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떤 죽음도 당연할 수는 없다. 105세가 된 시어머니와 88세의 어머니. 그리고 자신 역시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할머니가 된 며느리의 이야기는 서글픔과 아쉬움이 함께 교차하게 했다. 점점 몸이 쇄약해지는 시어머니와 치매 중기로 접어든 친정 엄마. 엄마와 어머니와 함께 한 그 마지막 이야기는 그래서 더 서글프게 다가온다.
남겨진 이들의 슬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행복한 죽음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세상에 행복한 죽음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모두에게 죽음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최근 데이비드 구달 생태학자의 안락사는 이런 죽음에 대한 의문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105세가 된 구달 박사는 자신이 더는 생명이 연장될 이유가 없다며 안락사가 허락된 스위스까지 찾아가 최후를 맞이했다.
세계적 학자이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학교와 마찰을 빚은 후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했다. 물론 부상으로 움직임도 힘겨워진 상황에서 스스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스위스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위해 펀드를 했고, 그렇게 모인 돈으로 구달 박사는 자신이 원하는 최후를 맞이했다.
<휴먼 다큐 사랑-엄마와 어머니>에서 다룬 이야기는 결국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105세인 시어머니와 88세의 엄마. 그리고 자신 역시 68세의 누군가에게 엄마이자 어머니이고, 할머니이다. 세 분의 공통점은 모두 50 이전에 남편을 병으로 떠나보냈다는 것이다.
홀로 남겨진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갔다. 며느리이자 딸인 영혜씨가 일을 하며 두 분을 제대로 모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정 엄마가 시어머니의 친구가 되어 보살핀 것이 큰 힘이었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치매에 걸리셨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기력이 점점 소진되는 시어머니를 보며 딸이자 며느리가 느끼는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왜 이 모든 것을 국가 시스템이 아닌 한 사람이 책임져야만 하는지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휴먼 다큐 사랑> 측에서 담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이런 세부적인 내용들이 언급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홀로 모든 짐을 두 어깨에 얹고 살아가는 듯한 영혜씨의 모습을 보면 너무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그래서 더 아프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시어머니에게는 더 좋은 관리가 되겠지만, 함께 살고 싶어하는 그 마음을 외면하지 못하는 며느리. 이미 정이 들어 더는 떨어지고 싶지 않은 엄마까지. 이들은 이미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친정 엄마보다 더 오랜 시간 모셨던 시어머니. 20대에 결혼해 시어머니와 40년 넘게 살아왔던 며느리에게 그 존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시집 보냈지만 여전히 딸인 그녀를 보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해주려 하는 나이든 친정 엄마의 모습도 대단할 수밖에 없다.
설날 105세의 시어머니와 88세의 친정 엄마, 그리고 66세의 누군가의 엄마이자 어머니이고 할머니인 영혜씨가 나란히 앉아 새배를 받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은 서글프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급격하게 기력에 떨어진 시어머니는 급하게 병원에 입원까지 해야만 했다.
노인들에게 치명적인 흡인성 폐렴으로 겨우 위기를 넘긴 시어머니. 그런 시어머니가 입원한 후 친정 엄마는 홀로 빈 집을 지키며 이제는 단짝이 된 시어머니가 오기 만을 고대 한다. 기력을 조금 되찾자 마자 집에 갈까요? 라는 말에 반색 하며 며느리의 손을 꼭 잡는 시어머니. 그렇게 셋은 다시 함께 하게 되었지만 그 동거는 그리 오래갈 수 없었다.
식당까지 접은 채 얼마 남지 않은 시어머니를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모두가 잠든 사이 그렇게 조용하게 이별을 하고 말았다. 단짝을 먼저 보낸 후 부쩍 말이 없어진 친정 엄마. 홀로 방안에서 시어머니 사진을 보며 말을 건네는 친정 엄마에게도 10년 넘게 함께 한 시어머니의 빈 자리는 커 보였다.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는 엄마를 모시고 시어머니와 함께 가던 바닷가 산책을 가는 딸. 파도 치는 바다를 보며 "할머니, 집에 가자"라며 같이 집으로 가자는 친정 엄마의 말은 아프게 저려온다. 항상 남겨진 자들의 슬픔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ABU 국제공동제작 CARE6 <어떤 죽음, 어느 의사의 마지막 날들>에서도 이별에 대한 진지한 관찰을 담았다. 의사이자 스님으로 호스티스 전문 병원을 운영하는 그는 말기암 환자다. 자신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담아주기를 원했고, NHK는 그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유능한 의사로 부모님의 사망 후 절을 물려 받아 스님이 되었던 그는 그곳에 병원을 지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이들을 돌보는 호스티스 전문 병원을 열어 평생을 함께 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같은 의사인 부인과 딸은 이제 이별을 해야만 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최대한 의사의 입장에서 보려 노력했다.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보고 그들을 보살폈던 의사의 죽음은 달랐을까? 모두에게 마지막은 비슷하다. 고통에 힘겨워하고 죽기를 원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보낼 수 없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내. 남편이 DNR(소생금지)를 원했다. 하지만 의사인 아내는 마지막 순간 남편의 그 바람도 지키지 못했다.
의사이기 전에 아내인 그녀는 남편의 유언인 DNR를 거부하고 심장 마사지를 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담담하기만 하던 아내는 남편이 화장장으로 가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더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수많은 죽음 앞에서 담담했던 베테랑 의사마저 무너트렸다.
행복한 죽음. 편하게 보내줄 수 있는 죽음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104세 구달 박사는 스스로 마지막을 선택했다. 105세의 시어머니는 더는 버티지 못하셨다. 60대 의사는 암 전문이면서도 자신의 암을 알아채지 못하고 마지막을 맞이해야만 했다. 죽음 앞에서 누구도 담대하거나 편안하고 행복한 이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죽음이기도 하다.
웰 다잉과 안락사.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 1인 가구의 급등은 홀로 떠나는 시대가 점점 일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세대. 그런 시대에 맞는 사회적 공감과 시스템은 우리에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해보게 된다.
단순한 효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 만으로 채워지거나 해결할 수 없는 홀로 떠날 수밖에 없는 시대. <휴먼 다큐 사랑>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가족과 사랑,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치매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도 68세 딸을 위해 꽃다발을 만들고 사랑한다는 편지와 함께 꼭꼭 싸맨 용돈을 딸에게 주는 어머니의 마음. 그 한없이 서글퍼지는 사랑은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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