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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Documentary 다큐

MBC 스페셜, 박찬호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설

by 자이미 2009.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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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에서 이야기했듯 그의 등장은 IMF라는 국가 부도사태에서 하나의 빛으로 다가왔었습니다. 모두가 절망속에서 지내던 그 시절 박찬호가 먼 이국 미국에서 승전보를 전해주던 그 시절. 그 어느 누구보다 강력한 희망의 전도사는 바로 어린 대한민국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였었습니다. 

박찬호, 그가 있어 행복했었다

개인적으로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 공터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야구를 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놀이였고 추억이었었지요. 중학교 시절 야구부에 들기위해 수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야구는 친구들과의 놀이로만 남겨졌지요.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사랑하는 스포츠가 야구입니다. 

프로야구의 출범전에도 누구나 알고 있듯 고교야구의 인기는 지금의 프로야구 그 이상이었었지요. 고교야구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면 TV에서도 생중계로 방송이 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프로리그가 생겨나고 프로야구의 팬으로서 매일 야구장을 찾는게 낙이었던 나에게도 메이저리그는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몰입하게 된건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찬호의 메이저 입성과 함께 였습니다. 당연하게 국내에서 박찬호의 경기를 중계하면서 메이저리그를 함께 볼 수있게되며 국내에서도 많은 야구팬들이 메이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지요. 

한참 박찬호에 빠져있을때는 박찬호의 등판 일정에 모든 스케쥴이 정해질 정도였습니다. 새벽에 등판하면 아침 일정이 온통 엉망이 되어버리는 상황이었지요. 중요한 일이 있어도 박찬호 경기가 있으면 미루면서까지 생중계를 봐야 할 정도로 미쳐있었고 그로 인해 희망과 즐거움을 느낄 수있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박찬호, 그로 인해 서글펐었다

박찬호의 몰락은 의외였었고 슬픔이었습니다. 5년간 800억이 넘는 거액의 몸값을 받은 자랑스러운 박찬호가 텍사스에서 그렇게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뭘해도 안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불행과도 오버랩되는 느낌이었을까요? 사업적으로 인간관계의 여러 복잡다단한 아쉬움들로 힘들었던 시기들과 찬호의 부진은 함께 였었습니다.

한번 꼬인 관계는 쉽게 풀기가 어렵습니다. 일 역시도 순풍에 돛단듯 흘러가다가도 한번의 잘못으로 난파되는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물론 그 어떤 거칠고 높은 파도를 만나더라도 굳굳하게 견뎌내는 이들이 더욱 많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이지요.

명예와 돈을 모두 쥐었었던 젊은 청년이 최고의 순간 최악의 상황으로 곤두박질친다는 것은 당해보지 않은 이들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겠지요. 그도 이번 다큐에서 고백하듯 올라가는 방법만 계속 배워오던 삶에서 처음으로 추락하는데 그 누구도 안전하게 추락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수도 없는 일이었겠지요. 천하의 박찬호가 아니었나요? 세상을 호령하던 최강의 사나이가 최고의 시간을 지나고 바로 추락을 시작했는데 그걸 한없는 추락이라 보는 이들은 적었을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메이저리그에서 120승을 넘긴 대단한 아시아 선수는 선발에서 밀려 볼펜 투수로 전락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볼펜이 싫어 자신의 시작을 알렸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LA를 과감히 버리고 필라델피아를 선택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가진 스프링 캠프를 지나 선발의 기회를 얻었건만 그에게 따라온건 시즌 초반 선발 탈락이라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선발에서 탈락된후 그는 또다시 좌절을 하기도 하고 볼펜으로 옮겨간 자신의 위치를 수용하기 힘들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는 이젠 필라델피아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볼펜 요원이 되었습니다. 선발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였던 선수가 나이가 들고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현실로선 감당하기 힘든 보직을 맡겨되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 듯 합니다.

텍사스 시절 최악의 먹튀라는 불명예속에서 자신의 부활을 위해 모텔방을 전전하며 고등학교 수준정도밖에 되지 않는 마이너 생활을 감뇌하던 그는 오직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생활이였다고 주변인은 술회합니다. 일반인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돈을 벌었고 야구선수로서 얻을 수있는 명예도 모두 얻은 선수가 포기하지 않고 최악의 환경과 상황속에서 계속 도전을 했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렇게 그는 팀에서 화려한 부활을 하지는 못했지만 국가대표로서 자신이 할 수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선발을 버리고 마무리도 했고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예선전에도 참여해 동료들을 챙기고 독려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동료들은 감동일 수밖에는 없었던 듯 합니다.

그렇게 그는 화려한 부활은 아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도전과 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

오늘 방송된 그의 미니 다큐멘티리 제목이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였습니다. '박찬호를'이 아닌 '박찬호는'이라는 제목은 의미하는 바가 컸습니다. 그토록 원해왔던 상대방이 어느순간 잊혀지고 사라져가기를 바라는 상황에서도 과거의 영광을 위해(혹은 꿈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고 가장 즐겁게 할 수있는 일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 그런 그가 아직도 당신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순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행복했고 그로 인해 너무 많은 것들을 얻어왔던 나로서도 어느순간 눈에서 멀어지고 마음속에서도 차츰 자리를 비워가며 이젠 신문에 실린 그의 단신이나 쫓을 정도였었는데, 그는 아직도 그런 우리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참 비겁하게도 그렇게 열광하던 팬으로서 이제는 그의 근황마저 살펴보는 것 자체가 귀찮아진 나 자신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곤 합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현재의 나를 되돌아 봅니다. 그리고 나태하고 바보스럽게까지 보이는 현재를 자책해보기도 합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었습니다. 힘들때 힘을 낼 수있도록 그는 스스로 증명하고 입증해주었습니다.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했으니 벌써 15년 동안 그는 시름에 빠져있고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꾸준하게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시간 꾸준한 사랑을 보내는 그에게 과연 우린 무엇을 했나 하는 자책도 하게되는 'MBC 스페셜'이였습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어린 두 딸의 모습과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도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속에서 행복과 사랑이 넘치고 있음을 느낄 수있었습니다.
 
그가 우리를 잊지 않고 있는데 어찌 그를 잊을 수있겠습니까! 방송되기 전날인 10일 등판한 그는 무사 2, 3루의 위기에서 비록 1실점을 했지만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료하며 시즌 10홀드를 올렸습니다. 좌절없이 항상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항상 희망이 보이는 것은 저만은 아니겠지요?


- 스타뉴스, OSEN 편집사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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