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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지붕 뚫고 하이킥 76회, 해리의 '슈퍼 빵꾸똥꾸'는 긍정의 외침이다

by 자이미 2009.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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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의  '빵꾸똥꾸'는 2009년을 상징하는 유행어중 최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리의 기준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이들은 '빵꾸똥꾸'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일면 해리의 행동이 너무 과격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해리의 시각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정부재 사회는 '빵꾸똥꾸' 사회다

애정 결핍에 시달리는 해리는 먹는걸로 해결하는 아이입니다. 요즘은 덜하지만 극 초반 해리를 상징하는 것은 갈비였습니다. 매끼니 갈비가 아니면 식사를 하지 않을 정도의 갈비 마니아인 해리는 외부의 부족함을 내부의 것으로 대체하듯 먹는 것으로 모든걸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해리의 음식에 손을 대는 객식구 신애가 싫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더불어 자신의 공고한 경계를 생각없이 침범하는 신애에게 전투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음도 모두 애정 결핍에서 찾을 수있습니다. 해리의 가족을 보면 할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인 엄마, 할아버지 회사 부사장인 아빠, 의사인 삼촌, 고등학생 오빠가 있는 다복한 가정입니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해리의 가족에게 부족한건 가족간의 정이었습니다. 가부장적인 할아버지 순재는 절대권력으로 군림하고만 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도전하는 엄마는 남자 이상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겹게 자신을 품어주는 성격이 아니기에 의도하지 않은 데면데면함이, 해리를 엄마는 있지만 엄마가 부재한 아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여자의 감성을 지닌 아빠의 보살핌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리의 애정 결핍이 해소될 수는 없습니다. 의사인 삼촌은 가족들 조차 얼굴 보기 힘들고 오빠와는 나이차가 많아서 그런지 남매간의 애정도 별로없습니다. 그렇게 방목되어지듯 자란 해리가 이렇듯 까칠하면서도 애어른이 된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입니다. 

유아기 부모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엄마가 부재한 상황에서 해리의 말문이 늦게 트인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해리의 부모들이 해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이 부모 역할에 서툴다는 것입니다. 더이상 아이만 낳았다고 부모가 되는 세상이 아니기에 육아교육이 중요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부모가 가져야할 덕목들도 많아지고 세밀한 보살핌이 더욱 필요해지는 상황에서, 좋은 부모란 무엇이고 사전 기본 지식이나 가치도 공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습관과 성격들이 그대로 아이에게 투영되어질 뿐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붕킥'의 해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아이입니다. 신애가 과거 아버지 시대의 아이를 상징한다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해리는 현대 사회의 아이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신애는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듯 특별할 것도 없는데 대견하게 알아서 잘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풍족해졌다는 현대 사회에선 '물질의 풍요가 정신적 풍요를 대신할 수없다'는 중요한 가치를 해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걸 가졌기에 허전할 수밖에 없는 해리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엉킨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방법이 바로 '빵꾸똥꾸'라는 단어로 보여지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해리가 던지는 '빵꾸똥꾸'는 단순히 해리의 난폭함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부조리하고 못된 모든 것들에게 던지는 통쾌한 외침이 아닐 수없습니다.

애정이 담긴 사회는 '슈퍼 빵꾸똥꾸' 사회다

해리의 이 유행어가 탄생하던 시기는 해리가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사랑을 받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빵꾸똥꾸'는 타인에겐 욕으로 들릴 수있지만, 해리에게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갈구하는 처절한 외침과 다름없습니다.(유용하고 재미있는 분석글 읽기 클릭:빵꾸똥꾸에 대한 심리학적 소견

그런 해리가 76회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 하나를 내뱉었습니다. '슈퍼 빵꾸똥꾸'가 바로 그것인데요. 견학을 가는 해리와 신애의 에피소드에서 나왔던 이 말은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준비를 마친 해리가 문앞에서 신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마가 왜 가지 않냐고 물어도 신애의 방쪽만 바라보며 "아이 굼떠가지고"라는 혼잣말을 합니다.


그리고 서둘러 나오는 신애에게 언제나 그러하듯 독설을 퍼붇기 시작하지요.
"하여튼 꾸질꾸질 신신애. 왜 이렇게 굼뜨니 너때문에 나까지 지각하게 생겼잖아."
자동반사적으로 기죽은 신애는 "너 먼저 가면 되잖아"라고 조용히 댓구합니다.
"누가 너 기다린 줄 알겠다. 와 완전 어이없어. '슈퍼 빵꾸똥꾸'주제에"라고 본심을 들킨 해리가 외칩니다.
이어진 엄마의 꾸지람에 "네가 왜 애랑 친하게 지내야돼. 이 꾸질아~"를 외치고 나갑니다.

그동안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슈퍼 빵꾸똥꾸'는 해리의 변화, 아니 진화를 알리는 중요한 단서가 아닐 수없습니다. 그동안 '빵꾸똥꾸'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슈퍼 빵꾸똥꾸'는 자신의 마음을 숨긴채 좋아하는 이에게 던지는 해리식 사랑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해리는 자신과 같은 또래인 신애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가족의 정을 알아가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자신의 유행어의 진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2009년 대한민국에 일갈하듯 해리가 '빵꾸똥꾸'를 외쳤다면, 2010년에는 애정을 담은 '슈퍼 빵꾸똥꾸'를 외치고 싶다는 바람이 묻어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의 창이라는 아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투영하는 '지붕킥'은 어린 해리를 통해, 2010년에는 가족간의 사랑이 넘치고 그런 넘치는 사랑으로 사회도 즐거워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데면데면하기만 했던 가족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세경 자매의 모습처럼 우리사회도 긍정이 넘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 시원하게 "이 슈퍼 빵꾸똥꾸야!"를 외치고도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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