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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산부인과 10회-장애아 거부하는 부모, 자격 있나?

by 자이미 201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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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송된 <산부인과> 10회에서는 고등학생 임산부(이슬비)와 다운중후군 부모를 통해 부모로서의 자격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과연 부모란 무엇이고 부모의 자격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을 주제로 꺼내놓았습니다.

10회-부모의 자격


1. 고등학생 임산부, 그녀에게 필요한건?

당돌한 고등학생 임산부가 지난번과는 다른 입양 예정 부모와 함께 병원을 찾았습니다. 둘 모두 박사인 그들은 꼼꼼하게 점검을 해서 아이를 입양하려 합니다. 철저한 세부 검사를 통해 조그마한 질병도 있어서는 안 되고 아이를 임신하게 한 남자의 외모와 키와 질병 유무까지 검사합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아이를 임신한 고등학생 여자 아이의 성적표를 요구합니다.

상위 1%의 부모를 원했다면 당연히 그 이상도 요구할 수 있다는 박사 부부들은 아이를 규격에 맞춰 구매하는 소비자와 다름없었습니다. 최대한 자신이 원하는 조건에 맞지 않는다면 구매 의사가 없다는 그들의 태도는 사랑으로 아이를 입양하는 박애와는 전혀 달리 인간을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위함이기는 하겠지만 정말 저런 사람들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극단적인 설정을 한 부부들은 타고난 유전자와 명석한 두뇌를 가지지 않았다면 입양할 이유도 없다고 합니다. 좋은 학력이 현재의 자신들을 만들었고 사회적 지위를 얻음으로서 세상을 모두 가졌다는 그들은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인물이기를 바랄 정도입니다. 

모든 검사에서 완벽하게 통과한 그녀에게 단 하나 걸리는 것은 성적이었습니다. 반에서 40등인 그녀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박사 부부들은 입양을 꺼립니다. 어떻게든 입양을 하고 싶은 여고생은 혜영을 찾아 도와 달라합니다. 자신을 과외 시켜 성적을 올려달라는 엉뚱함을 최고의 강사진으로 구성해 과외를 진행하는 과정은 현실을 떠나 드라마가 아니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설정입니다. 

그런 과외를 통해 어린 고등학생 임산부에게 자아를 키워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는 하지만, 비현실성을 바탕으로 진행된 과정은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부모의 자격이 결코 외향적으로 보여 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극단적으로 이상한 박사 부부와 고등학생 임산부를 통해 이야기를 함으로서 오히려 본질이 호도되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마치 <공부의 신>을 보는 듯한 단기 집중 과외와 성적으로 모든 것들이 판단된다는 상황들은 극에 몰입하기 힘들게 했습니다. 오만불손한 박사 부부의 모습을 통해 너무 많이 배운 사람들은 오만하고 독선적일 수 있다는 일반론을 심어줄 수도 있는 설정들은 아쉬웠습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곡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아쉬운 에피소드였습니다.

2. 장애를 가진 아이, 그리고 부모의 자격

다운 중후군 아이를 낳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는 부모 역시 앞선 박사 부부처럼 현실적인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방송에 등장했던 부모 이상으로 극심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정상아로 생각했던 아이가 다운 중후군 환자였다면 주먹다짐까지는 아니겠지만 결코 편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극중에서는 다운 중후군 부모들은 그 원인을 검진 시 정확하게 장애아 진단을 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몰아가고, 왕의사는 환자가 거부했다는 증거로 맞섭니다.

<산부인과>에서 다룬 이 문제의 본질은 그런 실수에 대한 원인과 진단이 아닌 장애아 부모로서의 자격이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사전 진단에서 있을 수 있는 실수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았다고 하지만 아이를 거부하고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행동하는 부모의 모습이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비장애인으로 살아도 힘겨운 세상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부모의 무너지는 심정을 백번이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의 선태도 아닌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떨까요?

다운 중후군으로 태어나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아이의 입장은 부모보다 더욱 억울할 것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타고난 장애로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하는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 사랑은 고사하고 부정당하는 상황은 우리사회 장애인의 비애이기도 합니다.

임신중절이 불가한 상황에서 빚어진 상황에서 장애아 부부들의 행동은 과격함을 넘어 부모의 자격을 거부하는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비장애인 부모라면 당당할 수 있지만 장애인 부모들은 친구들에게도 숨겨야 한다는 설정은 그것이 현실이어서 더욱 불편했습니다.

장애인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는 세상. 장애를 가진 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는 세상. 평생을 사회의 그늘 속에서 소외당하며 살아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은 태어나면서 천형을 부여 받은 존재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그들을 소외하고 무시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불행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부모가 가지는 두려움과 허망함은 극중 부부의 모습으로 충분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마음을 동의할 수 있다고 그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부모로서의 자격은 없었기에 그들은 아무도 떠맡기 싫은 장애아를 가졌다는 울분만 토할 뿐 부모로서의 그 어떤 자세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지위가 부모의 자격이 될 수 없듯 장애아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도 자격 상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장애아이기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부모로 인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아이는 당당한 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기회마저 제어당한 채 부모의 한숨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모두 '닉 부이치치'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든 '닉 부이치치'처럼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회가 장애인을 거부한다고 장애인들이 꿈을 포기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국가가 만들어 주지 못한다면 장애인의 가족부터 시작해 점차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보다는 의미 있을 것입니다.

장애인이라는 설정은 어떤 경우이든 무척이나 힘겹습니다. 결론을 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처음 대하는 부모의 자격이 어때야 된다고 도식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천형이 자신의 아이라면 누구나 당황하고 힘겨울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주제를 던지기는 했지만 그 어떤 해답도 제시할 수 없음이 보는 이들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의 부당함과 어려움이 존재한다 해도 가능한 희망을 좀 더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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