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웠던 이야기, 마지막은 모두가 훈훈해졌다
슬픈 결말을 예고하는 이들이 많았을 정도로 <공주의 남자>는 슬픈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원수의 자식들이 사랑을 한다는 것만큼 힘겹고 슬픈 일은 없으니 말이지요. 권력을 탐하던 아버지 수양으로 인해 철저하게 이용당해야만 했던 세령. 그녀가 사랑했던 존재가 숙적이었던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였다는 사실은 극에 끊임없는 긴장감을 부여했습니다.
죽어야만 하는 사람을 사랑한 죄로 공주에서 노비로 전락해버린 세령은 모든 사료에서도 사라진 정체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촌부의 삶을 살아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세령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이었기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을 듯도 합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사랑마저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사실은 씁쓸합니다. 결혼의 조건이 사랑이 아닌 경제적 안정이라는 사실이 선뜻 이해하면서도 씁쓸한 것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자신을 이용해 승유를 죽이려는 계획을 알게 된 세령은 한걸음에 그가 있는 산채로 향합니다. 그녀의 정체를 오해하고 죽이려는 이들에게 간신히 목숨을 건진 승유는 이 여리지만 강직한 여인 세령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이 여인을 위해서라면 승유 역시 죽음도 불사할 수 있기에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위대해 보이나 봅니다.
산채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세령을 자신의 아내라 소개하는 승유는 거칠 것이 없어졌습니다. 원수의 자식이기에 당당하게 사랑할 수도 없었던 여인. 수많은 죽음의 고비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내던졌던 이 여인을 사랑하지 않는 자. 그건 곧 죄악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들의 사랑은 대단합니다.
세령을 쫓아 산채로 들어선 면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승유는 그들을 막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면은 무리한 이번 전투에서 자신을 믿고 따르던 충복인 자번을 잃고 맙니다. 한 밤중에 산세 지리에 밝은 적들을 상대로 무리한 전투를 이끄는 면에게 직언을 하면서도 그의 명령에 따랐던 자번은 면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버리며 죽는 순간까지도 면을 위해 살아간 마지막 존재가 되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 그들은 산채에 있는 아녀자와 아이들을 피신시킵니다. 세령 역시 다시 만난 승유를 다시 떠나야만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더 이상 헤어지는 일 없이 함께 하고 싶은 세령의 마음은 승유 역시 당연한 일이였겠지요. 그럼에도 그녀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것은 죽을 수도 있는 결전을 치러야하기 때문입니다.
승법사에서 만남을 기약하고 면과의 마지막 전투에 임하는 승유의 마음은 편치는 않습니다. 자신의 오랜 벗이었던 면이 적으로 대적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힘겨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전투가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는 상황 승유와 면은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그들의 대결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치열한 전투를 끝내버린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수양의 명을 받고 온 한명회에 의해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승유를 잡는 것이 중요했던 한명회는 면을 희생해 승유를 잡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면만 잃어버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면은 마지막 순간까지 승유를 대신해 화살을 맞고 그런 면의 눈을 감겨주는 승유의 모습은 적이 아닌 다시 벗으로 돌아온 이에 대한 마지막은 언제나 슬플 수밖에는 없습니다.
벗을 떠나보내고 승유 일행은 도성으로 향합니다. 함경도에 대한 공격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도성의 수비는 허술해질 수밖에 없고 이런 틈을 타 수양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선택은 그들에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시애의 난은 수양에 의해 제거되고 밤마다 저주에 시달리는 수양은 중전과 함께 불공을 드리러 승법사로 향합니다. 궁을 떠나 절로 향하는 상황은 승유에게는 마지막 기회로 다가옵니다. 동지였던 이시애와 군사들이 전멸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복수의 마지막 기회는 수양이 승법사에 있는 그 시기가 전부이니 말입니다.
세령이 승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양은 분노하고 홀로 부처 앞에서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한탄하는 사이 승유의 칼은 수양의 목을 겨눕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세령의 회임 소식을 통해 승유를 흔들어 제압하는 수양의 모습은 대단하기만 하지요.
죽음을 앞둔 지아비를 찾은 세령. 옥에 누워 그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그들은 무덤에 함께 안장되어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만 남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역시의 소용돌이를 함께 했던 형제 같았던 석주와 노걸, 그리고 빙옥관 식구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함께 생을 마감한 것으로 생각하는 순간 마지막 반전은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수양의 꿈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던 승유라는 존재. 그 행복한 모습에 생시인지 꿈인지 확인할 길 없던 수양은 온 몸의 두드러기를 치료하기 위해 내려간 곳에서 눈이 먼 승유와 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자신에게는 손녀인 그 아이를 쫓아 간 초라한 초가에는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반기는 세령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복색과 풍족한 삶이 아니어도 행복하기만 한 딸 세령. 눈이 보이지 않는 승유를 사랑으로 반기며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중전이 벌인 이 놀라운 반전에 감사해 합니다. "눈을 잃었으나 마음을 되찾고, 복수를 잃었지만 그대를 얻었소"라는 승유의 말처럼 그들은 그 지독한 악연에서 벗어나 둘이 있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말을 타고 힘차게 내달리는 그들의 모습은 말을 통해 인연을 맺고 사랑을 키워온 이들만큼이나 행복하고 자유로움을 상징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밝게 웃으며 말을 타는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 야사에만 전해져 내려오지만 그 어느 사랑이야기보다 흥미롭고 행복한 결말이었습니다.
후반부로 넘어가며 조금은 아쉬운 장면들과 이야기 전개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주의 남자>는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드라마였습니다. 박시후와 문채원이라는 조합이 성공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말들도 많았지만 그들은 탁월한 존재감으로 안방을 점령했고 우리 시대 가장 슬프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연인으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묶어 그럴 듯한 픽션 역사 사극을 만든 작가와 제작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퓨전 사극이 아닌 픽션과 논픽션의 절묘한 결합이 새로운 창작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증명해준 <공주의 남자>로 인해 작가의 상상력은 더욱 크게 확장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만큼 시청자들에게는 다양한 재미를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공주의 남자>는 많은 것들을 남긴 명품 드라마로 기록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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