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 한 천둥
영웅이 중심이 아닌, 민중이 주인공인 사극이라는 점에서 <짝패>는 무척이나 중요한 작품이었습니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성인 배우들의 등장부터 급격하게 극의 흐름이 처지기 시작하며 많은 시청자들이 <짝패>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들이 품었던 꿈과 이상이 성인이 되어버린 후 일상의 허탈함 속에 사라진 모습은 처량할 정도였습니다. 더욱 아역 배우들의 카리스마를 넘어서지 못한 성인 배우들의 연기력도 도마 위에 올라서며 MBC 월화 사극의 막강 파워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였습니다.
<짝패>가 진정 의미를 지니고 있고 특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한두 명의 영웅이 세상을 바꾼다는 식상한 스토리 라인이 아니라 민중이 주인공이 드라마로 이야기가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등장하는 주인공들 역시 선 굵은 성격보다는 너무도 현실적인 모습이어서 많은 이들에게 호불호를 달리하게 했습니다.
핵심인 천둥은 자신이 사랑하는 동녀의 그늘에서 그녀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에 만족하고 짝패인 귀동은 안빈낙도하듯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동녀 아버지와 뜻을 같이한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몬 김대감의 보호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동녀는 어린 시절의 그녀의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너무나 달라져 버린 그들의 모습은 당연히 혼란을 줄 수밖에는 없었고 여기에 천정명의 사극 연기 논란은 이런 달라진 이야기 전개와 함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달이가 아래패의 몸담고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가치관을 그대로 이어온 유일한 존재였지만 그녀의 역할은 드라마 속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못해 존재감마저 희석되어버렸습니다.
우여곡절 혹은 예정된 수순으로 천둥은 아래적이 되었지만 그의 포부와 다짐이 실질적으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이 다가왔습니다. 친부가 자신들이 척결해야만 하는 김대감임이 밝혀지며 아래패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지요. 물론 그들은 김대감이 두령의 친부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지만 적과 내통하는 두령이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불편함은 의도된 상황들을 만들었고 그런 상황은 아래패의 몰락 혹은 천둥의 죽음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김대감과 귀동이 천둥을 살리기 위한 묘책으로 내놓은 관직을 내놓고 탐관오리로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조건으로 사태가 무마되고 이런 잠깐의 평온함은 천둥과 달이의 결혼식으로 이어집니다.
급작스럽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 속에서 마지막 소원처럼 이뤄진 그들의 소박한 결혼식은 마무리도 하기 전에 귀동의 급습으로 엉망이 되고 맙니다. 자신의 천직은 아래패들을 소탕하고 천둥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라 믿는 그로 인해 천둥의 운명은 점점 수렁으로 들어설 뿐이었습니다.
따스한 밥 한 끼 같이 할 수 없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흐느끼는 달이에게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운명으로 받아들이자는 천둥의 말은 마지막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쫓기던 천둥은 달이를 먼저 피신시키고 대치하며 시간을 버는 사이 귀동과 마주하게 됩니다.
귀동으로서는 자신이 짝패로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관복을 천둥에게 입혀 그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도주하려는 순간 천둥은 당혹스럽게 귀동을 죽이도록 미워하는 공포교의 칼에 맞아 죽고 맙니다.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탐관오리 짓을 한 공포교에게 눈엣 가시였던 귀동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꼭 죽어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아래패를 붙잡고 나면 그 다음은 공포교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 할 정도로 자신을 옥죄는 귀동을 죽이는 것만이 자신이 살 수 있는 일이라 믿은 공포교에 의해 천둥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가 꿈꾸었던 '모두가 양반이 되는 세상'은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그렇게 허무하게 삶을 마감한 천둥은 남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천둥이 죽고 난 1년 후 고향으로 낙향해 서당을 하는 동녀는 자신의 고향 거지 움막에서 태어나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다 죽은 천둥을 기리며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칩니다. 천둥이 살아남은 이들에게 남긴 유산은 바로 우리들 스스로 깨우쳐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천둥이 남긴 아들을 데리고 김대감과 동녀, 귀동을 찾은 달이. 그들이 모두 모여 천둥을 닮은 아이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였습니다. 과거의 천둥은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그 뜻을 모두 펼치지 못했지만 자신을 닮은 아이를 통해 그 원대한 꿈을 이어가려 합니다.
천둥의 뜻에 공감하는 짝패들은 그가 남긴 정신을 이어받아 서민들이 스스로 자각 하고 깨어날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한두 명의 영웅이 아니라 대중 모두임을 이야기하는 <짝패>는 아쉬움도 많았지만 의미 있는 마무리를 선사해주었습니다.
매트릭스를 보는 듯한 총격전이나 예고된 죽음의 무도처럼 한꺼번에 죽어가는 이들의 모습이 당혹스럽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의미마저 퇴색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분명 드라마로서 재미와 가치를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짝패>는 소중한 작품으로 남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등장인물들 모두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들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혹은 만족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잘못을 용서하고 이런 용서를 따스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역시 작가가 하고자 했던 커다란 의미였습니다. 그 어떤 잘못을 했던 이라도 진정 사과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용서 받아야만 한다는 가치는 흔들림 없는 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천둥이 좀 더 극적으로 그리고 이를 통해 민중의 일어남이 들어나지 않았던 <짝패>. 그 화려함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민중들에 대한 시선에 모든 것을 맞췄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일 겁니다. 결코 변하지 않는 세상에 막연한 화풀이 식의 판타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과거를 통해 현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한 번도 영웅인적 없고 영웅일 수 없었던 천둥. 그의 남겨진 아이는 어쩌면 현재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고 그런 세상에서 양반과 상놈이 나뉘지 않는, 모두가 양반인 세상을 꿈꾸는 또 다른 천둥이 우리 곁에서 세상을 함께 바꾸자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둥이 가진 '의로운 전설'은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는 혹은 그러기를 바라는 전설일겁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저자거리를 함께 뛰며 포효하는 짝패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한 현실이자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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