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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Documentary 다큐

휴먼다큐 사랑 진실이 엄마-숙명과도 같은 엄마의 이름으로

by 자이미 201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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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를 가장 싫어했던 여배우 최진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우리 곁에서 가장 친근하게 함께 했었던 그녀가 죽은지도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누나의 공백에 힘겨워하던 동생 최진영까지 세상을 등지며 홀로 남아 어린 남매를 키워야 하는 진실이 엄마의 모습은 숙명처럼 되돌아 온 슬픈 운명이었습니다.

최진실 남매가 아닌 남겨진 남매를 키워야 하는 할머니의 숙명



어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아이들 음식과 등교 준비를 하는 일상적인 모습. 그런 일상적인 모습 속에 엄마는 존재하지 않고 할머니만 있을 뿐입니다. 국민 여배우였던 최진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지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그녀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11살 환희와 9살 준희 남매는 그렇게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학교에 갑니다. 마치 자신의 어머니와 삼촌이 그랬듯 너무나 살뜰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이 어린 남매들은 그렇게 오늘도 아무 일 없듯 학교를 향합니다. 아직 어리기만 한 두 남매의 등교 길을 집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는 할머니의 심정은 애틋하고 가슴이 먹먹해질 뿐입니다.

자식 둘을 먼저 보내고 남겨진 손주 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 진실이 엄마 정옥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한 평생을 진실이 어머니로 살아왔습니다. 나이 스물에 남자를 만나 어린 두 남매를 낳고 모진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야만 했던 인생. 남편으로서의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은 채 어린 남매와 함께 버림받은 그녀는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밥 한 끼 먹을 돈도 없어 밀가루만 둥둥 뜬 수제비로 연명해야만 했던 그들. 수업료를 제대로 내지 못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일들도 잦았던 그들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돈을 버는 일밖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뛰어들어 신데렐라처럼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던 여자 최진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남기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그녀는 그렇게 당대를 호령하는 최고의 여배우로 성장했습니다.


세상을 모두 가진 듯한 그녀는 어린 시절의 가난에서 벗어나 엄마와 동생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혼기가 찬 그녀는 당대 최고의 야구 선수와 결혼을 하고 일본에서 신혼을 즐기며 첫째 아들 환희를 낳고 유부녀로서의 삶도 행복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준희를 임신한 상황에서 맞이한 이혼이라는 위기는 그녀를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그리고 자신과 같은 슬픈 운명을 아이들에게는 전해주지 않으려던 그녀는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도 되는 듯 어머니의 슬픈 과거처럼 자신도 그렇게 어린 남매를 데리고 홀로 살아야하는 운명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두문불출하며 살아야 했던 그녀는 이혼만은 원하지 않았지만 폭행의 흔적은 그녀를 더 이상 결혼이라는 인연의 끈으로 이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남편의 바람과 이혼 요구, 거절과 이어진 폭행 등은 그녀에게 삶을 나약하게 만드는 독버섯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이혼으로 인한 위기는 그녀의 연예인으로서 삶도 흔들었고 그런 힘든 시기에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변신으로 국민 여배우 최진실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죽어가는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바람난 남편에 폭행을 일삼는 남편과 살아야 하는 아줌마 역을 너무 훌륭하게 해낸 그녀는 연기자로서도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유작이 되어버린 작품에서는 가볍지만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돌아온 최진실의 완벽한 부활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젠 그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모두 다 해낼 것 같은 당당함이 그녀의 연기에서는 보였기에 유작이 되어버린 그 작품은 너무 그립고 안쓰럽기만 합니다.

이혼 후 당당하게 일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듯한 그녀에게 위기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동료 연예인 즉, 최진실 사단이라 불리는 친구의 남편이 자살로 세상을 떠나며 막대한 사채 빚 이야기가 나오며 그 진원지를 최진실로 몰아가며 문제는 불거졌습니다.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양 포장하고 확대해서 거짓이 사실로 둔갑해버린 상황은 그녀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수없는 악플들이 쏟아지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거짓들이 모두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친구 남편을 잃어 슬픈 그녀를 살인자로 몰아가는 일부 악플러들의 만행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그녀의 몸을 만지며 한없이 울기만 했을 어머니. 그렇게 자신보다 먼저 묻어야만 했던 어머니는 2년 후 남은 아들 최진영마저 누나의 곁으로 가버리며 지독한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보지는 않을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답도 정답도 없는 그 수많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도 그녀가 살아야만 하는 간절함은 바로 최진실이 남기고 간 두 아이들 환희와 준희였습니다.

자신들은 먼저 갔지만 남겨진 어머니가 자신들 곁으로 일찍 오지 못하게 하려, 일부러 환희와 준희를 남기고 재산까지 준거 아니냐며 자조하는 모습은 슬픔을 어떤 식으로든 승화시키려는 그녀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생떼 같은 두 자식을 마음에 묻고 어린 손주들을 키워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 누가 헤아릴 수나 있을까요?

채동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날 방송된 <휴먼다큐 사랑 진실이 엄마>는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며칠만 더 살다 이 방송을 봤다면 최소한 자신의 목숨을 부모 먼저 앞당기려 하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남겨진 이들. 그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과 상심, 아픔들이 온 몸으로 전해지던 방송은 채동하의 자살로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기만 했습니다.

또 누군가의 어머니는 자신을 마음 묻고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데 그런 고통을 남기는 자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됩니다. 연예인들 뿐 아니라 자살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 자살을 조장하고 자살을 강권하는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씻을 수 없는 아픔들을 간직하고 시한폭탄처럼 살아가야 할 운명들만 양산할 것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나만이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임을 인지하고 느끼고 실천할 수 있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특정인들만을 위한 세상이 아닌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것만이 살아남은 이에게 가슴의 상처를 남기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엄마처럼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환희와 준희. 생존의 최진실과 최진영 남매처럼 너무나 다정하고 서로를 아끼고 챙기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슬프게 다가오기만 합니다. 입대한 동생을 위한 우정의 무대 출연과 가수가 된 동생을 위해 게릴라 콘서트에 출연해 한없는 눈물을 흘리며 어린 동생을 안아주던 최진실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아이의 어린이 날 소원이 죽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너무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가장 소중한 존재의 죽음 속에서 그 어린 아이들이 좀 더 밝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따스한 마음들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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