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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개봉 스크린 독점 논란, 독과점 멀티플렉스 시대 옥자가 던진 화두

by 자이미 2017.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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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가 개봉되었다. 넷플렉스가 극장 개봉 시간보다 조금 빨리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는 재미있는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스트리밍과 극장 개봉이 동시에 이뤄지는 현상은 이제 자주 접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시대는 변화고 있고, 그런 흐름에서 대중들의 기호 선호도에 따라 모든 산업의 틀도 바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독과점 멀티플렉스;

극장 장악한 3개의 멀티플렉스 문제 다시 생각하게 한 옥자 개봉기



옥자가 개인 극장과 아트 시네마 등지에서 개봉되었다. 칸느 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멀티플렉스들이 서로 개봉을 하겠다고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호재 속에서도 대한민국 극장을 지배하고 있는 3대 멀티플렉스들인 CJ, 롯데, 메가박스 등은 모두 <옥자>를 거부했다. 


통상 극장에 걸린 영화는 홀딩 기간이 존재한다. 극장에서 영화가 내려선 후 일정 기간 시간이 흐른 후 스트리밍 서비스 등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이 <옥자>를 거부한 것은 거대 공룡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렉스 때문이다. 극장의 존폐를 위협하는 새로운 기술은 그렇게 <옥자>를 중간에 두고 전쟁 아닌 전쟁을 시작했다. 


3대 멀티플렉스와 넥플렉스의 대결 구도는 이미 예고되었다. 칸느 영화제에서도 <옥자>를 두고 극장협회와 이견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만이 영화라는 주장과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에 대한 이해 사이에서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극장과 스트리밍 업체의 힘 겨루기는 어차피 한 번은 해야만 하는 싸움이다. 이런 논쟁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다. 협의나 합의를 이루기는 어렵지만 서로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과정은 될 수 있다. 시대는 변하고 기술 역시 놀랍고 경이롭게 바뀌고 있다. 


스트리밍 업체가 이렇게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기술의 진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세상을 연결했고 영상 압축 기술은 과거 상상도 못했던 엄청난 화질을 영상을 자유롭게 유통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화면은 이제 극장만의 전유물이 아닌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빔 프로젝트로 큰 화면을 즐기는 형식은 과거부터 이어져왔지만, 화질이라는 측면에서 항상 문제가 되어왔다. 이런 약점을 TV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작은 화면의 TV는 사라져가고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100인치 TV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40인치나 50인치 이상의 TV 가격은 점점 내려가며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이런 기술적 변화는 자연스럽게 스트리밍 업체가 성행할 수 있는 조건으로 다가온다. 1인 중심의 사회적 변화와 함께 다수가 함께 모여 관람을 하는 형식의 극장에 대한 불편함도 한 몫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의 변화는 기술이 보완하고 그런 흐름은 결국 새로운 영화 관람 형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국가와 지역 중심일 수밖에 없는 극장 산업과 달리, 스트리밍 산업은 그 경계가 없다. 접속만 가능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형식을 통해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대는 경쟁 자체가 될 수 없다. 그만큼 소비자 중심의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장은 결국 소비자 중심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극장과 스트리밍 업체의 거대 자본의 대결은 결국 소비자가 무엇을 선택할 것 인지가 중요할 뿐이니 말이다. 멀티플렉스는 대한민국 극장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한 거대 공룡이다. 


그들의 벌이는 스크린 장악은 담합과 독점이라는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돈이 되는 영화는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스크린을 활용해 단기간 큰 수익을 거두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말 그대로 돈이 되지 않는 영화는 멀티플렉스 세상에서는 극장에서 만나기도 어렵다는 의미다. 


멀티플렉스의 독과점과 담합은 오래된 논란 거리다. 90% 이상의 극장을 장악한 3대 멀티플렉스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들이 스크린을 내주지 않으면 상영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권력은 압도적이다. 이런 극단적인 힘의 불균형은 자연스럽게 독재적 권력을 낳을 수밖에는 없다. 이런 절대적 힘은 담합을 이끌기도 한다. 


극장 요금 등을 3대 멀티플렉스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하고 올리면 반대할 수 있는 방식이 없다. 부당하다고 느껴도 이를 소비자들이 바꾸기 힘들다. 모두의 힘을 모아 멀티플렉스 관람 거부 운동을 벌이면 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멀티플렉스에서 거부 당한 <옥자>는 또 다른 독점 논란에 휩싸였다. 전국 84개 극장, 108개 스크린에 29일 전국 개봉된 <옥자>는 상대적으로 작은 스크린임에도 관객 반응은 뜨거웠다. 좌석 점유율이 43.8%라는 점에서 관객들이 <옥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드러난다. 


평일 43%가 넘는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스크린 독점 논란이 자연스럽게 불거졌다. <옥자>는 말 그대로 돈이 된다. 작은 극장들과 독립 영화와 예술 영화 등을 주로 상영하던 극장들이 고래들 싸움에 나름의 호기를 맞은 셈이다. 


하루 종일 <옥자>만 상영하는 극장들이 나오며 그렇지 않아도 스크린 확보가 어려운 작은 영화들은 설 자리를 잃고 만 상황이 되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스크린 독점을 피하고 선택된 극장을 독점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멀티플렉스를 통해 개봉되어야 할 영화가 작은 영화들을 위한 공간을 차지하며 벌어진 씁쓸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쁜 징후만 보인 것은 아니다. <옥자> 개봉을 통해 단기간이기는 하지만 수익성 악화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그런 극장이 있는지 조차 몰랐던 많은 관객들에게 극장을 소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호재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거대 자본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담은 <옥자>가 현실 속에서 실제 이런 대립 구도를 만들고 있다. 거대 자본vs거대 자본이라는 대립 관계는 빈약한 자본들을 더욱 옥죄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주제가 현실을 잠식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 


답은 없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실험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스트리밍 방식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를 위한 기술적인 문화적인 형태는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이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는 이런 스트리밍 방식이 채울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부여하는 일 외에는 없다. 


<옥자>가 만든 재미있는 현상에 울고 웃는 이들도 많아졌다. 스트리밍 방식의 가장 큰 문제인 불법 복제는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옥자>에게 스크린을 빼앗긴 많은 영화들은 개봉을 미루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소외되었던 중소 극장은 간만에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뭐가 답이라고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린 새로운 시대로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옥자> 자체가 논쟁적인 존재가 되며 새로운 문화와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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