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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Netflix Wavve Tiving N OTT

파친코 6회-에이즈 같은 자이니치, 양복 벗은 이삭 노아를 품었다

by 자이미 2022.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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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의 아들 노아가 태어났습니다. 선자에게는 삼대로 이어지는 중요한 순간이었고, 이삭으로서는 자신의 노선을 정확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친아버지인 한수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노아가 태어나며, 자연스럽게 남은 두 번의 이야기는 그동안 자주 나오지 못했던, 한수의 이야기로 채워질 듯합니다. 이민호 팬들로서는, 그동안의 아쉬움을 충분히 채워낼 수 있을 정도로, 오사카에서 버텨내며 현재의 한수가 되는,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기에 기대해도 좋을 듯하네요.


그동안 목소리로만 등장했던 하나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1975년 학교에 있던 솔로몬을 찾아온 하나는 거침없었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가, 이것저것 만져보면서도 거침없는 하나와 달리, 솔로몬은 주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죠.

싸늘한 편의점 주인을 보고, 하나는 엄마 이야기를 꺼내며 분위기를 바꿔 놓고, 솔로몬에게 사탕을 훔치라고 요구합니다. 함께 있던 여자들보다, 자신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은 도둑으로 붙잡히는 이유가 되었죠. 그저 일탈하고 싶었던 하나의 이 행동은,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분노한 것은 도둑질하다 걸린 것이 아니라,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도둑으로 의심하고 지켜봤던 주인의 행동과 말이었습니다. 경찰서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모자수가 와서 학생이니, 자신이 잘 가르치겠다는 말에도, 학교에 연락하겠다며 망신주기에 여념없는 이유는, 그들이 조센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경찰의 태도가 바뀐 것은 전화 한통이었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는 그들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되었죠. 그 전화는 한수나 그 가족의 연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쁜 남자 한수이지만 자신의 아들을 낳아준 선자를 영원히 잊지 못한 존재이기도 했으니 말이죠.

그 사건으로 솔로몬은 미국으로 유학가게 되었습니다. 하나가 함께 미국에 가자는 말은 의도하지 않게 반만 실현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에게도 큰 변곡점이 되고 말았죠. 선자는 손자를 보내며, 우리가 솔로몬을 망친다고 우려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가 집을 나간 이유였습니다. 할매가 자신이 솔로몬을 망칠 거 같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건 아들 노아를 망쳤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선자가, 자신에게 한 말을 하나가 오해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에이즈 환자로 돌아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치료법이 없어, 걸리면 죽는다고 알려진 병이기도 했습니다. 더욱 가까이만 있어도 전염된다는 소문과 문란한 생활이 만든 질병이라며, 손가락질 받던 죽음의 질병이기도 했습니다.

죽음과 가까워진 하나와 마주한 솔로몬은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췌해진 하나는 솔로몬에게 “넌 절대 그들이 될 수 없어”라며 자각시켰습니다. 하나가 본 솔로몬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한수가 몽상가라 지적했던 할아버지를 닮아서인지, 하나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달리, 가능성 많은 아름다운 곳으로 여기는 솔로몬은 새로운 몽상가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솔로몬은 온갖 차별과 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지만 말이죠. 하나는 자신이 동경했던 부잣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병이 옮아왔다고 합니다.

사무라이의 후예라는 둥 허세부리는 인간들이 퍼트린 질병이라는 말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조센징이라 부르며 바퀴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마치 에이즈처럼 곁에 두면 무서운 질병이 옮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경시했다는 의미죠.

그런 죽음의 병 에이즈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가 동경했던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 퍼트렸다는 말은 이 드라마가 표방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합니다. 온갖 편견과 차별을 해왔던 자들이 사실, 에이즈를 옮겨 퍼트리는 자들이라는 비유로 비판하고 있으니 말이죠.

은행에서 해고당한 솔로몬 앞에 등장한 요시이 마모루는 누굴까요?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그가 한수의 손자일 가능성이 높죠. 남들은 할아버지를 악당이라 부르지만 자신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약쟁이 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는 자신을 살려준 존재라며 요시이는 솔로몬에게 다른 나라에서 파친코 사업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할아버지가 부끄럽지 않다는 요시이가 이제는 가족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은 솔로몬에게 큰 선택을 하게 만들 수밖에 없죠.

할머니가 가득 싸온 반찬을 보고 투정부리듯, 할머니 때문에 해고당했다는 솔로몬에게 선자는 전쟁 전 자신의 선택을 언급합니다. 세상을 모두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당당하지 못한 삶이었기 때문이라 하죠. 잘 사는 것보다, 어떻게 잘 살게 되었는가가 중요하다는 할머니 말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감정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솔로몬이었습니다.

1931년 빚을 탕감하고 돌아온 선자와 경희를 반기는 것은 요셉의 분노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망신 줬다며 화를 냅니다. 그곳이 어떤 곳이라고 여자들이 갔냐고 분노하는 요셉은 주변의 시각이 두렵기만 했습니다. 

평양에서 손꼽히는 양반집 아들이었던 요셉은 그렇게 나라를 빼앗기고 가세도 기울어, 오사카까지 왔습니다. 자신이 비록 지금 돼지우리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은 이웃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자부하며 현실을 버텨왔습니다. 

그런 허세라도 부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요셉에게 그건 자존심이자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그런 자존심을 선자와 경희가 깨트렸다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양반이자 남자로서 자신이 가지는 자부심이 돈 몇 푼에 사라졌다는 요셉은 그런 자격지심으로 뭉쳐진 존재였습니다.

요셉은 화가 나서 선자 어머니가 줬다는 시계를 하숙치는 혼자된 여자가 어떻게 마련 하냐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습니다. 감히 양반가문에 선자와 같은 여자가 식구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던 요셉의 본심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죠. 그 충격으로 조산을 하게 된 선자는 엄마가 그리웠습니다.


이삭은 엇나가는 자신의 아들을 바로잡아달라는 아주머니의 부탁을 받고,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하는 청년을 만나러갑니다. 그는 노동현장을 비판하며, 이를 바꾸려 노력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청년의 마음보다 어머니의 마음이 더 간절해 보였던 이삭은 그의 행동만 막으려 했지만, 그 청년은 달랐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 착취를 당하는 모습을 상기시킨 그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다움이라 합니다. “두려움이 내 멋대로 주무르게 놔두면요, 나중엔 내 몸의 윤곽조차 낯설어질 거에요. 그걸 내 몸이라 할 수 있겠어요. 자기 몸도 없는 게 사람이에요?”라는 청년의 분노는 이삭을 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이삭은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전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새장 안에 갇힌 새였는지 깨닫게 했으니 말이죠. 청년은 양복입고 선교하는 이삭의 모습이 이질적이었을 겁니다. 잘살던 양반 출신인 이삭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삶을 그들은 버텨내고 있었기 때문이죠.

술집에서 노동자들은 ‘해방가’를 부르며 행복했지만, 일본 순사들의 정기 단속으로 일순간, 나라 잃은 민족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술 마시고 즐길 자유조차 빼앗긴 조선인들을, 함부로 대하는 일본 순사들에게 이삭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양반이라는 요셉에게 기세 좋게 달려들며 싸우던 그 남자 역시, 일본 순사 앞에서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내던져진 돼지 밥으로 가지고 있던, 도토리를 담는 남자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했죠. 이 장면은 극명한 대비를 통해,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습니다.


술집에서 나와 형과 대화를 하다 이삭은 선자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요셉에게 화를 냈습니다. 절대 보이지 않던 이삭의 행동에 형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비록 자신은 큰형 같은 사람은 될 수 없지만, 죽어가는 자신을 살린 선자는 내 인생이 커지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하 했습니다. 

그렇게 이삭은 형에게 청년 노동자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해줍니다. “난 내 자식이 자기 몸의 윤곽을 똑바로 알고, 당당하게 재량껏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이 말은 이후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화가 나서 온 옆집 할머니는 선자가 애를 낳는 것을 보고 돕기 시작했습니다. 양반집 자식들이라는 이유로 거리를 두는 그들이 싫었지만, 중요한 순간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힘겨운 고통 속에 아이는 태어났고, 아들이라는 소식에 집에 도착한 이삭은 행복했습니다.

민망해하는 요셉에게 이름을 지어달라는 선자와, 형은 이집 가장이니 충분히 자격이 된다는 이삭의 말에, 요셉은 조카를 안고 서럽게 울다, 노아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낼 사람, 아무도 믿지 않을 때 홀로 믿음을 지켜낸 사람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진짜 가족이 되었습니다.

모자수가 모세라는 점에서 기독교 집안의 그들의 이름들이 노아와 모세, 솔로몬으로 지어진 것은 이야기를 구성하고 풀어가는 측면에서도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담겨있었습니다. 양복을 벗어던진 이삭의 변화는 그렇게 청년 노동자와 아들 노아로 인해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태어났다며, 아내 미에코에게 이혼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죠. 그런 한수에게 자신을 더럽혔다는 미에코는 당신 자식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는 말로 비수를 꽂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드라마 ‘파친코’는 오사카로 온 한수의 청년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다음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원작 소설이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시작하지만, 드라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로 바꾸며, 부분적인 수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시작 단계인 ‘파친코’의 다음 이야기는, 이민호와 함께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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