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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adcast 방송이야기/Variety 버라이어티

한국 예능의 몰락이 불안하게 다가온다

by 자이미 2021.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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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니 아직 문화강국이라고 하기에는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세계인들이 한국 대중문화를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문제는 이런 소비만으로 단순히 한국의 대중문화가 최고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소비는 일상적인 호기심이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그 소비가 무한대로 이어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문화강국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부담으로 다가온다.

예능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는 예능에 출연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아무리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도, 예능에 한 번 출연한 이보다 못하다. 

 

10년 이상 연기만 하고 그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도, 그저 웃기는 말로 예능에 한 번 나온 이제 막 시작은 연기자보다 인지도가 떨어진다. 이런 현상들은 단순히 연기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쉽고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에 예능만큼 경쟁력이 높은 분야도 없다.

 

'밈'이 대세가 되고, 점점 짧아지고 빨라지는 시선들은 기존 방식으로 소비되는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상황까지 초래하고 있다. 1시간, 여기에 2시간 정도의 영화를 끈기 있게 소비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이 일상이 되면서 가장 먼저 백과사전은 실물에서 사라졌다. 과거 백과사전을 비롯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인터넷 안으로 들어서며 수많은 이들은 손쉽게 정보를 취득하게 되었다. 이는 권장할만한 일이고 유용하다.

 

단순히 시간을 단축시키는 행위만이 아니라 언제라도 손쉽게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취득해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은 그만큼 더 큰 가능성을 부여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빠르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도 남길 수밖에는 없다.

 

점점 시간이라는 가치가 새롭게 각인되며 영화 한 편 제대로 끝까지 보기가 어려워지는 시대라면 아쉽다. 여전히 한국의 영화 사랑은 대단하다. 하지만 그에 반해 조급증 환자처럼 긴 내용을 보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예능은 굳이 서사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어디를 틀어서 어느 부분에서 보든 크게 의미가 없다. 그저 보여지는 순간 웃고 소비하면 그만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예능도 있지만, 이미 성공 사례를 통해 자신들만의 패턴을 만든 예능이 변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여전히 나영석, 김태호 에능을 넘어설 존재가 보이지 않는 건 결과적으로 퇴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이들의 예능이 사랑받고 나름의 성과들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익숙함에 젖어버린 나머지 새로움이 존재하지 않는단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경쟁이 어려워진 시장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아직 이들이 최고일 수 있다는 의미는 그만큼 성장이 더디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들 스스로 발전보다는 자가 복제에 가까운 예능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 작은 변화들과 세밀화가 더해지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예능 방송들은 문제가 있었던 연예인들이 사과를 하고 그들이 다시 큰돈을 벌 수 있도록 만드는 창구로 변질되었다. 예능을 통해 온갖 미화를 하고 이를 통해 그들은 이제 방송 활동을 해도 상관없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상황은 당혹스럽다.

노골적으로 광고를 하는 방송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도 몰락의 기미로 다가온다. 출연한 반 연예인이나 연예인들의 일을 홍보하고 이를 미화하는 방송은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먹으며 나는 장사를 하려 한다. 그러니 내 장사를 위해 너희들은 관심을 가져라. 이런 메시지를 주말 예능에서 봐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자연스럽게 이제 볼만한 예능이 없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방식을 차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대중들이 좋아하는 방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민망할 정도로 답습만 하는 지상파 예능의 한계는 이제 임계치를 향해가고 있다. 도무지 새로울 것도 없는 예능에 자가당착에 빠진 채 노골적인 광고 방송만 하는 그들을 보면 전파낭비의 실체를 보게 한다.

 

시대의 흐름을 대변한다며 거대 배달앱을 홍보하기에 급급한 방송. 뭐가 우선인지 이제 그 의미도 사라졌다. 배달앱을 위해 방송을 만드는 이 프로그램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은 제작비 지원을 받는단 조건으로 해당 업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튜버가 돈벌기 위해 기업의 지원을 받고 그들의 제품을 홍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광고임을 숨기다 비난을 받았지만, 그런 방식은 이제 노골적으로 지상파 예능에서도 뿌리를 내리려 한다. 광고 종속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대세라고 주장한다면 이제 방송의 몰락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OTT로 향하는 이유는 기존의 방송이 시청자들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더는 볼 것이 없는 TV가 아니라 수많은 것들을 담아내는 OTT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TV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시대에 이제는 그 대상도 기존 방송사가 아닌 넷플릭스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월 고정액을 내고 볼 정도로 그 안에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많은 컨텐츠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광고주를 위한 방송이나, 아무런 가치도 없는 연예인들의 가십도, 그들을 위해 찬사를 쏟아내는 가증스러움도 더는 볼 필요가 없다.

 

소통을 거부하고 문제가 있는 자들마저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내보내는 그들의 뚝심은 지표로 등장하는 시청률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광고 단가가 정해지고, 방송사가 지탱하는 이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점점 그런 시청률 지표가 잡아내지 못하는 다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만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2021년 하반기에는 디즈니가 입성한다. 애플TV 역시 한국인이 혹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국내 OTT가 승부를 할 수 없는 규모의 경제가 대중문화, 특히 방송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제의식 없이 자기만족만 하는 예능은 예능 전성시대 최악의 민낯이 아닐 수없다.

 

경쟁력이란 이제 단순히 한국내 다른 방송과의 경쟁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대상 또한 넓어지고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거에 집착하고, 자기 꼬리만 집어삼키는 식의 조삼모사 예능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우려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전히 새로운 예능에 대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개중에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예능으로서 가치도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문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시청률이라는 이제는 광고주와 방송사간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지표에만 집착하는 한심한 예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열려있고, 수많은 문화들을 접할 수 있는 시대다. 넷플릭스가 연 세계화는 이제 디즈니 플러스의 입성으로 보다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안주하는 순간 도태는 시작된다. 일본이 갈라파고스의 몰락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에서 한국 대중문화도 그 길을 따를 것인가? 물론 이를 거부하는 수많은 이들은 이제 넷플릭스로 향했다.

 

방송사의 기준들 역시 높아져야 한다.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각각의 방송사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과거로 회귀하거나 민망한 컨텐츠를 기획하고 이어가는 예능은 이제 과감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도무지 한국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예능으로 무슨 경쟁을 할 수 있는가?

 

한국 대중문화가 정점인가?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가 중요하다. 정점이라는 것은 하강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단순히 영화만 놓고 봐도 과거 한국 영화의 존재감이 미미하던 시절 다른 아시아 국가는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했던 중국의 영화는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긋던 시절도 존재했었다. 투쟁의 역사를 담은 중국 영화에 세계인들은 박수를 보냈었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와 대만 영화에 대한 세계적인 환호도 존재했었다. 

 

물론 일본 영화에 대한 찬양은 이들보다 더 깊고 강렬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라고 영원한 영광을 버리고 싶었을까? 정점을 찍는 순간 잘못된 판단들은 결과적으로 몰락을 이끈다.

 

대중문화는 다양한 효과들을 양산해낸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안주하는 순간 몰락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방송되는 예능을 보면 그런 몰락이 의외로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우려까지 낳는다. 지상파 드라마 역시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면 더는 제작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절망이다.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이제 점점 더 커진다. 한국의 국력이 커지는 것처럼 소프트 파워 역시 최고다. 이런 상황을 보다 길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현장 역시 끊임없이 단련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TV를 보고 있자면 과연 이게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한국의 대중문화의 현실인가? 하는 우려만 하게 된다. 일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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