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절대 현실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한때 강력 사건이 벌어지면, 영화와 드라마 탓을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범죄 상황을 모방했다며 영화가 잘못이라 지적하는 어처구니없는 짓들이 판을 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건 드라마, 소설, 게임 등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전략의 한 수단으로 근본적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구실로 작동하고는 했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더 글로리'는 공개와 동시 전 세계 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엄청난 흥행을 하며 K-드라마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이 주제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세계인들의 공감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동은이들을 위한 위로이자 공감이었던 '더 글로리'로 인해 학교 폭력에 대한 인식이 다시 한번 재정립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학폭은 언제나 불편하지만 곁에 있는 그림자와 다를 바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내가 당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다행인 학폭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이 아니라 그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모든 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잔인한 학대일 뿐입니다. 다수의 가해자와 소수의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침묵으로 가해자의 편에 서게 된 많은 이들이라고 편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유튜브에 얼마전 올라온 '표예림 동창생'이란 이름의 유저가 올린 동영상은 충격이었습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표예림을 괴롭힌 4명의 가해자 신상을 모두 실명과 사진을 통해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화탐사대'에 표예림이 직접 출연해 학폭 사실을 세상에 알린 이후 벌어진 일입니다.
12년 동안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살던 지역적인 특성도 한몫했을 듯합니다. 작은 소도시에서 자랐기에 함께 초중고를 다닐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학폭에 집중 노출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학폭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에 알려 이사 가거나 할 형편이 되지 못해, 오히려 참아야 했던 피해자의 고통은 상상보다 힘겨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 얼굴에 흉터가 있다는 이유로, 말이 없고 조용하다는 것이 가해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습니다. 그저 조용하다는 이유로 괴롭히는 이들의 행태는 그 작은 곳에서는 모두가 아는 비밀이기도 했습니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이 끔찍한 괴롭힘에 피해자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 역시 목격자였지만 적극적으로 나서 막아주지는 못했습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힘겹게 자신이 학폭 피해를 입고 있다고 담임 교사에게 말했지만, 피해자의 고통보다는 가해자에게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말로 폭력을 방치했습니다.
학교는 학폭을 방치했고, 가해자들은 선생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폭력을 이어갔습니다. 학교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며 발생한 이번 사건은 학교의 책임과 개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할 겁니다.
방송에서 가해자들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스토커라 부르고, 자신 곁에 오지도 말라합니다. 기자 앞에서 가해자는 증거부터 언급합니다. 했고 안 했고 가 아닌 증거 있냐는 말속에 증거가 나올 수 없는 학폭을 너희들이 어떻게 할 건데라는 조롱이 깔려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성인이 되어 힘겹게 이들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였습니다. "요즘 나오는 드라마 보고 뽕에 차서 그러는 거냐, 네가 표혜교냐" "남의 인생에 침범하지 말라"는 말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한 발언들이었습니다.
남의 인생에 침범해 온갖 가학적 행동을 한 자들이 이제와 사과를 요구한다며 남의 인생 침범하지 말라는 발언이 그들의 진짜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세상은 온전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사과 정도는 필요했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조차 사치였습니다.
피해자가 뒤늦게 용기를 내자, 침묵으로 가해자들의 범죄를 묵인했던 동창들도 함께 했습니다. '표예림 동창생'이라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자신을 피해자 동창생이라 소개하며, 자신이 목격했던 내용들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사진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사람을 죽도록 괴롭힌 가해자가 사람을 구한다는 군무원이 되어 있었고, 미용사 혹은 필라테스 강사, 남자친구와 행복한 삶을 사는 가해자 4명의 현재 상황은 그래서 더욱 경악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해자는 12년이라는 그 긴 시간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지만, 이들은 그런 피해자의 고통에 그 어떤 공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들이 마치 가면을 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정상일 수는 없습니다. 피해자의 사과 요구에 증거를 언급하고, 스토커라 몰아붙이며 연락도 하지 말라는 이들의 현재 모습에서 이 가해자들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들임을 확인하게 해 줍니다.
드라마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가해자들을 파괴하지만, 현실에서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극 중 동은을 도왔던 현남과 여정이란 존재는 없었지만, 표예림 곁에는 폭력을 목격한 동창들과 국민들이 나섰습니다. 더는 학폭 가해자들이 당당해질 수 없는 세상을 위해 그들은 일어섰습니다.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되었던 윤석열 라인의 정순신 전 검사의 아들 학폭 논란은 그래서 더욱 끔찍하게 다가옵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얼마나 악랄하게 피해자를 괴롭힐 수 있는지 정순신 변호사는 자신이 직접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힘을 악의적으로 사용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용하게 되면 어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들은 잘 보여줬습니다. 탐욕만 가득한 이들의 삶에 사회적 공감이란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오직 자신들만 잘난 세상에 '감히'라는 단어만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피해자들은 그저 귀찮은 존재들이었을 겁니다.
악랄한 4인은 잔인한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학교와 교사들은 외면하고 침묵하며 이런 폭력에 동조했습니다. 아무도 피해자를 지키기 위해 나서지 않는 동안 지독한 고통을 혼자 감내해야만 했던 표예림은 늦었지만 용기를 냈고, 국민들이 호응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가 아니라, 이제서야 말할 수 있었던' 표예림을 위해 동창들과 국민들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표예림은 자신의 사건만이 아니라, 학폭 자체에 대한 관심을 구했습니다. 학교폭력 공소시효와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 가해자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법 조항을 폐지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현재도 벌어지고 있는 학폭을 끊어내기 위해 용기 낸 표예림의 행동은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각적으로 가해자가 다니던 미용실은 바로 계약해지하고 법적인 조처까지 강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방부는 현재 상황에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분노를 그들이 이길 수는 없습니다.
증거를 언급하는 그들에게 그 긴 시간 당했던 피해자와 목격자들이 곧 증거일 수밖에 없음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행동으로 왜 현재의 자신들을 괴롭히냐는 반문은 어불성설일 뿐입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책임 역시 자신들의 몫일뿐입니다. 드라마와는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학폭 가해자들의 불행은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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