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edia Shout/Alternative Radio 대안 라디오

메건과 칸에서 벗은 하이힐, 마로니에 12000과 96% 수치의 기괴함

by 자이미 2018. 5. 22.
반응형

지난 5월 19일 영국에서는 '로얄 웨딩'이 개최되었다. 영국 왕위 계승 서열 6위인 해리 왕자의 미국 배우인 메건 마클의 결혼식은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 실시간 중계가 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인 영국 왕실이 흑인과 백인 혼혈에 이혼 경험이 있는 배우와 결혼을 받아들였다는 것으로 큰 화제였다. 


여자 남자가 아닌 사람;

마로니에 모인 1만의 여성의 외침, 96% 범인 검거율 속에 숨겨진 허수의 아픔



가장 보수적인 영국 왕실에서 메건 마클을 받아들인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세월이 변화하고 있음을 이번 '로얄 웨딩'은 전 세계에 알린 셈이 되었다. 흑인 주교의 주례에 남편에 대한 복종 선언도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잡지 않고 홀로 입장한 파격의 연속이었던 결혼식은 메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으로 인해 관심이 뜨거웠던 칸 영화제. 하지만 최고 평점과 상관없이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다. 영화제와 상관없이 비평가들이 주는 상만 받았을 뿐이다. 가족 이야기를 다룬 고레이다 감독의 신작이 영광을 안은 것은 예고된 결과일 뿐이었다. 


지난 19일 토요일 오후 마로니에 공원에는 1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운집했다. 주최 측(2천 명)도 경찰의 예상(1천 명)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홍대 누드모델 남성 몰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긴급하게 추진된 집회였다. 모두의 예상을 깬 많은 여성들의 참여는 많은 의미를 던졌다. 


홍대 사건의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빠르게 수사가 되고 구속이 되었다는 분노였다. 물론 이 사건은 범인을 특정하고 수사가 빠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명확했다. 여성들의 주장과 달리, 그 역할이 달라졌다고 해도 수사는 동일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는 의미다. 


여성들이 몰라서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 한 사건이 아니다. 그동안 묵혀 왔던 수많은 여성을 향한 범죄에 대한 해결이 지지부진해왔음을 고발하기 위함이다.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이 억압에 대한 분노가 주말 마로니에 공원에 1만 2천 명이나 되는 여성이 함께 하게했다. 


"미국의 모든 여성은 매일 기름진 냄비나 프라이팬과 씨름하고 있다"


1993년 미국 세제 광고에 한 어린 아이가 반기를 들었다. 그 아이는 해당 회사에 편지를 보내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주방에서 기름진 식기와 씨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광고는 '여성'에서 '사람'으로 문구가 바뀌었다. 그 일을 한 어린 소녀가 바로 메건 마클이었다. 당시 나이 11살이었다. 


그 아이가 커서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가장 보수적인 집단인 영국 왕실이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여성이 바로 메건 마클이다. 흑백 혼혈에 해리 왕자보다 나이도 많다. 거기에 이미 한 차례 결혼한 경험도 있다. 모든 것이 영국 왕실이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모든 악재를 뚫고 결혼식을 올렸다. 


영국의 유일한 흑인 주교가 주례를 했고, 왕실의 전통인 복종 선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잡지 않고 당당하게 홀로 결혼식 장에 들어선 메건. 그녀는 11살이던 시절 남과 여를 나눈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2018년 결혼식을 통해 사회적 편견에 맞서고 있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남과 여로 나뉜 것이 아닌 사람들의 세상일 뿐이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칸 영화제 레드 카펫에서 갑자기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입장했다.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칸 영화제는 보수적인 레드 카펫 원칙이 있다. 여성의 경우 드레스와 하이힐을 꼭 착용해야만 한다. 그 원칙을 여성들은 스스로 파괴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케이트 블란쳇은 여성들과 손을 잡고 레드 카펫을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성들과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남성 심사위원이 절대 다수였던 칸 영화제는 올 해 9명 중 5명이 여성 심사위원으로 위촉 될 정도로 스스로 변하려 노력했다. 


폐막식 뤼미에르 대극장을 뒤흔든 건 이탈리아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의 충격적인 미투였다. 와인스타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와 함께 영화제를 여자 사냥터로 여기는 남자들에 대한 분노도 여과 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지금 이 현장에도 그런 자가 있다는 말은 충격일 수밖에 업었다. 


칸 영화제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버닝>이 무관에 그치고 <만비키 가족>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유는 그래서 명확하다. 대중적인 힘을 가진 여성 영화인들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고 있다. 11살 소녀 메건이 '사람'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몰카 범죄 검거율 96%라는 경찰의 발표. 하지만 정작 구속되는 이는 이중 3% 미만이다. 불구속이 86%에 이르는 현실 속에서 이런 검거율 마케팅은 오히려 여성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 뿐이다. 오랜 시간 남성이 지배해온 세상이 갑자기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그리고 변화의 물결은 더욱 도도하게 휘몰아칠 것이다. 


여성과 남성을 분류하는 세상이 아닌 모두를 아우르는 '사람'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변해야 한다. 그 중심에는 기득권을 쥐고 있던 남성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흐름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다. IBM 사장이 개인용 컴퓨터는 무의미하다는 생각과 달리, 우린 모두 개인용 컴퓨터를 가지고 있듯,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다. 


남과 여의 젠더 전쟁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결 구도로 제로섬 게임을 이어가는 것은 절대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남과 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개선과 함께 사회적 시각 등 많은 것들이 변해야 한다. 그리고 더디지만 현재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