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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Broadcast 방송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제작진은 왜 김정은의 스위스 시절 친구를 만났을까?

by 자이미 2018.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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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사람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내세우고 알림으로서 존재하는 사람이다. 트럼프에 대한 일화는 말 그대로 수없이 많다. 그에 반해 김정은의 정확한 나이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여전히 모호한 지점이 많다. 극단적으로 다른 두 정상은 오는 6월 12일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갖는다.


등소평과 김정은;
스위스 유학파 김정은의 북한,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그를 분석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위스에 유학을 했다. 당시 그의 형과 여동생도 함께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을 했다는 사실은 다양한 경로로 확인되었다. 한때 김 위원장의 친형인 김정철을 김정은으로 오보를 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혼선도 사라졌다. 왜 김 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은 중요할까?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김 위원장이 유학한 것으로 알려진 스위스 베른에서 취재를 했다. 그가 다니던 학교, 그리고 김여정과 함께 거주했다는 집까지 추적하는 과정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작지만 역사가 존재하는 베른. 그곳에서 김 위원장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그건 중요하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해외 유학을 가거나 하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 방문이 해외를 나간 전부라고 알려져 있다. '은둔의 지도자'라고 불릴 정도로 그들은 북한을 떠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이 서방 세계를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와 교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1인 지배체제의 북한 지도자가 해외에 나가거나 그럴 일이 없었다는 것은 지배 형태에도 한계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들이 스위스 베른에 집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와 달리, 김 위원장은 유학파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스위스에 유학을 보냈다. 자신과 아버지 세대와 달리, 자식들에게 유학을 하도록 한 것은 북한 지배 방식의 변화이기도 하다. 체제 안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과 달리, 이제는 경제 발전에 나서야 하는 세대들에게 원하는 것이 분명 존재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친하게 지냈다는 포르투칼 출신의 조아오 미카엘로 인터뷰도 흥미로웠다. '박운'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 미카엘로는 학교에서 두 사람만 스위스 사람이 아니라 친해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의 집에도 놀러갔다는 미카엘로는 북한에 초대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북한에서 김 위원장과 직접 찍은 사진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스위스 학교 동창생인 미카엘로를 북한에 초대한 이유는 여러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미카엘로가 김 위원장과 관련해 인터뷰를 한 것을 직접 보고 초대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동창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겠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 볼 수는 없다. 악동 로드먼을 다섯 번이나 평양에 초대한 이유도 그저 농구를 좋아해 NBA 스타와 만난 것은 아니다. 트럼프를 지지하고, 그의 쇼에도 등장했던 로드먼은 미국에 대한 의미를 품고 있다.


외부 세계에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너무 과한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미도 품고 있다고 볼 수밖에는 없다.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언급될 수밖에 없는 것은 김정은의 어린 시절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에 의해 전속 요리사로 십여년 북에서 음식을 만들었던 그는 누구보다 김정은에 대한 기억이 선명했다. 스위스를 갔다 온 후 기차에서 나눴던 이야기 속에 현재의 북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해외에 나가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를 목격하고 체험한 것은 큰 힘이 되었다는 의미다.

김정은과 김여정은 스위스 베른의 보통 학교에 다녔다. 충분히 최고급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묵었던 숙소는 의외의 장소였다. 리베펠트라는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주거지역의 방 4개 짜리 숙소에 있었다. 최고급 숙소와 학교에서 황제처럼 유학을 할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학 생활에 큰 규제는 없었다고 한다. 친구가 김정은이 살던 집까지 놀러와 음식을 함께 할 정도라면 일상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농구를 했고, 주말에는 스위스 사람들이 다 그렇듯 스키를 타러 다녔다. 학교 성적에 대해서도 최악이라는 말들도 있었지만, 잘 했다는 동창의 증언도 흥미롭다.


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학교와 집에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는 무엇을 느꼈을까? 유학 후 그들은 현재 북한을 이끄는 최고 수령과 2인자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 등소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등소평 역시 프랑스 유학파 출신이다. 교육에 누구보다 큰 가치를 둔 아버지 덕에 프랑스 유학을 떠났지만 집안이 급격하게 나빠져, 등소평은 르노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었다.

노조 활동으로 쫓겨난 등소평은 소련에서 1년간 유학을 하며 공산당에 가입하고, 중국으로 들어와 본격적인 공산당 활동을 했다. 등소평은 현재의 중국을 설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마오쩌뚱의 혁명은 성공했지만, 국민들의 삶은 최악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등소평은 현재 중국의 개념을 도입했다. 

공산당이라는 이념은 버리지 않은 채 인민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의 소신은 '흑묘백묘'론이란 실용주의로 대변되었다. '흑묘황묘'가 변질된 표현이라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제적 부흥을 통해 중국에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성공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닌 제도적 민주주의를 선택한 중국의 번영. 경제개혁을 내세우고 국민들에게 언급했던 내용들을 지켜나가며 체제를 안정화 시켰던 등소평의 혁명을 김정은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2020년 잘 사는 북한을 만들겠다는 김 위원장의 목표는 그렇게 핵을 포기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모델을 채택한 중국. 그리고 이미 성공한 중국을 앞세워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 정은. 장마당 활성화로 이미 시장 경제가 자리를 잡은 북한은 중국 성공을 보고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핵을 무기로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하고, 경제 제재를 풀면 중국과 같은 부강한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누구보다 서구 사회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 세계사와 정치 시스템을 스위스에서 공부했던 소년 김정은은 이제 과거 전속 요리사에게 품었던 의문을 위원장이 되어 풀어내고 있다. 전쟁이 아닌 평화가 결국 모두를 위해 현명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김 위원장은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측은 당연하다. 


분명한 목표와 이유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할 이는 없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과거 박정희 군사독재로 회귀하고 싶어 했던 이유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과 달리, 김 위원장은 체제 안정을 통한 경제 번영이 곧 한반도 평화 위에 얻을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북한의 번영은 곧 우리에게도 행복이다. 한반도 영구 평화를 거부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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