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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Variety 버라이어티

달리는 사이-여성 예능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by 자이미 202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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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에서 방송된 <달리는 사이>는 의외의 재미와 가치를 보여주었다. 4부작으로 준비된 이 프로그램은 여성 예능이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반갑다. 완벽하지 않지만 올 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성 중심의 예능이 2021년에는 보다 활성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자 아이돌들이 모여 일정 구간을 달리는 방송은 생경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물론 또 여자 아이돌이냐는 질문이 되돌아올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방점은 뛴다는 것에 있다. 달리는 예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달리는 방송은 존재했다.

긴 시간 달리는 다큐 형식의 방송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여성들로만 구성된 형식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달리기 위한 목적의 방송이 아니라, 달린다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다른 점들이 존재한다.

 

선미, 하니, 유아, 청하, 츄 등 데뷔 연도가 다른 다섯 멤버들이 모여 함께 달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과정이 단순했지만 흥미로웠다. 동갑내기들이 두 팀이 존재하고, 막내가 들어오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춘 것도 의도적인지 모르지만 좋았다.

 

다섯 멤버 중 하니가 유일하게 '러닝 모임'을 하며 달리는 방식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선택이었다. 달리기는 의외로 준비해야 될 것들이 많다. 그저 달리기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니 말이다. 달린다는 것은 당장 그 속도에 호흡을 맞춰야 한다.

 

기존의 호흡법과 다른 호흡법을 익히지 않으면 달릴 수도 없다는 점에서 마치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과 같은 심정으로 달리기를 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러닝 하이'를 경험하는 순간 달리기의 마력에 빠져버린 다는 점도 재미있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같은 일을 한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직업을 가진 아이돌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선배와 후배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공감대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도 이들을 멤버로 택한 것은 좋았다.

 

풍경 좋은 곳을 달리며 조용하게 자연만 바라보는 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 뛰는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단 점에서도 달리기는 멋지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달리기의 매력은 풍성하다.

 

달리고 나서 허기진 배를 맛있는 음식으로 채우고, 그렇게 함께 달렸다는 동지애는 결국 이들을 더욱 돈독하게 해줄 수밖에 없다. 알지만 절친 사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경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첫 달리기 이후 급격하게 그 벽을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통해 인생을 배워가고 있다는 하니의 말처럼 그들은 달리기를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한 듯하다. 쉬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강요당해왔던 아이돌들. 나태해지지 말고 지쳐서도 안 된다며 오직 달리기를 강요받았던 그들이 조금은 쉬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물론 이 한 번의 달리기가 아니라, 그렇게 넘어지다보니 터득할 수 있었던 경험치였다. 그런 경험치는 자신만 간직하고 있는 깨달음이었지만, '러닝 크루'가 생기고 함께 뛰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청하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그렇게 같은 길을 가는 이들이 공감하는 상황들. 그게 바로 <달리는 사이>가 담고자 했던 가치였을 것이다. 쉬는 것 자체를 증오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조금은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서로 깨달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무한경쟁에 내맡겨진 현대인들에게 쉼은 결국 낙오로 연결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사실일까? 하는 의문은 다시 들 수밖에 없다. 잠시 쉬는 것이 낙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무한대로 달리기만 할 수는 없다. 호흡을 가다듬고 멀리 갈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이는 쉽게 지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달리기를 통해 그 이치를 깨닫게 되면 인생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이 낙오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달리는 사이> 첫 회 청하가 털어놓은 불안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왔을 듯하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떠안고 있는 불안이기도 하니 말이다.

 

여성 예능들은 다시 부활하고 있다. 과거의 여성 예능이 남성의 대척점에서 보여주기 위한 방식에 집중했다면 이제 여성 예능은 남성의 반대편이 아닌, 여성 그 자체에 보다 집중하는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현재는 그런 과정들을 조금씩 터득하고 적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달리는 사이>는 그 진보된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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