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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Variety 버라이어티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유재석 눈물의 도시락에 담긴 우토로 마을과 광복 70주년

by 자이미 2015.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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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와 유재석이 함께 한 우토로 마을은 우리의 슬픈 현대사를 그대로 품고 있는 서글픈 공간이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되어 갔던 조선인들과 후손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우토로 마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토토로가 살고 있는 동화 같은 곳과는 한 글자 차이인 그곳에는 친일이 여전히 득세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더욱 처절하게 만들고 있다.

 

유재석 도시락 식사에 담긴 가치;

우토로 마을에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따뜻한 밥 한 끼의 힘

 

 

 

우토로 마을을 아는 이들은 한 번쯤이라도 기부를 해봤거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일 것이다. 과거 우토로 마을을 살리기 위한 기부 운동이 거세게 일었었다.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 운동에 많은 국민들이 호응했고, 우토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 역시 커졌다. 

 

 

참여정부 시절인 당시 국가는 30억을 지원했고, 그 지원금으로 일본에 강제로 빼앗긴 우토로 마을의 1/3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그들을 돕기 위해 나름의 노력들을 해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여러 방법들을 고민해야 했던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현실 속에서 빼앗긴 집이라도 찾아주는 것이 전부였던 그 시절, 우린 노무현 정부와 함께였다.  

 

국가가 지킬 수 없었던 국민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이 지독할 정도로 책임감 없는 국가는 그들을 그대로 방치했다. 온 가족이 징용자가 되어 일본에 왔지만 돌아갈 돈도 없어 그곳에서 정착해야만 했던 그들. 그리워도 도저히 갈 수 없었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가진 채 그들은 비행장 건설을 하던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왔다. 그 지독한 역사의 현장에서 떠날 수도 없었던 그들의 삶은 우리가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았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우토로는 일본 오사카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게 된 이유는 1941년 2차 세계대전 중 교토 군 비행장 건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종전으로 치달으며 군수물자만이 아니라 비행장도 절실해진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을 강제 동원하고 건설하게 시작했다.

 

일본이 당시 강제 동원한 노동자의 수가 7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중 한국인은 1300명이었고 그들은 우토로 마을에 집단을 이뤄 숙식을 했다. 하지만 이후 돈을 받지 못해 고향에 돌아올 수도 없었던 그들은 그렇게 우토로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그 지독한 역사의 현장에서 힘겹게 살아왔던 그들은 이제 150여 명의 주민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한다.

 

 

하하와 유재석이 찾았던 구순의 강경남 할머니는 바로 이곳을 지킨 1세대 주민 중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다. 8살에 가족을 따라 우토로 마을로 온 강경남 할머니의 고향인 경남 사천군 용현면은 그렇게 할머니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는 곳이 되어 있었다. 

 

경남 사투리가 아니면 소통이 힘겹고 일본어가 더 편하기는 하지만 강경남 할머니에게 고향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일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그렇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그곳에서 터전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83년이라는 시간을 강경남 할머니는 우토로 마을에서 살아왔다. 

 

한국 사람들의 방문에 행복해하던 할머니. 자신이 알고 있는 노래를 부르며 그 마음을 표현하는 할머니의 모습 속에는 지독한 우리의 현대사가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었다.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침수되는 지역. 하지만 일본은 그 어떤 행정적 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

 

하수도 시설도 없어 언제나 물이 넘치는 그 지독한 곳에서 그들은 살아냈다. 자신들의 삶을 알리고 지키려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 역시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우토로 마을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일본 식민지배의 문제가 모두 담겨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제대로 된 배상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불법 체류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강제 퇴거 명령까지 내렸다. 자신들의 전쟁을 위해 강제로 징용했던 그들이 이제 전쟁이 끝나고 살만하니 그들에게 그 땅에서 나가라고 일방적인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1989년 일본 닛산은 주민들 몰래 토지를 매각했다. 그리고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강제퇴거 판결을 내려 우토로 마을 사람들은 졸지에 난민이 되고 말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우리가 여전히 일본 식민지배의 연장선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자신들의 전쟁을 위해 강제 노동을 시키고 방치하더니 이제는 모두 떠나라는 일본 정부의 행태는 경악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그들이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왜 그들이 그곳에서 그렇게 정착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본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최고재판소에 의해 강제 퇴거 판결이 내려진 후 우토로 국제대책회의가 결성되었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일본인 다가와 아키코가 대표로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30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 수도 시설조차 없었던 우토로. 그곳에 살던 친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그녀는 그렇게 '우토로에 수도 시설을 설치'하자며 운동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1941년 강제 징용되어 왔던 한국인들은 그렇게 버려진 채 살아내야 했다. 일본도 한국도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렇게 그곳에 삶의 터전을 세웠고 7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곳은 그들에게는 고향이다. 수도도 설치되지 않고 과거 비행장 건설로 인해 다른 지대보다 낮아져 비만 오면 물이 넘치는 그곳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음식과 하하가 직접 준비한 스카프와 헌팅캡 등은 그나마 그들에게 행복을 주는 시간들이었다. 이제 홀로 남겨진 1세대 강경남 할머니를 위해 그녀의 고향을 카메라에 담은 무도. 그렇게 직접 가보지 못한 그리고 갈 수도 없었던 그곳을 영상과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강경남 할머니는 떠나는 그들에게 "나쁜 짓 하지 말고 살라"는 말을 건넨다. 마치 손주들에게 덕담을 하는 듯한 강경남 할머니를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서럽게 우는 그들의 모습은 시청자들마저 울렸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왔습니다. 저희가..."라며 서럽게 울던 유재석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지독한 역사의 현장을 지켜주지 못한 것 역시 우리에게는 아픈 상처로 남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민지배로 인해 국민들이 강제징용을 당한 것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해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들을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지 못한 한국 정부의 문제는 결코 용서될 수 없는 문제다.

 

친일파 숙청을 막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등용한 이승만 정부. 그들은 그렇게 권력욕에 빠져 국민들을 버렸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며 한강 다리를 폭파한 이승만 정부는 그렇게 대한민국을 친일파들의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권력의 중심에 선 채 호위호식하고 있다. 그들에게 국가라는 공간은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도 무관한 공간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토로 마을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우토로 주민이 떠나는 그들을 위해 준비한 도시락. 그 도시락을 차 안에서 말 없이 먹으며 눈물을 애써 참는 유재석의 모습에 <배달의 무도>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가 명확하게 담겨 있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선물하려던 그들은 그렇게 그들에게서 정성이 깃든 도시락을 받았다.

 

한국 정부도 일본도 버린 우토로 마을 주민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그들을 위해 정성을 들여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도시락을 먹으며 만감이 교차하는 유재석의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반문을 던지는 그 도시락 속에 <배달의 무도>가 전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광복 70주년 여전히 버려진 채 소외되어야 했던 우토로 마을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고 현재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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