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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백일의 낭군님 5회-도경수 남지현 코믹 위에 로맨스를 더한다

by 자이미 2018.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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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저격을 당한 장소에서 강렬하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단편적이지만 그 강렬한 충격은 서서히 그의 기억을 되살리는 기재가 되었다. 홍심이 품에 쓰러져버린 원득이로 인해 홍심의 일편단심은 그를 변하게 만들었다. 화살에 맞은 상처가 덧나 쓰러진 원득이는 그렇게 이율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멋남이 된 아쓰남;

원득이가 이율이 되는 날 이서가 될 홍심이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코믹 사극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조연들의 맛깔 나는 연기로 인해 재미는 배가 된다. 퓨전 사극으로 현재적 감각과 감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도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사극에 자신의 언어를 만나면 만나는 기묘한 재미를 <백일의 낭군님>은 보여주고 있다. 


본심은 힘든 상황이 닥치면 알 수 있다. 자신이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자들과 외면 하는 자들로 나뉜다.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인간 관계가 정리되고는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자신이 아닌 타인이 극단적 상황에 처했을 때 행동으로 평가 받고는 한다. 


기억이 존재하지 않지만 자신이 가난한 집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 만은 확신하고 있는 원득이는 뒤늦게 홍심이의 본심을 확인하게 된다. 엄청난 빚을 내 싸운 후 각방을 썼던 둘은 홍심이가 누워 있는 원득이를 간호하며 자연스럽게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자신이 궁금한 원득이의 질문은 쏟아지지만 홍심이 알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버지가 만들어낸 가상의 이름에 어느 날 갑자기 율이 등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원득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 존재하게 된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원득이가 되어야 했던 율이는 인지부조화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온갖 귀하다는 것을 모아 몸보양을 시킨 탓에 원득이는 기력을 찾았다. 지렁이를 보고 놀라 당황하는 원득이에게 원효대사 이야기를 하며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자, 너도 먹어 봐라는 원득이의 행동은 요즘 시대 행동 양식이다. 그런 원득이에 맞서 자신의 입맛에는 맞지 않다며 거부하는 홍심이의 행동 역시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재미다.


몸이 그의 삶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홍심이는 다양한 일을 원득이에게 시켜본다. 원득이가 양반일리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기억은 없어도 몸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미처 몰랐지만, 이미 그 몸의 기억을 보여주었지만 홍심이는 이를 외면해왔다. 


뒤늦게 되짚어 보니 그 몸의 기억이 이미 원득이가 왕세자임을 이야기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무리 사랑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도 환경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 감정도 사라질까? 홍심이와 원득이 이야기다. 둘은 서로를 좋아했다. 심지어 원득이는 왕세자가 된 후에도 이서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한양에서 고운 한복을 입고 꽃 구경을 하던 홍심이를 단박에 이서로 알아본 것이 왕세자 율이었다. 하지만 기억을 잃었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감정까지 잃을 수 있을까? 사랑도 몸이 기억하는 것이 아닌 뇌가 지배하는 기억이라면 잊힐 수도 있을 것이다. 


깊은 시골에서 한양과 스스로 격리한 채 살아왔던 홍심으로서는 율이가 왕세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알았을 것이다. 다만, 자신 앞에 있는 원득이가 율일 것이라는 그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감정선이 연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은 어쩌면 뇌가 장난을 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원득이가 강제 이중 생활을 하듯, 홍심이도 이중 생활 중이다. 도망치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떠났던 오라버니. 다리 위에서 보름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지만, 그날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매번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던 홍심이는 그곳에서 제윤과 만났다. 


홍심이를 보자 첫 눈에 반한 제윤은 사실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다. 그가 사람을 기억해내는 것은 말소리를 통해 구분하고 기억한다. 얼굴을 보지만 기억해내지 못하는 제윤에게 홍심은 달랐다. 처음 보자마자 강렬함으로 다가왔던 그녀를 보기 위해 그도 보름이 되면 다리 위를 찾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들의 운명은 결코 맺어질 수 없다. 왕의 여자를 제윤이 넘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제윤에게 홍심이는 자신의 운명이었지만 말이다. 서자인 제윤은 출세도 할 수 없는 신분이다. 그런 그의 재능을 처음 알아보고 신분과 상관 없이 대우해준 왕세자 율은 특별한 존재였다. 


제윤에게 왕세자는 받들고 싶은 존재이다. 그가 왕이 된다면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 왕세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말이 되지 않는다. 왕세자가 그리 허망하게 사망할 이유가 없다. 영특하고 탁월한 왕세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이 교차한 이유다. 


부패한 사체를 처음 확인한 김차언은 알고 있었다. 왕세자 옷으로 환복한 동주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밝힐 이유가 없다. 자신의 목표가 왕세자 제거라는 점에서 알린 후 사라진 진짜 왕세자를 처리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이서의 오라버니인 무연은 살수가 되어 원수인 김차언 곁에서 왕세자 습격을 지휘했다. 


무연이 세자빈과 특별한 관계라는 사실은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얽혀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관계가 펼쳐질 수밖에 없는 구조니 말이다. 원수를 갚기 위해 살수가 되었다. 김차언 곁에서 왕과 왕세자를 제거하고 마지막으로 김차언을 죽이면 끝나는 복수였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왕세자가 죽었다고 방이 붙여지는 상황에서 진짜 왕세자인 율이는 원득이가 되어 새로운 능력을 확인했다. 남들 도와주기 좋아하는 홍심이 위기에 처하자 돕기 위해 나선 자리에서 박 영감에게 글로 한 방 먹이는 장면에서 홍심이는 놀랐다. 그저 종 신분이라 생각했던 원득이가 글을 알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놀라웠다. 


글을 안다는 것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의미다. 자신이 틈틈이 해왔던 서책 베끼기 작업을 원득이가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말이다. 지금과 전혀 다른 세상. 한 권의 책을 돌려볼 수 없어 원본을 베껴 새로운 책들로 만들어내는 작업은 모두 인간이 대신해야 했다. 


그 작업을 원득이가 할 수 있게 되었다. 온갖 잡일이 아니라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원득이의 재능에 환호하는 홍심이. 그렇게 낯 뜨거운 이야기를 읽어주고 받아 적으며 뒤늦게 썸을 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그렇게 새로운 재능을 확인하게 된 두 사람은 책을 쓰고 번 돈으로 행복하던 저잦거리에서 빚쟁이를 만나 도망쳤다. 


좁은 공간으로 들어선 원득이와 홍심이. 그 미묘한 감정 속에서 "기억이 돌아온 듯하다"는 원득이의 말은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홍심이가 강제로 주입하려는 그 기억 속 사랑이라는 감정을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믹하기만 하던 그들의 이야기 속에 이제는 달달한 로맨스가 더해지게 되었다. 볼매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은 가벼우면서도 흥겨운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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