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작으로 짧게 준비된 드라마 <땐뽀걸즈>가 종영했다. 실제 거제여상 땐뽀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담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대단한 이야기는 없다. 그 나이 대면 누구라도 한번 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좌충우돌 청춘기를 잘 담아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시은과 친구들의 성장기와 진짜 어른을 보여준 이규호 쌤과 엄마 박미영
도전을 하고 실패해도 좋을 나이는 따로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 나이대는 존재한다. 나이가 들면 한 번의 실패가 곧 인생의 끝이 되어버리는 재도전이 불가능한 대한민국에서 청춘은 어쩌면 그 실패와 도전이 반복되는 유일한 시기이기도 하다.
땐뽀반 아이들이 3학년이 되었다. 여상 아이들 대부분은 취업을 준비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각자의 꿈과 미래를 위해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다만, 방황하던 혜진에게는 시간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그대로 학교에 영원히 남아 짧지만 강렬했던 그 기억을 이어가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졸업을 해야 한다면 친구들이 있는 거제에 남고 싶다. 단짝인 시은과 함께 거제에 취직해 학창시절처럼 행복해지고 싶다.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린 손녀딸 혜진이에게 알리지 않고 숨겼던 할머니의 죽음. 그건 혜진에게는 절망과 같았다.
시은이 대학을 선택하고, 할머니까지 떠난 상황에서 혜진이 기댈 곳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이규호 선생님의 간절함이 있었지만, 혜진은 다시 방황을 시작했다. 갈 곳 없는 청춘.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그 지독한 고독 속에 홀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혜진은 땐뽀반 이전과 같이 막 살지는 않았다. 다만 남들보다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었다.
쌍둥이처럼 항상 붙어 다니던 도연과 영지는 취업도 같은 회사로 나가게 되었다. 엉망진창에 회사 적응도 쉽지 않다. 공부와 담 쌓고 방황만 하던 도연과 영지이지만 땐뽀반 후배들 앞에서 당당한 선배가 되고 싶었던 그녀들은 어렵지만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유도를 그만둔 예지는 아빠가 원하는 은행보다는 조선소에 취직하려 한다. 선택이 불가한 상황에서 예지는 현실을 택했다. 조선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던 아버지가 싫어하는 조선소를 택하는 것 역시 예지에게는 새로운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둘 중 하나였던 은행에 합격하지만 말이다.
예지의 단짝이었던 나영은 성형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는 천성이 밝은 아이였다. 자존감이 떨어져 있던 나영은 피팅 모델을 하며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다. 성형을 통해 동일한 미인이 되기보다 자신 만의 매력을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영은 의외의 상황에서 깨달았다. 이 역시 나영에게는 엄청난 성장점이 아닐 수 없다.
시은이 마지막 남은 대학 면접을 보기 위해 떠나려던 순간 혜진의 행동은 마지막 회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다. 할머니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고, 가장 친한 시은이 자신과 함께 거제에 남지 않고 서울로 가려는 순간 그녀가 시은의 손을 잡은 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S.O.S였다.
이 상황에서 혜진의 선택은 그래서 더 강렬했다. 친구의 꿈과 도전을 위해 자신을 숨기고 만원을 건네며 택시비를 하라는 혜진은 그렇게 시은과 이별을 선택했다.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달콤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 땐뽀반 아이들과의 그 아름다웠던 추억을 마음 한구석에 안고 떠난 혜진이는 이규호 선생님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자신의 마지막까지 붙잡아 주었던 유일한 인물.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았던 규호 쌤 앞에서 서럽게 울며 스스로 꿈을 포기해버린 혜진. 그런 혜진을 위해 자신의 전화번호를 크게 외치며, "선생님 전화번호 쉽지 안 바꿀 테니 언제든 연락해라"며 혜진을 향한 스승으로서 모습을 보여주는 규호 쌤은 진정한 의미의 교사였다.
규호 쌤을 위해 땐뽀반 아이들이 만든 영상 편지는 뭉클함으로 다가왔다. 대단할 것 없지만 진심을 담아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만든 진정한 어른 이규호 선생님은 그렇게 무한 반복하듯 아이들이 보낸 고마운 영상 편지를 볼 뿐이었다.
어렵지 뒷 순번에서 대학에 합격한 시은. 그런 시은이 합격했다는 말에 직장이 아닌 대학이냐고 묻는 엄마 미영의 모습은 짜릿했다. 남편을 잃고 홀로 두 딸을 키우며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었던 막내 딸. 그런 딸을 품 속에 가둬 두고 싶었던 엄마는 딸에게 몽니를 부렸다.
지독하고 힘든 싸움을 홀로 하며 내 편이 하나는 더 곁에 있어주길 바란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런 엄마는 딸의 진심을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자신의 신념마저 무너트릴 정도로 강렬한 존재는 가족이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딸의 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엄마. 그걸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엄마는 그래서 행복했다.
시은과 승찬은 헤어졌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서울로 학교에 가게 된 그들은 눈이 오는 어느 날 다시 만났다. 승찬 아버지로 인해 이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은.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시은을 찾은 승찬. 그들은 그렇게 행복한 연인이 되었다.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고 싶은 시은. 영화는 가짜이고 진짜는 현실이다. 현실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시은의 이야기 속에 <땐뽀걸즈>의 가치가 담겨져 있었다. 그 마법과 같은 순간은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규호 선생님의 '땐뽀반'이 바로 그들 인생에 있어 마법과 같은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설사 거짓이라 해도 끝까지 믿고 싶은 하나의 진실이다.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 우리가 좋은 제자가 아니었음에도, 우리 앞에 아무 수식어도 필요 없다고. 우리 그 자체를 사랑해준 영원한 판타지"
사회에서 친구에게도, 그리고 가족에게도 무시 받았던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이규호 선생님. 그런 그의 노력이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그리고 희망과 꿈을 품게 만들었다. 이런 어른이 있는 세상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딸을 서울로 보내며 단단한 척을 했던 엄마는 버스가 보이지 않자 오열을 하며 무너졌다.
어린 딸 앞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당당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 그 마음을 완벽하게 보여준 김선영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실제와 같았다. <땐뽀걸즈>가 대단한 드라마인 이유는 주제와 함께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고 완벽했던 연기가 드라마의 결과 급을 결정했다.
너무 착했던 드라마. 학교 드라마의 기준 자체를 바꿔 버린 <땐뽀걸즈>는 비록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영원히 회자될 수밖에 없는 드라마로 남게 될 것이다. 춤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우정을 쌓은 친구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지 보여준 드라마는 그래서 대단할 수밖에 없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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