈 있고 남자 있으면 그 심뽀도 좋아진다고 기정은 확신합니다.

 

편의점 본사 대리로 근무하는 창희는 여자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자신을 지독하게 촌스럽게 생각하는 연인과 이별은, 말처럼 촌스럽고 소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누나와 동생이 기다리는 곳과 가까운 곳에서 왁자지껄한 이별을 해야 할 정도로, 그에게 삶은 연애와는 상극처럼 다가와 있습니다.

 

막내 미정은 카드회사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감정이 요동치는 언니 오빠와는 달리 차분합니다. 무채색에 가까운 그는 성격이 잘 묻어나지 않아 회사에서도 아싸입니다. 친구가 집에 가기 급급한 청춘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미정의 삶은 단조롭습니다.

 

회사가 지원하는 동아리에 다른 직원들은 서너개씩 참가해 즐기고 있습니다. 취미 생활도 하고 연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직원들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죠. 친구 권유로 처음 볼링 동아리에 나선 미정은, 그곳에서도 도드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묻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돌아가야 할 먼 길을 위해, 친구들과 술 마시는 언니 기정이 있는 고깃집에 합류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엉뚱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죠. 기정은 최근 소개팅에 대해 이야기하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죠. 소개팅 자리에 나온 싱글대디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데, 하필 옆자리에 실제 싱글대디인 태훈이, 생일인 딸과 고기를 먹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미정과 같은 회사 과장인 태훈을 노리고 한 말은 아니지만, 의도하지 않게 타인의 아픔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꼴이 되어버린 기정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꼬여버린 듯한 세상은 자신과는 적대적 관계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죠.

 

바람피우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함께 모여 경기도 집으로 돌아가는 삼남매의 택시 장면은, 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스텝 프린팅이 생각나는 듯한, 거칠지만 이질적이면서도 공감되는 이들의 귀갓길은, 강렬하게 다가왔네요.

 

삼남매 아버지인 제호는 20년 전 매제 빚보증이 문제가 되어 휘청했습니다. 싸구려 싱크대 만들어 설치하는 것으로 겨우 버텨낸 그는 조금도 쉬지 않고 일만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혜숙은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쉬는 날에도 쉬지 않고 땡볕에서 밭일을 하는 아버지와 일을 돕는 구씨.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일에 동참하는 그들의 모습은 일상의 평범함을 극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의 차이만이 아니라, 어느 곳이나 도시와 완전한 시골 사이, 경계는 존재하고 그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죠.

그 미묘한 경계들을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삼형제와 가족의 이야기는 그저 낯설지는 않을 듯합니다. 도시와 멀리 떨어지지 않았지만, 농사도 가능한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첫 회는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미 차를 샀다 신불자 위기까지 처했었던 창희는, 전기차를 사면 돈을 아낄 수 있다며, 식사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소리 내지 않은 아버지 제호의 분노였습니다.그런 아버지에게 차가 아니면 남녀가 어디에서 키스하냐며, 발끈하는 모습은 창희라는 인물이 어떤지 알게 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쁘지만 매력 없고 평범하다는, 회사 남직원의 말에도 미정은 큰 상처 받지 않았습니다. 상사가 자신이 올린 디자인에 수없이 많은 수정을 요구 했음에도 미정은, 언젠가 만날 그 사람에게 고백하며 이 상황을 즐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빠는 시골이 아니라,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달라졌을 거라 하지만, 미정은 난 어디 사나 이랬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소개팅에 나갔다 유기견 같다는 말을 들은, 동네 카페 사장인 두환의 말에도 미정은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속 깊은 그래서 그 속을 알 수 없는 미정은 그렇게 고단한 관계란 노동을 즐기려 노력 중이었습니다.

 

표정이 단조로운 미정이지만, 모든 감정들을 적립하고 더는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차게 되면, 폭발하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조용한 미정이 수많은 변수를 만들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미정이 아빠 일을 돕는 구씨에게 눈길이 가는 것 역시, 자신과 비슷한 성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디서 뭘 하다 그 마을까지 왔는지 알 수 없는 구씨는 매일 술을 마십니다.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서지 않았지만, 제호가 손을 내밀어줬고 그렇게 그 집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필요 없이 그저 주어진 일만 하는 현재가 구씨는 행복했습니다.

 

좁디 좁은 시골에서는 태어나는 순간, 서로 친구가 되어 선택권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불평하는 창희는 이 모든 것이 답답합니다. 자신은 누군가 고르고 선택하는 것이 힘들다며, 누구라도 이게 네 짝이라고 하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기정은, 이 모든 관계들이 서툴고 힘들기만 합니다. 함께 고기를 먹는 동네 친구들 역시, 관계라는 것에 힘겨워하는 이들이었죠.

 

귀뚜라미가 우는 것은 겨울이 되기 전에 짝을 찾기 원해서라며, 기정은 아무나 사랑할 거라 합니다. 선택 장애를 넘어, 선택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닌 기정에게, 그렇게 따져서 결국 최악을 고를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옥죄고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고깃집에서 열심히 분노했던, 중학생 딸을 둔 싱글대디와 실제 만날 수도 있다는 불안은 현실이 될 수도 있죠. 소개팅남이 아니라, 미정의 동료인 태훈과의 악연은 인연으로 풀려가며, 두 사람이 사랑하는 관계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들 관계도 기대됩니다.

 

무채색에 소음조차 없는 평온함을 유지하던 미정에게도 숨기고 있는 비밀은 존재했습니다. 신용대출해 빌려준 돈이 부메랑이 되어 옥죄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친구를 위해 빌린 그 돈은, 당사자의 잠적으로 인해 매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으로 돌아왔습니다.

 

갚아야 할 돈에 대한 부담보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 급한 미정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함께 밥은 먹지만 말 한 마디도, 인사도 하지 않았던 구씨를 찾아갔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던 미정의 일상에서, 작은 변수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죠.

자신의 우편물을 대신 받아달라는 미정의 이 한 마디가 조용하던 구씨에게도 파장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람이 버거워 조용한 시골로 돌아와 침묵으로 행복을 겨우 되찾고 있던 구씨에게도 훅 들어온 미정은 당혹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서로 말을 섞지 않아도 괜찮은, 그 정도의 관계가 구씨에게 안정을 줬는데, 미정의 이 부탁은 거절하기도 애매했습니다.어쩌면 사실 구씨도, 이런 미정의 요구가 반가웠을지도 모릅니다.인간은 완벽한 외로움을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다른 관계를 추구할 뿐이니 말이죠.

 

인간관계마저도 노동이 되어버린 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계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들이 많으니 말이죠. 그런 점에서 염씨 삼남매 이야기에 우리는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해방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과연 자신들의 해방일지를 어떻게 써내려갈까요? 사내 동아리에 들지 않은 삼인방이 미정의 제안으로 ‘해방일지’를 쓰는 동아리 일원이 되어 벌이는 이야기 역시 기대됩니다.

 

많은 것들이 숨겨진 구씨의 생활이 미정의 개입으로 조금씩 파열음을 내고, 근본적 변화가 예고되는 창희와 사랑이 고픈 모쏠 기정의 변화 역시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매일 멍한 표정으로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삶에도 새로운 변화는 찾아올 수 있을까요?

 

첫 회만으로 박해영 작가 특유의 감성과, 감각적인 대사들로 풍성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염씨 삼남매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독한 인간관계라는 노동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해방의 맛을 어떤 식으로 느끼게 해줄지 다음 이야기들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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