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시대 — 글로브 극장이 열리다
셰익스피어 이전, 크리스토퍼 말로가 닦아놓은 길
— 런던 템스강 남안에 세워진 극장들이 드라마의 역사를 바꾼 방식
핵심 답변
엘리자베스 시대(1558~1603) 영국은 서양 드라마 역사의 두 번째 황금기입니다. 1576년 런던 최초의 상업 극장 '더 씨어터(The Theatre)'가 세워지며 드라마가 산업이 됐고, 1599년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 시기 셰익스피어에 앞서 드라마의 언어와 형식을 혁신한 인물이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1564~1593)입니다. 그는 극작 언어로서 무운시(blank verse)를 확립했고, 인간의 야망과 욕망을 탐구하는 비극의 주인공 원형을 만들었습니다.
1587년 가을, 런던 템스강 북안에 세워진 한 극장에서 새 연극이 공연됐다. 막이 오르자 중앙아시아 유목민 출신의 정복자 타무를레인이 무대를 가득 채우는 웅장한 언어로 자신의 야망을 선언했다. 그날 밤 런던의 관객들은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을 경험했다. 거칠고 리드미컬하며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그 언어는 영어로 쓰인 드라마가 이런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줬다.

그 연극이 <탐벌레인 대왕(Tamburlaine the Great)>이었고, 작가는 스물세 살의 크리스토퍼 말로였다. 셰익스피어가 런던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불과 몇 해 전의 일이었다.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드라마의 황금기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말로에서 시작됐다.
구두장이의 아들, 스파이, 극작가 — 크리스토퍼 말로의 삶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는 1564년 2월 26일 캔터베리에서 구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같은 해 태어났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은 전혀 달랐다. 말로는 캔터베리 킹스 스쿨에서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고, 케임브리지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고전 문학을 깊이 공부했다.
1587년, 케임브리지가 말로의 석사 학위 수여를 거부하려 했다. 잦은 무단 결석이 이유였다. 그러나 추밀원(Privy Council)이 직접 개입해 학위 수여를 명했다. 추밀원의 편지에는 그가 "여왕 폐하에게 이득이 되는 일에 충분히 복무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가 여왕의 정보망, 즉 스파이 조직에서 일했다는 강력한 암시였다. 말로의 삶은 그의 드라마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케임브리지를 떠난 말로는 런던으로 향해 극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6년이라는 짧은 극작 경력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끝났다. 1593년 5월 30일, 스물아홉의 나이에 런던 근교 덥트퍼드(Deptford)의 한 선술집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 살인자는 잉그램 프라이저(Ingram Frizer)였고, 그는 곧 사면을 받았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인물들이 모두 첩보 활동과 관련된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을 낳고 있다.
무운시 — 말로가 영어 드라마에 준 가장 큰 선물
말로가 드라마 역사에 남긴 가장 결정적인 공헌은 무운시(blank verse)를 영어 드라마의 표준 언어로 확립한 것이었다. 무운시는 운율(rhyme)은 없지만 일정한 리듬(iambic pentameter, 약강5보격)을 가진 시 형식이다. 약강5보격이란 약한 음절과 강한 음절이 번갈아 나오는 패턴이 다섯 번 반복되는 것으로, 영어의 자연스러운 말하기 리듬과 가장 가깝다.
말로 이전의 영어 드라마는 대부분 운율이 맞는 2행 연구(rhyming couplet)로 쓰였다. 운율을 맞추다 보면 자연스럽게 표현의 제약이 생기고, 대사가 인위적이고 딱딱해졌다. 말로는 <탐벌레인>에서 처음으로 이 제약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운율 없이 리듬만으로 언어가 흘러갔다. 그 결과로 탄생한 대사는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러웠고, 웅장하면서도 유연했다.

"말로의 <탐벌레인>에 등장하는 그의 특징적인 '강렬한 행(mighty line)'은(극작가이자 비평가인 벤 존슨의 표현) 이후 엘리자베스 시대와 제임스 시대 극작의 표준 매체로서 무운시를 확립했다."
— Britannica, Christopher Marlowe: Literary Works
테니슨은 말로를 이렇게 표현했다. "셰익스피어가 이 위대한 시대의 눈부신 태양이라면, 말로는 분명히 샛별이다." 말로가 없었다면 셰익스피어의 언어도 달랐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무운시를 완성했다면, 그 무운시를 발명한 것은 말로였다.
탐벌레인에서 파우스트까지 — 말로가 만든 비극 주인공의 원형
말로의 희곡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주인공이 모두 한계를 초월하려는 인물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 지식에 대한 욕망, 부에 대한 욕망. 이 욕망이 그들을 높이 올리지만, 결국 그 욕망이 그들을 파멸시킨다.
탐벌레인 대왕(Tamburlaine the Great, c.1587)은 스키타이의 양치기 출신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그의 야망은 경이롭고, 그의 웅변은 압도적이다. 관객들은 그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 야망의 크기에 압도됐다. 탐벌레인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하마르티아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결함 있는 영웅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 자체에 도전하는 존재였다.
닥터 파우스트(Doctor Faustus, c.1592)는 말로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힌다. 학자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통달했지만 여전히 더 알고 싶다. 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는다. 24년간 무한한 지식과 권력을 누리는 대신, 기한이 지나면 영혼을 악마에게 넘기는 거래였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도움으로 세상을 누비고 기적을 행하지만, 24년이 지나는 순간 공포 속에서 지옥으로 끌려간다.

파우스트 신화는 말로 이전에도 독일의 민간 전설로 존재했다. 그러나 말로는 이 이야기에 전혀 다른 깊이를 더했다. 기존 버전에서 파우스트는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었다. 말로의 파우스트는 회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끝내 하지 못하고 지옥으로 간다. 그것은 단순한 도덕극의 결말이 아니었다. 인간이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한 탐구였다.
"이제 마지막 날이 왔구나, 파우스트는 가야 한다.
지옥아, 영원히 오지 마라, 밤이여 영영 오지 마라.
흘러라, 흘러라 시간이여, 정오에 멈추어라,
그리하여 정오가 영원히 지속되게 하라."
— Christopher Marlowe, Doctor Faustus, 마지막 독백 중
파우스트의 마지막 독백은 영어 드라마 역사상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죽음 앞에서 시간을 멈추고 싶어하는 인간의 절규. 셰익스피어 이전, 이미 말로가 영어 드라마를 이런 높이까지 끌어올려 놓았다.
런던의 극장들 — 드라마가 산업이 되다
말로가 활동하던 시기, 런던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드라마가 처음으로 산업이 됐다. 1576년, 배우 제임스 버베이지(James Burbage)가 런던 쇼어디치(Shoreditch)에 영어권 최초의 상업 극장을 세웠다. 이름은 단순히 더 씨어터(The Theatre)였다. 이 건물의 등장이 모든 것을 바꿨다.
그 이전까지 연극은 여관 마당이나 귀족의 저택, 또는 광장에서 임시로 공연됐다. 상설 극장의 등장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첫째, 극장 건물 자체가 투자 대상이자 수익원이 됐다. 둘째, 전업 배우와 전업 극단이 가능해졌다. 드라마가 종교적 의무나 귀족의 오락이 아니라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이 된 것이다.

더 씨어터에 이어 런던 주변에 극장들이 빠르게 들어섰다. 커튼 씨어터(Curtain Theatre, 1577), 로즈 씨어터(Rose Theatre, 1587), 스완 씨어터(Swan Theatre, 1595). 말로의 <탐벌레인>이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던 곳이 바로 이 초기 런던 극장들이었다.
극장들은 런던 시내가 아니라 템스강 남안(Southwark) 등 시 당국의 관할 밖에 세워졌다. 런던 시의회는 연극을 도덕적으로 불건전하고 역병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시내에서 금지하려 했다. 극단들은 그 규제를 피해 시 경계 밖에 극장을 지었다. 역설적으로, 이 지리적 분리가 드라마를 교회와 귀족의 영향력에서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글로브 극장 — 1599년 12월, 템스강 남안에 세워진 목조 건물
1598년 12월의 어느 밤, 배우들이 쇼어디치에 있던 더 씨어터의 목재를 몰래 해체하기 시작했다. 건물주와의 임대 분쟁으로 극단이 극장을 잃게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목재들은 템스강을 건너 남안으로 옮겨졌고, 이듬해 새 극장을 짓는 데 사용됐다. 그것이 글로브 극장(Globe Theatre)이었다. 1599년에 문을 열었다.

글로브는 다각형 목조 구조물로, 지붕 없는 야외 공간을 중심으로 3층의 관람석이 둘러싸는 형태였다. 수용 인원은 2,000명에서 3,000명. 1페니를 내면 마당에 서서 관람하는 '피트(pit)' 관객이 될 수 있었고, 추가 비용을 내면 지붕 아래 유개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귀족부터 노동자까지, 런던의 모든 계층이 같은 극장에서 같은 드라마를 봤다. 고대 그리스의 대 디오니시아처럼, 글로브 역시 드라마를 공동체 전체의 경험으로 만들었다.
글로브의 주주들 중 한 명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다. 그는 극단의 배우이자 극작가이자 주주였다. 글로브 극장이 문을 열면서, 셰익스피어는 가장 완벽한 창작 환경을 얻었다. 자신의 글이 공연되는 극장을, 자신이 함께 소유하고 있었다. 이후 수년간 글로브 무대에서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 왕, 한여름 밤의 꿈이 초연됐다.
후원 제도와 전문 극단 — 드라마를 먹여 살린 시스템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드라마 산업을 이해하려면 후원 제도(patronage system)를 알아야 한다. 당시 법에 따르면, 공인된 후원자 없이 연극을 하는 배우는 '방랑자(vagrant)'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이 법을 피하기 위해 모든 전문 극단은 귀족의 이름을 빌려야 했다.
말로가 활동했던 극단이 어드미럴스 맨(Admiral's Men)이었다. 이 극단의 간판 배우는 에드워드 알렌(Edward Alleyn)으로, 비범한 신체적 존재감을 가진 당대 최고의 배우였다. 말로의 탐벌레인, 파우스트, 몰타의 바라바스는 모두 알렌을 위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속한 극단은 로드 체임벌레인스 맨(Lord Chamberlain's Men)이었다. 1594년 창단된 이 극단은 배우들이 주주로서 공동 운영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셰익스피어는 배우이자 극작가이자 주주였다. 제임스 1세가 즉위한 1603년, 왕이 직접 후원자가 되면서 극단 이름은 킹스 맨(King's Men)으로 바뀌었다. 이 극단은 1642년 청교도 혁명으로 극장이 강제 폐쇄될 때까지 반세기 가까이 영국 드라마의 정점에 있었다.
말로가 없었다면 셰익스피어도 없었다
크리스토퍼 말로는 6년이 채 안 되는 극작 경력 동안 7편의 희곡을 남겼다. 그가 스물아홉에 죽지 않았다면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2016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의 <뉴 옥스퍼드 셰익스피어> 판은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 3부작을 말로와의 공동 작품으로 표기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경쟁을 넘어 실질적인 협업이었을 가능성을 학계가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로의 유산은 분명하다. 무운시를 영어 드라마의 언어로 만들었고, 야망 있는 비극적 주인공이라는 원형을 창조했으며, 역사를 드라마의 소재로 본격 활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마가 종교적 교훈이나 귀족의 오락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593년 말로가 선술집에서 숨을 거뒀을 때, 셰익스피어는 이미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 수십 년간 셰익스피어는 말로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그러나 그 길을 훨씬 넓고 깊게 확장하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의 자리를 차지했다. 태양이 빛나기 위해 샛별이 먼저 떠오를 필요가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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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인용
1. Britannica, Christopher Marlowe — 생애, 무운시 확립, 작품 세계.
2. World History Encyclopedia, Christopher Marlowe: Poet, Playwright, Spy — 스파이 활동과 생애 상세.
3. Britannica, Lord Chamberlain's Men — 전문 극단과 후원 제도.
4. World History Encyclopedia, Elizabethan Theatre — 런던 극장들의 탄생과 발전.
5. Utah Shakespeare Festival, About the Playwright: Doctor Faustus — 말로와 닥터 파우스트 분석.
6. Wikipedia, Lord Chamberlain's Men — 글로브 극장 건립 과정과 극단 역사.
다음 편
드라마의 역사 014 — 윌리엄 셰익스피어, 인간의 모든 것을 무대에 올린 사람. 그가 어떻게 극작가가 됐는지, 비극과 희극과 역사극을 넘나드는 그의 세계는 어떻게 구성됐는지, 그리고 왜 4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지로 들어간다.
드라마의 역사
고대 그리스의 제의에서 시작해 오늘날 OTT까지,
드라마라는 예술이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해왔는지를 깊이 있게 추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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