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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퀴즈 온 더 블럭-가장 좋아하는 단어 박묘순

자이미 2019. 10. 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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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을 보면서 울컥하고 우는 것은 반칙이다. 웃기기만 해도 충분한 상황에서 울리기까지 하면 이는 심각한 수준의 반칙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유재석에게는 날개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그가 진행해왔고, 진행하고 있는 방송 중 가장 유재석을 유재석답게 만들어주는 방송이니 말이다.

 

한글날을 맞아 이들은 특별한 준비를 했다. 한글 공부를 하는 외국인과 늦은 나이에 한글 공부를 시작한 어르신들이 그들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글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언어로 인식되는 듯하다. 일본어는 딱딱하고 중국어는 싸우는 듯한 모습이라 부담이 되었는데 한글은 사랑스럽다는 말에서 우리 글의 가치를 다시 깨닫고는 한다. 

어학당을 다니며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들과 함께 한글을 생각해보는 시간은 재미있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좋아 온 이들에게 이곳은 최고일 수밖에 없다.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인보다 더 한글의 본질을 더 잘 알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은 상황도 흥미롭다. 

 

오늘 방송의 핵심은 '양원 초등학교'였다. '문해 교육 학교'라고 알려진 이곳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이 뒤늦게 한글을 깨우치는 소중한 곳이다. 한글이 배우기 싶다고 하지만 여전히 문맹인 인구가 존재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이들이 대다수다. 

 

80이 넘으신 어르신들은 전쟁을 겪은 세대다. 그들에게는 학교보다 먹고 사는먹고사는 것이 더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더욱 당시에는 많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일들도 허다했다. 그렇게 배움보다 하루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했던 시절. 지독한 가난을 이겨낸 어르신들이 이제 자신의 삶을 찾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 학교다.

 

글을 모른다는 것은 심각한 수준으로 어려운 일이다. 은행 업무도 보기 어렵다. 일상 생활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기회들을 잃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온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를 하는 이들 부부는 현재가 가장 행복하다.

 

12살 어린 나이에 서울로 와서 식모살이를 했다는 묘순 씨의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겨울에 난방도 안 되는 방에서 개도 먹지 않을 밥을 먹이며 일을 시켰다는 이야기는 듣고도 이해하기 어렵다. 폭행까지 일삼으며 2만 원에 아이를 샀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 황당한 상황을 겪어낸 삶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현재 남편을 소개를 받아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 역시 어린 나이에 어려운 가정을 위해 일을 해야 했고, 그렇게 만난 아내와 평생 쉽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렇게 아이들 결혼을 시키고 부부가 손을 잡고 평생 한이었던 글을 배우는 이 모든 시간이 행복이다.

 

글을 몰라 외식도 해보지 못했던 이들 부부. 딸이 사다준 햄버거를 처음 먹어보고 맛있어 묻자 답해준 '맥도널드'는 웃픈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햄버거=맥도널드'라고 인지하고 '롯데리아'를 찾아가 '맥도널드' 주세요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글을 몰랐던 그들이 만든 서글픈 기억이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을 겪으며 살았을지 이 웃픈 에피소드 하나 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한글이 뭐냐는 공통 질문에 '박묘순'이라고 적은 남편의 모습에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아내를 만나 행복했다는 남편의 수줍은 사랑 고백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남편을 향해 한없이 사랑한다는 글씨로 대신하는 묘순 씨는 행복하다. 

 

81세의 늦은 나이에 학생이 된 김정자 씨의 사연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전쟁통에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을 버텨냈지만 배울 수 없었던 한은 끝이 없었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정자 씨는 딸에게 음악을 가르쳐 이대 음대를 졸업하게 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딸을 위해 200만원이 넘는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한 장에 3원짜리 부업을 했다는 정자 씨는 그렇게 사력을 다해 살았다. 외대 앞에서 장사를 하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에게 말을 걸고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ㄱ, ㄴ 속에 이름이 있다는 학생의 말이 신기했고, 그렇게 학생에게 이름을 배워 처음 써봤다는 정자 씨에게 글은 그렇게 특별한 가치였다. 딸이 나온 이대 근처에 있는 문해 학교를 다니며 처음으로 아이 학교에 가봤다는 정자 씨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생애 처음 가보는 '수학여행'에 한없이 들뜬 어르신들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였다. 7시 30분 문을 여는 학교에 항상 일찍 와 앞에서 기다리는 늦깎이 학생들. 그들에게 졸업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제는 일상이 되어 소중함을 모르게 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정도로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출연자도 제작진도, 그리고 시청자들도 울 수밖에 없었던 한글날 특집은 감동이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왜 좋은 프로그램인지 이 특집은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들을 얻어가는 프로그램이다. 일상의 소소함과 평범한 사람들이 전해주는 삶의 가치와 의미는 무척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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