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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노회찬 2002년 추억과 솔베지의 노래 그리고 유시민 추도사

by 자이미 2018.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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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우리의 기억 속에는 월드컵이 가득하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까지 올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에 국가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환호의 나날이었다. 거리에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모두가 한국의 승리를 외치는 모습은 장관이기도 했다. 그 뜨거운 열기 속 우린 노무현과 노회찬을 봤다. 


솔베지의 노래와 노회찬;

국민이 사랑했던 정치인 노무현과 노회찬, 그들을 추모하는 유시민의 눈물



참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노회찬 의원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들이 장례식 장을 찾았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많은 시민들은 그렇게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향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의 영정 앞에서 서럽게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은 참 서럽기만 하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가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은 평가할 수 있다. 그의 삶이 어땠는지 말이다. 노회찬 의원의 삶은 항상 서민과 노동자, 그리고 소외된 이들의 편이었다. 그의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생전 그들의 편에 서서 정치를 해왔던 고인을 추모하는 자발적 움직임은 그렇게 병원 장례식장에 긴 줄을 만들어냈다. 그의 지역구인 창원에서도 20평 작은 아파트. 그리고 그 앞에 있던 시장. 시장 상인들은 고인을 위해 음식들을 준비했다. 항상 오면 떡볶이를 먹었다는 고인. 그리고 언제나 상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고인들을 그들은 잊지 못한다.


26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노회찬 원내대표 추모식은 내부만이 아니라 바깥까지 그와 마지막을 함께 하려는 많은 이들로 가득했다.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사실이 너무 힘들고 아픈 사람들은 그렇게 서럽게 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언제 그와 같은 정치인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그 아픔과 슬픔은 더욱 커지는 것이리라.


JTBC 뉴스룸 손석희의 뉴스브리핑 시간에는 다시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많은 시간들을 공유했던 정치인과 언론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두 사람이다. 토론의 달인들은 그들이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유시민 작가까지 이들 세 사람은 우리가 아는 진정한 토론의 신들이었다. 


손석희 앵커와 유시민 작가가 분석적이고 날카로우며 때로는 차갑고 무섭다는 느낌까지 들었다면 노회찬 의원은 풍자의 달인이었다. 해학을 접목한 그의 토론은 그래서 언제나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이제는 볼 수 없다. 그런 친구를 떠나보내는 두 사람의 마음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극적인 역전 끝에 대선 후보가 되었다. 드라마틱한 여정은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그 해에는 우리 사회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본격적으로 대중 속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진보정당의 대표주자였던 권영길 후보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다?"는 코미디 프로그램 유행어가 아닌 대선에 나온 권 후보의 발언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노회찬이 있었다. 대중들에게 진보 정당을 익숙하게 만든 일등공신인 노회찬은 그렇게 세상에 등장했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그리그의 '솔베지의 노래'는 노회찬 의원의 첼로로 추억 된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노동자의 삶을 살아왔던 노회찬. 그는 그렇게 노동자를 대변하는 진보정치인이 되었다. 그 길을 걷는 그의 모습과 첼로로 '솔베지의 노래'를 켜는 모습이 쉽게 와 닿지 않지만 그것도 그의 모습이다.


"그 여름날이 가고 더 세월이 가서 누군가 지금도 그를 기억하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대답도 그럴 것입니다"


앵커브리핑 말미의 손석희의 이 말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엔딩곡까지 이어지는 손석희 앵커가 친구를 떠나 보내는 방식은 격식이 있었고 한없이 따뜻했다. 누구보다 그를 떠나보내기 싫었을 그가 최대한 감정을 억제한 채 친구의 마지막을 전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습니다"


"회찬이 형! 늘 형으로 여겼지만 단 한 번도 형이라고 불러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첨으로 불러볼게요. 형!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세요. 자주 더 멋지게 첼로를 켜고, 더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쓰고, 김지선 님을 또 만나서 더 크고, 깊은 사랑을 나누세요"


"그리고 가끔씩은 물 맑은 호수로 저와 단둘이 낚시를 가기로 해요. 회찬이 형,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형을 좋아했어요. 다음 생은 저도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 때는 만나는 첫 순간부터 형이라고 할게요. 잘가요. 회찬이 형. 아시죠? 형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는 것을요"


유시민 작가는 노회찬 원내대표의 추목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의 추도사는 모두를 울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다음 생을 믿지 않지만 다음 생은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에서 다시 만나 단 둘이 낚시를 하러 가자는 유 작가는 애써 눈물을 참으려 노력하며 추도사를 했다.


유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의원이라는 걸출한 두 정치인을 보낸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기도 하다. 참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정치인이 되었고, 그의 곁을 지켰던 이가 바로 유시민이었다. 그를 보낸 후 진보정치를 위해 노 의원과 함께 만든 정의당.


정치와 멀어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그는 자신이 함께 했던 시사 프로그램 후임을 노 의원에게 맡기고 보다 자연인의 삶을 살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동지를 잃고 망연자실해 오열 할 수밖에 없었다. 2002년 세상에 자신들을 알린 두 정치인과 유시민. 참 얄궂다. 


노회찬 의원은 27일 경기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 영면한다. 그는 비록 그렇게 우리와 잠시 떨어져 있지만, 그가 마지막을 남긴 것처럼 자신은 여기서 멈추지만 정의당과 함께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만들어질 것이다. 시대는 변했고 이제 우리도 정의당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다. 


그 길고 험한 길을 힘겹게 이끌어왔던 정치인이자 노동자였던 노회찬은 다시 한 번 많은 이들에게 걸어가야 할 길을 열어주었다. 그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도록 남겨진 이들은 함께 할 것이다. 모두가 함께 그를 떠나보내며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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