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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Entertainment 연예

옹달샘 기자회견 민망하고 희한했던 사과, 밑천 드러낸 존재감

by 자이미 201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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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 막말로 비난을 받고 있는 장동민과 유세윤, 유상무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삼풍백화점 최후 생존자가 고소를 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며, 발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이다. 더는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철저하게 계산된 그들의 모습은 동정보다는 반발로 다가온다. 

사과보다는 방송에 대한 집착;

세상에서 가장 민망하고 희한했던 사과쇼,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갑작스럽게 호텔을 잡고 기자회견을 연 옹달샘. 그들이 쏟아낸 말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기자회견인지 궁금하게 합니다. 분명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그 어떤 질문에도 사과를 빼먹지 않았다. 그들이 이 자리가 어떤 것을 위함인지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세상 살면서 누구나 잘못은 한다. 그리고 한 번의 잘못이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을 수 없음도 분명하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지독한 도덕심이 강요되고는 한다. 대중들은 도덕적인 가치관을 자신이나 이웃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 투영하고는 한다. 자신은 잘못을 해도 그들은 잘못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인간이기에 가지는 나약한 자기 합리화이기도 하다.

 

"사과가 너무 늦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가볍게 여겼다는 것도 사죄의 말을 드리겠다"

 

사과할 기회들이 많았는데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유세윤의 답이 그들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과가 이르고 늦고의 문제 아니다. 그가 이야기 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가볍게 여겼다'라는 부분에서 그들이 대중들과 큰 괴리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두가 경악하는 사안에 대해 그들은 심각할 것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것이 문제다. 일베라는 사이트에서나 볼 수 있는 험악하고 패륜적인 발언들을 팟 캐스트라고는 하지만 방송을 통해 배설을 해왔던 그들은 그것이 코미디라고 자처해왔다. 이 정도 발언들은 충분히 통용된다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느끼는 감성의 흐름이 일반 대중들과 명확하게 다름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농락한 일베와 삼풍백화점 최후 생존자를 능욕한 옹달샘. 그들의 차이는 일베를 앞세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차이 정도다. 능욕하고 희화하한 그들의 행태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갖춘 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을 통해 늘어놓은 행위는 비난을 넘어 법적인 처벌이 당연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장동민은 옹달샘을 대표해 자신들은 언제나 진심을 다해 사죄의 말씀을 드렸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이 사과를 하는데 끊임없이 비난 여론이 커진 탓인 듯하다. 자신들은 진심을 다한다고 했는데 남들이 몰라주니 속상하다는 투다. 왜 자신들이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데 너희는 용서라는 것을 모르느냐는 식의 행동은 그들의 기자회견 내내 '사과' 속에 담긴 그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기자들의 어떤 질문에도 "잘못했다 사과한다"로 통일했다. 이는 자신들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보다는 오직 '사과'라는 단어를 각인시키겠다는 목적만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답답한 방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막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장동민과 옹달샘을 옹호하는 이들은 다른 잘못한 이들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은 하지 않고 왜 그들에게만 돌을 던지느냐고 분노한다. 하지만 이들을 분노하는 이들은 정치인이나 다른 잘못을 저지른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비난을 해왔다. 다만 그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도 넘어가야 한다는 식의 말은 말이 아니다.

 

역으로 일개 개그맨들의 발언에 국민들이 이렇게 분노하고 있고, 그 분노가 세상을 바로잡게 하는 기회가 된다면 이는 단순히 그들에 대한 단죄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를 업으로 삼고 사는 자들 역시 국민들이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분노하는지에 대한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패륜적 발언을 한 이들이 방송에서 퇴출되는 현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정치인들의 한심한 작태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군이냐, 과거와 현재의 발언의 유무 차이가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사회 통념을 벗어나는 배설에 가까운 발언들을 지난 1년 전까지 쏟아냈다. 방송 활동이 늘어나며 그 발언 수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심성이 달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많은 이들은 그들이 방송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다.

 

 

사과를 하러 나온 자리에서 사과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과는 하지만 방송 일을 그만둔다는 식의 발언은 하지 못하겠다가 올달샘의 확고한 신념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방송사에서 그만두라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자신들이 하차를 결정하지는 않겠다는 논리였다. 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그들의 사과와 반응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식으로 서로에게 공을 던지고 있다.

 

방송 하차와 관련해서는 그저 서로가 결단을 하지 않은 채 공만 던지고 있는 형국은 한심하다. 옹달샘은 자신이 그 어떤 잘못을 해도 밥줄이 되는 방송을 하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단호한 결의를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사과는 얼마든 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지는 말라는 경고도 함께였다. 잘못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할 수는 있어도 책임에 대한 방법은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발언 속에는 그들의 존재감이 어떤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순히 막말과 패륜적 발언 속에서 총체적 난국을 정리하기 위한 사과는 아니었다. 이 시점에 그들이 하고 싶었던 것은 고소 사건에 대한 방어의 개념이 강해 보인다. 장동민의 삼풍백화점 생존자에 대한 비하는 분명 큰 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분노와 함께 법적인 처벌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은 최소한 분위기를 무마시키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마련하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구라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잘못된 발언이 논란이 되자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고했다. 비록 말도 안 되는 욕설들로 관심을 받고 지상파까지 진출했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책임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방송을 그만두고 그는 직접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 사죄하고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최소한 김구라의 행동이 진정성 있는 반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이 동반되지 않는 한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진정성을 증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김구라는 이 행동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방송 복귀 후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구라의 행동으로 보인 사과는 중요했다.

 

옹달샘은 최소한 김구라의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 지금 당장 방송을 그만둔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최소한 그런 선언적 발언들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려 노력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방송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사과는 하지만 방송 하차는 할 수 없다는 생각만이 가득한 그들에게서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대중들이 찾기 힘들어 하는 이유 역시 그 지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들이 진짜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있나? 라는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사과에도 시점이 있고 유효한 기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과에 담긴 진정성이 대중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그 사과는 차라리 하지 않은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옹달샘은 여전히 자신들이 옹호하는 일부 집단들을 위한 행동만 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진정 사과를 해야 하는 대상은 그들을 비판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하는 주체만 만족하는 사과는 사과일 수가 없다. 여전히 대중들을 농락하는 그들의 기자회견은 그들의 밑천을 모두 드러낸 한 편의 쇼와 다름없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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