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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뿌리깊은 나무 24회-장혁과 신세경, 그들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

by 자이미 2011.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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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이들이 죽어 조금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역사 속에 기록되지 않은 작가들이 부여한 캐릭터들이 모두 죽은 마지막 회는 국내 드라마 역사상 가장 잔인한 결말이었습니다. 한글 반포식을 맞아 벌인 죽음의 춤판은 한글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었지만 모두의 죽음은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작가는 왜 그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마지막 회 누군가는 죽을 수밖에 없음은 이미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몰살 수준의 죽음을 예상한 이는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욱 극적인 재미를 위해 창조된 캐릭터들이 모두 죽음으로서 살아남은 역사 속 사실만이 더욱 강렬하게 각인되었다는 점은 잔인한 방법으로 주제를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대단한 반전이었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마지막 대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소이가 바로 해례임으로 알게 된 정기준은 가차 없이 살인 명령을 내립니다. 극적으로 현장에 도착한 채윤으로 인해 겨우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그런 그들의 행복은 오래갈 수는 없었습니다. 채윤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정기준이 도망치는 그들에게 화살을 쏴서라도 소이를 죽이라 하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대륙제일검이라 불리던 개파이가 독이 묻은 화살을 쏴 소이를 죽음으로 이끌게 합니다.

 

화살을 맞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소이를 찾기 위해 정신 나간 것처럼 헤매는 채윤.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자신의 몸에 독이 퍼지고 있음을 알게 된 소이는 세종의 모든 것이 담겨있고 백성들에게 희망을 전달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글자의 완성을 위해 과감하게 자신을 희생합니다.

옷을 찢어 종이를 만들고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해례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합니다. 독이 퍼지며 점점 힘겨워지는 상황 속에서도 피를 토하며 완성한 해례. 힘겹게 소이를 찾은 채윤은 죽어가는 그녀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흔들리지 말고 한글이 반포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부탁합니다. 그 현장에서 글자가 반포되고 행복해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꼭 봐달라는 소이는 그렇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안겨 목숨을 거두고 맙니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이방지가 예언을 했듯 지독한 무사의 운명을 타고난 채윤은 자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뜁니다. 세종이나 백성을 위함이 아닌 소이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임을 다하려는 채윤은 그렇게 한글 반포식이 있는 광화문을 향해 달려갑니다.

깊은 자상을 입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정기준은 마지막 임무를 준비합니다. 자신을 버려서라도 글자 반포를 막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개파이를 불러 마지막 임무를 부여합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세종을 방벌하겠다는 정기준의 의지는 24회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밀본의 4대 본원이 된 심종수는 정기준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깨닫고 이신적에게 밀본지서를 넘깁니다. 이는 곧 이신적이 글자 반포에 찬성하게 만들어 정기준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기 위한 배려 아닌 배려였지요.

해례가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글자 반포식은 시작되고 광화문 거리를 가득 채운 실료들과 백성들 앞에서 드디어 훈민정음의 실체는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던 정기준과 개파이는 마침내 자신들이 준비한 마지막 임무를 시작하며 반포식은 갑자기 잔인한 현장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대륙제일검이라 불리는 카르페이 테무칸에게 병사들은 그저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도무지 막을 수 없는 그를 제어하기 위해 조선제일검인 세종의 호위무사인 무휼이 나서지만 마지막 저지선을 지켜내지는 못합니다. 그 강렬함은 이미 견적희가 두려워하며 이야기를 했듯 "인간이라면 당할 존재는 없다"는 수준이었으니 말입니다.

드라마가 시작하며 채윤이 궁으로 들어서 세종을 해하려는 상황을 복기하는 장면은 마지막 회 개파이가 세종을 해하는 장면과 겹쳐 그 극적인 상황을 더욱 극적이게 만들었습니다. 단상에 올라서 있는 세종을 해하려는 개파이를 향해 마지막 보루가 된 채윤이 등장하며 잔인한 순간은 조금씩 마무리가 되어 갑니다. 개파이와 채윤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죽음을 향해 가는 행위들 중에 몸에 품고 왔던 소이의 해례는 바람에 날려 흩어집니다.

흩어진 해례를 보고 읽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은 마지막 순간 세종을 해하려던 정기준을 주춤거리게 만듭니다. 이미 백성들이 한글을 깨우친 모습을 보고 그 역병 같았던 글자가 이미 백성들을 깨우기 시작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방벌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었고 이런 상황이라면 다시 밀본을 규합해 세종과 글자에 대적하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을 했을 듯합니다.

채윤이 방법을 제시하고 소이가 연두를 통해 전한 마지막 임무는 바로 많은 이들에게 한글을 익힐 수 있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글자를 남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부스럼이 난다는 소이의 말에 이미 전한 글자를 더욱 많은 이들에게 퍼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한글이 백성들에게 반포되기까지 긴 시간 고생을 해왔던 세종의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 모두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홀로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을 바라보며 세종이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이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그 무엇. 이름도 성도 알 수 없는 그 수많은 들꽃들처럼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은 그 추운 겨울에도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을 정도로 강인했습니다.

마지막 회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부상을 입고 비밀 통로를 통해 세종과 대면하게 된 정기준과의 대화였습니다. 글자반포를 두고 벌이는 그들의 마지막 대결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나는 너 때문에 백성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 당신은 그럴꺼야. 근데 다른 위정자들은, 지배층들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 집에서 기르는 개를 생각하면서 저 개가 내 말을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의 글자를 위정자와 지배층에 그렇게 이용될지도 모른다. 무릇 백성은 어리석어보이나 지혜로서 속일 수 없다 했어. 허나 그 말은 어쩌면 오히려 어리석기 때문에 속일 수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혜가 없는 산인(山人)은 바위를 속일 수 없는 것처럼. 한데 너의 글자로 지혜를 갖게 된 백성은 속게 될 것이다. 더 많이 속게 되고 이용당하게 될 것이야. 사람의 말을 알아들은 개새끼처럼"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그들은 결국 그들의 지혜로 길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매번 싸우고 또 싸워 나갈 것이다. 어떤 때는 이기고, 어떤 때는 속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지기도 하겠지. 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역사니까. 또 지더라도 괜찮다. 수많은 왕족과 지배층이 명멸했으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수만 년 동안 살아왔으니까. 또 싸우면 되니까"

"이제 주상의 말이 맞기를 바라는 수밖에...."

죽어가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는 정기준과 세종의 마지막 이 대사는 <뿌리깊은 나무>의 핵심이자 전부였습니다. 숨을 거둔 정기준을 바라보며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어찌 그것이 사랑이 아니겠느냐는 세종의 모습은 왜 수많은 이들이 그에게 열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왕에 대한 사랑은 현재 그런 사랑을 전할 절대적인 존재가 없기 때문 일 것입니다.

그저 한가놈이라고 불리던 존재가 바로 한명회라는 설정은 <뿌리깊은 나무>가 얼마나 흥미로운 작품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수양대군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한명회라는 존재는 특별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소이와 채윤이 죽지 않아도 좋을 상황에서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그 죽음을 통해 극적인 재미를 얻기 위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대화 속에서도 나왔듯 매번 싸우고 싸워 나가는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소이와 채윤으로 상징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현재의 우리를 만든 것은 독재에 맞서 싸운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민 항쟁들은 독재자들을 모두 권력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세종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아무리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국민들을 종속하려 들어도, 불의에 맞서 싸우는 국민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그저 백성들을 주인의 말을 깨우친 개새끼는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만드니 말입니다.

권력을 가진 위정자들이 아무리 국민들을 비하하고 하대한다 해도 국민들은 다시 일어서 세상을 정화시키려 할 것입니다. 광장이 막히고 소통이 단절된 지독한 세상도 이제 국민들의 함성과 힘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죽음은 곧 새로운 세상을 위한 튼튼한 뿌리로 자리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강력한 힘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죽음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은 SBS 화면 캡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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