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이 기사가 나가자마자 뜬금없는 장동건 고소영 열애설이 인터넷을 뒤덮기 시작합니다. 최고의 훈남이자 남녀모두 사랑하는 장동건이 다른 사람도 아닌 고소영과 열애중이라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혈서는 썼지만 친일은 아니었다
참으로 교묘하고도 우연치고는 너무나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없습니다. 박정희 친일이 그대로 드러난 신문 기사는 민족문제연구소측에서 공개한 사진이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출판을 막으려는 박지만의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에 맞선 공개라고 볼 수있겠지요.
이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에는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전화로 난리라고도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떠받들던 영웅이 일본군이 되고싶어 혈서까지 썼다는 증거가 만인에게 공개되었다는 것이 불만이었겠지요. 그들 스스로도 박정희에 대한 친일은 인정해도 그를 통해 얻어낼 수있는 유무형의 가치를 앚아가는 듯한 이번 행동이 불만일 수있었을 듯 합니다.
아무리 하늘을 가리려해도 그 좁은 손바닥으로 모든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저 자기 눈앞의 하늘만 가릴 뿐입니다. 역사속에 그대로 남겨져 있는 박정희 타카키 마사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거나 우국 충정의 화신이 될 수도 없는 일이지요.
그런 친일에 앞장선 인물이 총칼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자신과 같은 부류인 친일파 정리가 될리가 없었지요. 어쩌면 친일파를 막기위해 그가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박정희를 사모하는 이들은 이런 행위들마저 조국을 되찾기 위한 우국충정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뭐 이미 보수논객은 이런 행위마저도 조국을 위한 투쟁이었다고 했으니 그들의 머리속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박정희 만주군 지원 '혈서설' 증거 자료
박정희 유족, 친일인명사전 게재금지 가처분신청
"혈서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
일본군 장교였지만 친일파는 아니다
열애는 했지만 발표는 오늘 갑자기?
장동건과 고소영의 열애기사가 뜬금없이 왜 오늘 터져나왔는지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자들의 날랜 기사들을 보면 2년전부터 알콩달콩 사귀어왔다는 기사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쏟아집니다. 이미 준비되어진 기사들을 지금이다라고 누군가 신호를 보냈나 봅니다.
통상적으로 이런 기사가 뜨면 함구하거나 며칠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건만 무슨일인지 그들은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참 쿨한 연예인들과 소속사가 아닐 수없습니다. 고소영에 대해서는 너무 안좋은 소문들이 많아서 인지 그닥 반갑지는 않습니다.
더불어 연기력 부재에 CF로 막대한 부를 쌓아올린 그녀에 비해, 연기력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치는 스타일이었던 장동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여성분들은 무척이나 많은 듯 합니다. 비쥬얼만 놓고 보면 선남선녀의 만남이 아닐 수없지요. 그들의 2세는 어떨까에 대한 지극히 1차원적인 호기심이 솓아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기사가 추측성으로 뜨기 시작하면서 '박정희 혈서'는 물건너 갔다는 생각을 하신분들은 한 둘이 아니었을 듯 합니다. 충분히 고려해 발표한 '박정희 혈서'는 최고의 인기남인 장동건의 열애설에 묻힌채 포털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박정희나 박정희 혈서를 검색하면 확인이 가능하지만 자연스럽게 접할 수있는 기회는 원천 봉쇄되어버린 셈입니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는 표현을 요즘 자주 쓰게 되는데 이 역시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시기가 공교롭게 '박정희 혈서'와 맞닿아있었을 뿐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너무나 교묘한 타이밍은 많은 이들에게 씁쓸함으로만 다가옵니다.
불쑥 튀어나온 기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자들 사이에서는 공론화되어져 왔었고, 언제든 충분히 기사화 할 수있는 분량의 자료들도 확보되어있었습니다. 그 시기가 문제였는데 그들이 선택한 시기가 왜 오늘이었느냐는 것이 궁금할 뿐이지요.
박정희의 재림이라고도 하는 MB정권에 의해 장악되어가는 언론은 또 이렇게 알아서 충성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슨 스위치라도 있어 작동 버튼을 누르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MB정권을 위한 기사쓰기가 이뤄지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마저도 망상이라고 몰아붙이는 분들도 많을 듯 합니다.
감히 보릿고개를 넘기게 해준 대한민국의 위대한 영도자 박정희 장군을 폄하하고, 위대한 연예인 장동건과 고소영의 열애설마저 그런식으로 비하하다니라고 말입니다.
참 짧은 순간이었지만 '박정희 혈서'기사가 여론화 되면서 터진 메가톤급 연예기사는 모든걸 한순간에 정리해 버렸습니다. 마치 쓰나미가 휩쓸고 가듯 어느순간 모든것은 사라지고 장동건과 고소영의 열애설만 그 자리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나마 과거와는 달리 여론에 휩쓸리거나 몇몇 거대 언론들에 의해 이끌리던 국민들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리 숨기려해도 진실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질 뿐입니다. 장동건의 열애설도 축하하고 꼭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팬은 아니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기원합니다. 더불어 '친일인명사전'의 정상적인 편찬과 숨겨졌던 진실이 국민들과 함께 할 수있기를 바랍니다.
넓은 하늘을 가릴 수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늘을 가리기 위해서는 보고자 하는 이의 눈을 감기는 방법밖에는 없겠지요. 그러나 이미 봤던 하늘은 눈이 사라져도 기억속에 남아있기에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물리적으로 막을 수없음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박정희 유가족들의 권력을 이용한 눈가리기는 그저 다카키 마사오의 친일행각을 정당화하는 행위밖에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과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기자들의 기사들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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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5 22:43
그간 말로만 전해지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만주군 혈서지원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발굴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4일, 최근 일본에서 입수한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하고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만주지역에서 발행되던 일본어 신문인『만주신문』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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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본군 장교였지만 친일파는 아니다? 이거, 뭥미?
2009/11/06 00:03
일본군 장교였지만 친일파는 아니다? 이거, 뭥미? Worked for the Japs but the ProJaps?, Fuck You~ Journal by Joon H. Park Article referred news by Kim GabSoo, Oh My News Photos by Park Jeong Hee internet memorial hall 원 뉴스 글 읽기-->친일인명사전 시비는 '도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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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워니의 생각
2009/11/27 14:21
장동건과 고소영 열애설은 있지만 박정희 혈서 기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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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2009/11/06 08:46
우등 성적으로 4년만에 '황군' 소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4062
강덕(康德) 9년(1942년) 3월 23일 만주국 수도 신경(新京. 현 長春) 교외 납납둔(拉拉屯) 소재 육군군관학교(일명 同德臺)에서는 제2기 예과 졸업식이 성대히 거행됐다. 1기생 졸업식 때는 부의(溥儀) 황제가 참석했었으나 이번에는 치안부대신, 시종무관, 그리고 관동군의 고위 장성 등 내빈만 참석했다.(부의가 졸업식에 참석했다는 일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3월 24일자 <만주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졸업식은 오전 10시, 남운(南雲親一郞. 육군 중장. 교장 재임기간 1940~1943) 군관학교 교장의 '서류봉정과 상황보고'에 이어 우(于) 치안부대신 집행 하에 관병식을 한 후 졸업생 일동은 무도장에 정렬, 생도대표 강견상언(岡見尙彦. 일본계) 등 2명의 강연과 유도 및 검도 시범, 측도 작업 등 실습행사를 가졌다.
이어 11시50분부터 다시 교정에 집결한 후 졸업증서 수여와 함께 시종무관으로부터 우등생에 대한 시상식이 거행됐다. 이날 우등상 수상자는 모두 5명으로, 일본계 2명, 만주계 2명, 그리고 조선계가 1명이었다. 조선계 1명이 바로 박정희 생도였다. 이들은 만주국 부의 황제가 내린 금시계를 은사품으로 받았다. -
일본 2009/11/06 08:46
징용자 목숨값 담보 정치자금 챙겨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5374
지난 12일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1965년 한일협정 체결과정의 뒷거래와 관련된 일련의 문건을 발굴, 언론에 공개했다. 이 문건들 가운데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한일관계의 미래' 라는 제목의 1966년 3월 18일자 미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군사쿠데타를 한 1961부터 한일협정을 체결한 65년 사이 5년간에 걸쳐 6개의 일본기업들로부터 집권여당인 민주공화당 총예산의 2/3에 해당하는 6600만 달러를 제공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한국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조선인 징용, 징병, 위안부, 학도병 등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보상명목으로 청구권 자금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이 공화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은 이 와중에 발생한 것으로, 결국 박 정권은 앞에선 청구권자금 협상을 하면서 뒤로는 이를 빌미로 비밀 정치자금을 받아 챙긴 셈이다.
공화당은 이밖에도 1967년 제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일 한국기업을 상대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부방출미 6만톤을 일본에 수출하는 과정에 개입한 8개의 한국 회사가 민주공화당에 11만5000달러를 지불했다"고 적었다. 이들이 돈을 건넨 창구는 당시 권력 제2인자 김종필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
일본 2009/11/06 08:47
前 해수부장관 "新한일어업협정 수정, 실효성 없어"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898017
독도를 한일중간수역에 놓이게 한 신 한일어업협정을 수정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최낙정 전 해양수산부 장관(현 해양문화재단 이사장)은 "실효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신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던 1998년 당시 해수부 항만정책국장을 지낸 최 전 장관은 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협상을 다시 한다고 해도 일본이 독도를 우리 땅으로 인정해주지도 않을 것이고, 또 다른 마찰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신 한일어업협정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5년 간 진행되다 김대중 정부 들어 마무리 된 것"으로 "독도 영유권을 훼손했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최낙정 전 장관은 또, 독도가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닌 한일중간수역에 놓인 것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질의에 "어업협정은 영토 영유권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최 전 장관은 "신 한일어업협정 조문에서 이 협정은 영유권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밝히고 있고, 헌법재판소나 국제사법재판소 역시 어업협정은 어업 문제에만 국한됨을 판시했다"고 덧붙였다. -
일본 2009/11/06 08:47
<데스크 시각>현명한 분노 표출법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50322010130320020020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 어업협정 하면 기자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버르장머리’ 발언이다.
1995년 11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중국국가주석과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독도를 둘러싸고 한·일간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그야말로 ‘감정 그대로의 표출’이었다.
1998년9월 최종 마무리된 한·일간 신어업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은 이런 상황에서 시작됐다. 새 유엔해양법조약에 따른 양국간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획정 문제가 맞물려 기본적으로 복잡한 구조인데다, 한국으로서는 나포된 선박과 선원 처리에 있어서 ‘명분’까지 확보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다. 칼자루를 쥔 쪽은 명백히 일본이었고, 한국은 “한·일간 어업문제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서는 것이 고작이었다.
YS정권은 결국 97년10월 일본측이 제시한 ‘잠정공동수역안’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같이 판을 깰 경우 우리 어민들이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독도영유권 훼손이라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공동수역’은 이렇게 탄생했다. 한·일 어업협정은 DJ정권에서 최종 타결됐지만 문제의 조항을 수용한 것은 YS정권이었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는 커녕 거꾸로 당하기만 한 셈이다. -
일본 2009/11/06 08:47
발굴-현대사 뒷모습 <1>박정희의 좌익 전력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11114155405&Section=01
프레시안은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미공개 현대사 관련 1차 사료(史料)들을 발굴, 게재키로 했다. 부정기 시리즈로 계속될 이 작업의 첫 회로 박정희, 김종필 등 5.16 군사쿠데타 주역들의 좌익 전력을 추적한 미국정부의 극비 문서를 공개한다. 미 메릴랜드주 소재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된 이 자료는 이제까지 나온 문서중 5.16 주체세력들의 좌익 전력을 가장 광범위하고 집요하게 추적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이 문서가 1963년 대통령 선거 직전, 미 국무부로 보내졌다는 점에서 미국이 한국측의 반공태세에 대해 한시도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약 80매에 이르는 전문 번역을 박정희편, 김종필편으로 나눠 싣고, 한국현대사 연구자인 서울대 박태균 교수(국제지역원 한국학 담당 초빙교수)의 문서 해제 등 3회로 나눠 싣는다. 원문에는 각주와 도표가 있었으나 편의상 번역문에서는 삭제했음을 밝혀둔다. 편집자 -
일본 2009/11/06 08:47
“DJ가 내 아버지라고 생각 안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60316010126273020020
◈“박정희 정권 고위인사가 시켰다”=김씨는 인터뷰 내내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설령 아버지가 맞다고 해도 유부남과 관계를 가진 것은 어머니 잘못”이라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내가 (김 전 대통령과) 닮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놀랍게도 박정희 정권 당시 고위인사 A씨의 이름을 꺼냈다. 김씨는 직접 메모지에 그의 이름을 적으면서 “이 사람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는 “(이 사람이) 어머니에게 (자신을 DJ딸이라고 주장하라고) 시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력 정치권 인사들이 드나들던 한정식집 종업원이었던 자신의 어머니가 A씨와 친분을 갖고 있었다는 것. 김씨는 “어머니와 함께 A씨 집에 자주 놀러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A씨는 악랄한 사람”이라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냐”고 반문했다. -
일본 2009/11/06 08:47
[우리가 몰랐던 박정희] 여자관계에서 ‘기자 박치기’까지…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13138.html
‘인간 박정희’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 중 가장 입길에 오르는 것은 그의 여자관계다. 그가 최후의 순간까지 두 여인의 술시중을 받았던 사실이 말해주듯, 말년에 그의 여자관계에 대한 추문은 사그라지는 권력과는 정반대로 무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여성 편력에 대해서는 여러 ‘사실’과 ‘추측’이 뒤섞여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박정희가 유신 말기 무렵 여성을 동반한 술자리를 자주 가진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이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증언은 김재규 부장의 명령에 따라 10·26에 가담한 박선호(사형집행 당시 46살) 중앙정보부(중정) 의전과장의 법정 진술이다. 10·26 재판 녹취록(<대통령의 밤과 여자> 김재홍, 1994년 발간)에 따르면 1979년 12월11일 열린 10·26 사건 1심 재판(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박 과장은 청와대 경호실과 중정의 ‘안가’(안전가옥) 담당 직원들 사이에서 “대통령만 참석한 행사는 소행사, 대통령과 경호실장, 비서실장, 중정부장이 참석하면 대행사라는 용어를 쓴다”는 등 대통령의 술자리에 대한 증언을 꺼내기 시작했다. -
일본 2009/11/06 11:58
박정희 정권 "독도도 사실상 포기"
http://www.innermost.co.kr/bbs/view.php?id=top&no=8471
정부가 공개한 한일협정문서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대일청구권 포기말고도 '독도'도 우리땅임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나왔다.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해 '독도'문제를 '제3국이 거중조정하는 안'을 일본측에 내놓아 협상안건이 아닌 독도를 '한일간 협상거리'로 전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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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2009/11/05 21:29
완전 개념글... 눈물이..ㅠㅠ
IP를 바꿔가면서라도 '박정희 혈서'를 검색어에 올려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님이 쓰신 이런 글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 2009/11/05 21:42
도요타 다이쥬도 대통령했고 마사오군도 대통령 했고 우리나라 제대로된 대통령은 누구일까요?
친일에 물들고 좌빨에 물들고 정상적인 사람이 안보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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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도쿄 2009/11/05 23:25
와우 멋진글 잘 쓰셨네요 ^^ 개인적으로 티스토리 회원인지라 괜히 제가 뿌듯합니다.
네이버 보니깐 아까 까지만해도 인기검색어로 올라던 '박정희 혈서' 가 완전 자취를 감췄더군요.
더군다나 검색창에 '박정희 혈서' 라는 연관 검색어도 안뜨게 해놨습니다. 완전 티가 나더군요.
거기다가 스포츠 조선은 대놓고 장동건 고소영 기사로 도배를 해놨고, 네이버는 그걸 또
메인 표지로 내세우는 뭐;;;; 완전 정부가 언론을 장악한 것처럼 보입니다.
장동건 고소영 열애설은 평소같으면 당연히 예쁜 사랑에 대한 환대를 해줘야 마땅하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왠지 단순히 박정희 기사를 감추기 위한 땜빵용 수단으로 쓰여진 듯 보여서
오히려 그 둘이 안타깝기까지하네요;; 글 잘봤습니다. -
-_-;; 2009/11/05 23:44
숨겨지기는요.. 개뿔..
개오버하지 마세요
혈서 묻을라고 열애기사 터트린 건 맞다쳐도 "어머 나 잡혀 가는거 아니야 ㅠㅡ..민주주의는 죽었네 마네 독재네 마네" 이따구로 설레발 좀 그만..
늬들이 이따위로 타자질 하고 있을 시간에 한 놈이라도 더 잡아가겠다
유명인사 특히 정치인 연관 검색어에 타격 가는 걸 오래 올릴리가 있냐 병신들아
어떤 새킈가 검색순위 올라오더라도 타격 크다 싶으면 무조건 압력 들어가는게 당연한거지 그게 여당 야당 따로 있냐 호로새킈들아
노무현 뇌물은 연관검색어에 왜 없나요라고 따지기나 하세요ㅜㅡ..
내(우리)가 하면 로맨스고 남(너네)가 하면 불륜이네ㅋ
항상 그래왔던걸 뭘 또 특별한 거라고 설레발질들이야;; -
박정희, 그리고 혈서... 2009/11/06 00:42
뭐,언플이건 아니건_박정희 기사 자체만 놓고 보면..
박정희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이 되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당시 똑똑하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학생들이 주로 가던 대구사범에 가서 교사 생활을 하지요, 하지만
교사로 재직하는 중에도 군인에 대한 열망은 버리지 않았고, 일본 육사에 가겠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초과돼 입학하지 못하자 고향에 내려가 호적을 바꿉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박정희!! 혈서를 쓰는 방법을 생각해냅니다.'진충보국 명사봉공'이란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고 싶다는 편지를 함께 써서 보냅니다. 이걸 보고 감동 받은 아리카와란 사람은(박정희가 대구사범에 있을 때 교련 선생입니다. 박정희를 총애했다고 하는군요.)
만주신문에 이 혈서를 낸 것 같습니다.(아마도 이번에 나온 신문기사 같네요.) 그래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그런 스토리입니다..-
그러게요 2009/11/06 16:27
요즘은 경쟁국이나 업체에 일부러 첩자도 보내는 판에...
그리고 조센징이라 눈치보고 구박 받으면서도 그 속에서 밸꼴리는 거 참고 굳굳이 버티기는 뭐 쉬웠을까요..
간, 쓸개 다 빼고 뭔가 뜻한바가 있어서 그리 버티지는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역사 앞에 소극적이기 보다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이었을지도...본인만 잘 살자고 그리 했다면 대통령 된 이후에.. 미국에 그리 설움 받고, 그렇게 악착같이 이나라 저나라 건만 있으면 돈 끌어다가 이것저것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 돈 다 어디 있나요.. 대통령 pocket?
그 부분에선 다른 대통령들보다 훨씬 조용하지 않나요..
여자 문제도... 굳이 들추니까 그렇지... 지금은 뭐 아니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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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is 2009/11/06 00:22
생각보다는 많은 신문에서 보도하는 것 같습니다. 조선에도 나오고요. 추측컨데 박근혜를 압박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요. 시기적으로 박근혜한테는 불운임이 분명하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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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우 2009/11/06 01:00
이런일이 한두번이면 이런 우연이...하고 말겠지만...
하필이면 또 장동건-고소영 같은 엄청난 열애설이...?
언론이 점점 제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특히 인터넷 언론의 역할이 강화된 이 시대에 인터넷 매체 중 진짜는 찾기가 너무 어렵고...
제발 언론인들이 각성해주길 바랍니다! 한두명 각성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만ㅠ.ㅠ...언론인으로서의 긍지와 사명감을 가져야 하거늘...
너무 깊게 나간 것 같지만...뭐가 어쨌건 분명히 알려져야 하는 사실인데 이렇게 은근슬쩍 맥아리가 풀리면 지켜보는 사람으로써는 안타깝군요. -
두렁 2009/11/06 01:22
참....우연치고는 너무 기가막혀서 웃음밖에 안나옵니다.
또 장동건씨는 개인적으로 호감을 느끼던 배우라 배신감이 더욱 크네요......
상대에 대해서도 정말 실망스럽다는 말 밖에는.....(고소영씨를 싫어하기 때문에....) -
토욘 2009/11/06 01:41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이 특히 심하게도 두배우열애를 메인기사로 올리는 수고(?)를 하셨습니다.열애가 친일파혈서기사보다 중요한지 쓴웃음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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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2009/11/06 05:20
현재 이슈검색어 4위네요. 저도 순위 올리기 위해서 한번 클릭~^^
아무리 증거를 들이대도 박정희 향수에 빠져있는 어르신네들에게는 소귀에 경읽기 겠지요.
어느정도 냉정한 평가를 할수있는 젊은이 들에게 희망을 걸어봐야 할듯..-
냉정? 2009/11/06 16:41
님!
이런 일들은 정치판에서 이미 비일비재하게 있었습니다. 새삼스럽게 무슨. 에혀~~ -.-;;
서해 바다 유조선 어찌 되었을 때... 원인보도나 기타 이슈가 되지 않고.... 봉사활동이다 뭐다 연예인들 나서는 등...뒷처리 하는 걸로...그게 아주 조용히.. 시비도 안가리고 사라진건 기억 하십니까.
아마도 선거때였지요... 대라고 하면 유명한 일들이 꽤 되지요..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에요.. 몇해전 부시 영국 방문해서 계란 맞은 적 있어요.. 어라... 하고 있는데... 일제히 마이클 잭슨 아동 성희롱 사건 터지고 존에프케네디 밝힌다 등... 그랬죠...
하물며.. 박정희 대통령이 요즘 부쩍 관심 있게 떠오르는건 아마도 박근혜님 때문이겠죠. 이용하려는 사람과 보호 하려는 사람들. 더도 덜도 아니지 않을까요.
정치! 우린 언제쯤 국민을 위한, 민족을 위한 정부를, 지도자를 갖게 될까요... 신뢰하고 하나 되어서 함께 뭉칠 수 있는.
아마 어쩌면 그것은 영원히 -.-; 불가능 할지도 모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힘의 구조상... 이것이 슬픈 일입니다. 남들이 발전하고 있을 때...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다 자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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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없음 2009/11/06 07:18
앞으로 며칠이내에 박근혜가 세종시에 관한 입장을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이 바꿀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연관성 100%라고 봐도 될듯하네요. -
꽃님이네 2009/11/06 15:49
그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들이 누군들 자유로왔을까...
일제시대인데...너희들 아버지인들 그러지 않았을까...
작은 실수는 감싸고 크게 그사람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는게
이 시점에서는 국가에 더 도움이 되지 아니할까...
나 자신인들 그 시대에 모든것에서 자유로왔을까... -
진실? 2009/11/06 16:02
어떤 때는 혈족 결혼이 법이고 어떤 때는 혈족 결혼이 불법이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은 모두를 영웅으로 만들고, 어떤 상황은 아무리 바르더라도 역적을 만듭니다. 한 번 더 생각 해 봅시다. 그때 당시 값지게 도움되게 살 수 있었던 방법을. 언젠가 박대통령이 만주군이었기에 많은 죽어가는 독립군들을 살릴 수 있었다는 내용을 봤습니다. 또한 얼마 전 현역 정치'군' 중에 누구누구를 사전에서 뺀다는 얘기도 봤습니다. 하려면 정확하게. 아니면 하지 맙시다. 박통 때 하지 못했던 친일 제거를 지금 정부에선 할 수 있다? ... 그리고 그 시절에 조용하던 그 사람들은 이제 와서 이렇게 이유를 들이대며 아니 된다고 한다? ... 이거 전부 모순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박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경제 건설과 또한 심어 놓은 민족자부심, 그리고 민족에 대한 사랑만큼은 어떤 대통령도 박대통령을 따라 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떨어진 구두를 신은 것도, 낡은 벨트를 한 것도 그분뿐이었고, 자체 무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그 분 아닙니까. 자존심 죽이면서 열심히 빌어서 돈 빌려 한국에 쏟아 부은 것도 그 분 아닙니까. 독도 건도..독도 우표를 만들고 기타 등등 현재 계속 되어 오고 있는 일들이 바로 그 때부터라는 기사도 다른 곳에서 보았습니다.
어느 시대건 희생은 있지 않습니까 그게 정치이기도 하구요.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자꾸 그 분의 안좋은 점만을 부각 하는 것은 아마도 현정권이나 그게 정치적으로 필요한 분들 일 것입니다. 이제 이루어 놓은 것도 인정하시고... 열린 마음으로 재조명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당시 창시개명등을 거부 할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이웃형제의 뒤통수를 쳤을까요..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오히려 부딪는 자세로. 호랑이 굴로 대담하게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 -
슬픕니다 2009/11/06 16:07
오늘 학교에 갔더니 얘들반응이 두가지입니다. 아예 공부하느라 속세에 관심이 없거나 장동건 고소영 얘기로 열을 올리고 있거나요. 박정희 혈서에 관한 얘기는 아무도 모르더군요.. 말해도 그래? 하며 시큰둥하게 답했을것입니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저희 어머니 아버지 세대때만해도 고등학생들이 대학생들이 더 세상문제에 열을 올리고 관심을 가지고 했다는데 지금 학생들에게 관심있는건 유일한 스트레스 배출구인 연예인, 입시 밖에 없습니다...저와 제 동기들이 다시 이 사회를 꾸역꾸역 채울 생각을 하니 슬픕니다..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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