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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Variety 버라이어티

왜 우리는 '놀러와 세시봉'에 열광하는가?

by 자이미 201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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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과 김원희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놀러와>의 추석특집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최고의 선택으로 기록될 듯합니다. 70년대 청년 문화를 상징하는 다방 세시봉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4명의 초대 손님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노래로 이야기를 한 그들에 시청자들은 왜 열광했을까요?

청년 문화의 상징, 2010년 대중문화를 이야기 하다




트윈폴리오로 한 시대를 풍미했었던 송창식과 윤형주, 조영남과 김세환을 통해 6, 70년대의 문화를 들여다 본 <놀러와>는 높은 시청률과 함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방송이 감동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잊혀 진 과거의 추억을 음악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입니다.
모든 추억이 아름답고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젊었던 시절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던 시절에 대한 추억은 아름다울 수밖에는 없습니다. 송창식이 노숙을 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지냈던 젊은 시절은 고민과 힘겨움이 동반했지만 노래를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추억이었을 겁니다.

그들과 함께 동시대를 청춘으로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할 수 있는 값진 추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살아야만 했던 시절은 가장 험난하고 힘겨웠던 시절이었지요. 전쟁이후 폐허가 되어버린 나라에서 조금씩 삶의 터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가난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훈장처럼 새겨져 있었습니다.

피해갈 수 없는 가난 속에서도 노래가 좋았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노래하는 것이었습니다. 통기타 하나면 되는 환경 속에서 그들은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었고 음악이 좋은 사람들을 그들에게 열광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청년 문화는 만들어지고 확장되어져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방송을 보며 그들에게 감동을 했던 것은 추억을 추억하게 하는 '노래'였습니다. 노래와 함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야기의 힘은 그 어떤 토크쇼보다도 유쾌하게 다가왔습니다. 누군가 선창을 하면 자연스럽게 기타 연주를 하며 따라 하는 모습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지요. 

철저하게 거대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잡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연주와 노래라는 형식이 사라지고 분업화된 상황에서 이런 식의 분위기는 상상을 하기 힘드니 말이지요.

동시대를 풍미했던 세대들에게는 추억을 함께 할 수 있는 감성으로 다가왔고,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에게는 통기타가 주는 단순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노래의 재미가 색다르게 다가왔을 듯합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시절을 살아왔던 이들의 이야기가 낯설기는 해도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기계가 더 이상 낯설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세대들에게 아날로그는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감성적 자극은 기존의 문화와는 달리 색다르게 다가오니 말이지요.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염증을 내던 기성세대들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자연과도 같은 모습이 그 무엇보다 특별했을 듯합니다.
모두 60을 훌쩍 넘겼음에도 20대 청춘을 이야기하는 눈빛 속에는 당시 그 모습 그대로의 감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과거로 돌아와 '세시봉'에서 노래를 하는 듯 지긋하게 감은 눈에는 행복이 가득한 그들의 모습은 정말 행복했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모습이었기에 시청자들과 함께 감동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돌이라 특징되어진 2010년의 청년 문화는 40년 전 그들의 문화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무엇이 더 좋다 라고 쉽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은 시대가 변하면 문화도 조금씩 변할 수밖에 없기에, 특정 시대를 지배하는 문화를 어느 시대가 더욱 우월했다고 말하는 것은 우매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단순한 리듬에 노래가 중심이 되던 시절 그들의 음악은 그랬습니다. 강렬한 비트의 음악과 비주얼이 중요하게 거론되는 시대 음악은 단순히 노래 뿐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필요하게 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시대가 다시 어떻게 변해 어떤 새로운 문화가 지배할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를 추억한다는 것은 현재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은 되겠지만 과거의 문화가 현재를 대신하거나 미래를 움직이는 힘들어 작용할 수는 없습니다.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와 장발로 대변되던 6,70년대 청년 문화는 전 세계적인 저항 문화의 한 축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를 휩쓸었던 강력한 저항 운동은 자연스럽게 독재자에 의해 지배당하던 대한민국에도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저항은 곧 죽음인 시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노래 등 다양한 문화를 통해 저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항의 시대 청춘은 고뇌하고 힘겨움을 토로하며 세상과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지만, 소비가 중심이 된 세상에서 청춘은 어떤 식으로 소비를 하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생산을 위한 소비가 아닌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게 만드는 세상에서는 음악도 컨테이너 벨트를 타고 내려와 번지수를 찾아 자동으로 움직이는 상품과 다를 바 없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소비되어질 뿐입니다.

이런 획일적인 문화에 대한 저항은 가깝게 '슈퍼스타 K2'만 보더라도 통기타를 들고 나와 내추럴하게 노래하는 이들에게 많은 이들이 감동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문화가 과거의 통기타 문화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현재의 문화 자체를 모두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많은 이들이 과거를 추억하며 회상하고 감동했다고 그것이 주류 문화가 될 수 없는 것은 추억하는 것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유행을 거스르며 어쿠스틱이 다시 대 유행을 하지 않는 한 과거의 유행이 현재의 문화를 잠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느 한 쪽의 문화가 주류를 형성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문화란 하나의 승자가 독식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것들이 모여서 함께 해야지만 공존할 수 있는 특별한 것입니다. 사회가 일등만을 조장한다고 문화마저도 일등만이 전부라는 착각은 문화의 황폐화만 가져올 뿐이지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서로의 문화에 자극을 받으며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간다면 그보다 긍정적인 모델은 없겠지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만큼 우매한 것은 없습니다. 각 세대는 세대별로 추구하는 문화가 다를 수밖에는 없고 그런 문화들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곧 서로가 하나 되는 과정의 시작이 되겠지요.

통기타와 힙합, 댄스들이 함께 어울리며 서로의 문화들의 장점들을 취합하고 이를 새로운 발전의 모델로 삼아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면 한가위처럼 풍요로운 세상이 되겠지요. 많은 이들은 어제 방송되었던 '놀러와 세시봉' 특집에 열광한 이유는 지금은 잊혀져 가는 감성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주 보다 다음 주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그들의 청년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저항 문화를 직접 듣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저항가요들과 함께 그들이 들려줄 시대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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