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나리가 이화신과 고정원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양다리를 허하라던 그 남자들에게 함께 같이 살자고 역제안을 하는 나리는 매력적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며 그들의 지위 역시 과거에 비해 높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높은 상황에서 <질투의 화신>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양다리 말고 쉐어 하우스;
화신과 정원에 가슴이 고장 난 나리, 파격적인 제안은 무슨 의미일까?
사랑이라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엉뚱하지만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질투의 화신>은 흥미롭다.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두 남자가 '양다리'를 선언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은 단순히 웃고 지나갈 일은 아니다. 그동안 남성위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이런 상황은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비밀로 말이다.
이런 삼각관계는 외국 영화에서 찾아볼 수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와 트뤼포의 <쥘과 짐>이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과 같은 작품에서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그 안에 담고 있는 전설적인 감독들의 시선은 전혀 다르지만 표면적인 관계는 <질투의 화신>과 유사하다.
"나랑 자자"와 "결혼까지 생각하는 여자"라는 말은 여성의 마음을 정말 떨리게 할까? 낯선 남자가 아닌 마음이 있는 상대에게서 듣는 것이라면 분명 심장이 요동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서로 다른 듯 하지만 두 남자의 고백은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양다리'를 공식화한 그들의 관계는 복잡하지 않고 선명하지만 그래서 더욱 힘겨울 수밖에는 없다.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들의 공개적인 사랑은 그래서 더 위험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3년 동안 짝사랑했던 남자와 마치 영화처럼 비행기에서 만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키웠던 남자. 둘 중 누구를 선택할 수 없는 선택장애는 두 사랑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간이란 그렇게 딱 떨어지듯 하나의 사랑만 추구하지는 못한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3년을 넘을 수 없다는 연구 조사도 나올 정도로 인간이 상대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한정된 기간으로 채워질 뿐이다.
그 유효기간이 명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가벼워 보이는 하지만 진지한 질문들이 이 드라마에는 가득하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라는 감정과 질문들이 수없이 쏟아지는 이들의 관계는 그래서 흥미롭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두 남자가 겨우 힘겹게 아나운서가 된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설정 자체가 동화 속 <신데렐라>와 비슷한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이 관계는 익숙한 방식을 통해 시청자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설정이다. 이런 설정의 벽을 넘어서면 이들이 현재 벌이고 있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엿듣게 된다. 짝사랑을 하던 상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하는 순간, 그 남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신이 이번에는 짝사랑을 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말이다.
나리가 사랑하는 남자가 하필 유일한 친구인 정원이라는 사실이 화신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랑과 우정사이'나 '친구의 친구를 사랑 했네', '잘못된 만남'등의 대중가요에서도 자주 언급하듯 사랑은 그렇게 우정마저 파괴하고는 한다. 대중가요가 일상의 대중성을 노래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런 사랑이 익숙하게 자주 등장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한 사람과만 해야 하나? 란 우문 같은 질문은 어쩌면 '불륜'이라는 부정의 단어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결코 인간이란 한 사람만을 사랑하지 않는단 사실을 이 단어는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이란 그렇게 단순한 듯 복잡하고 당장 내일도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술자리에서 나리와 계성숙, 방자영이 말하는 사랑의 가치는 그래서 흥미롭다. 사랑이란 한 남자하고만 하는 것이라는 계성숙과 둘 모두 제안한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만나보라는 방자영. 누구의 답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관계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개입되지 않아도 복잡할 뿐이다.
정원과 싸우고 연이어 술만 마시던 화신은 다시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리에게 환자가 아닌 남자로 보이고 싶은 화신은 몰래 홀로 입원을 강행하지만 나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주말에 1박2일 여행을 간다는 화신에게 도발적으로 함께 가자는 나리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은 웃기기만 하다.
화신이 재입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리의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병실에서 만난 나리를 보고 좌절하는 화신. 의료용 브래지어를 가지러 화신의 집을 찾은 나리. 그런 나리와 통화하다 거짓말을 하는 그녀를 따라 병원까지 간 정원은 화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엉덩이를 까주고 문질러주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참 엉뚱하지만 그래서 흥미롭다. 나리를 두고 싸웠던 두 친구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장소에서 황당한 행동으로 멀어진 간극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양다리'를 제안했던 두 남자에게 나리는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나리가 뉴스에서 직접 언급했던 '쉐어 하우스 열풍'을 직접 경험하자는 역제안은 흥미롭다. 연애와 삶은 전혀 다르다. 자신의 좋은 면만 보여주려는 연애는 상대를 정확하게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결혼까지 하고나서 후회하고 이혼을 위한 결혼생활을 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살아본다는 것 자체가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1인 가족이 대세가 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쉐어 하우스'를 통해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나리가 제안한 함께 살자는 이런 의미의 '쉐어 하우스'일 뿐이다. 육체적인 관계가 아닌 정신적인 교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자는 나리의 제안은 그래서 반갑게 다가온다.
이 세 남녀의 동거는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안 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빨강이를 위해 두 엄마가 한 침대에서 살고 있는 이 기괴한 상황 속에서 계약된 세 남녀의 쉐어 하우스가 이상할 것은 아니니 말이다.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하는 <질투의 화신>은 그렇게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그들은 확실한 답을 낼 수 있을까? 결코 누구도 풀어낼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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