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에서 시작해 서울에서 마무리된 이야기는 아직 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충분히 이후 이야기의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크리처가 결합된 이야기는 단순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분명한 메시지를 심으면 특별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불편한 주제일 수도 있었습니다.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라는 말을 정부 핵심인사가 공개적으로 하는 시대에는 더욱 이런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너무 불편하고 불쾌했을 겁니다.
4회 마지막 장면에 여전히 그대로인 마에다가 등장하며 이후 이야기 전개가 어떻게 될지 충분히 예측하게 했습니다. 나진을 통해 영생의 삶을 얻은 마에다는 장 대주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친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 했다며 불쾌해했으니 말입니다.
마치 자신은 태상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침략자의 궤변일 뿐이었습니다. 악랄하게 수탈하고 착취하는 과정에서 작은 배려를 했다고 그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일까요? 자신은 친구라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그런 관계에서 친구사이를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마에다는 자신을 배신했다며 태상과 금오당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물론 태상은 죽이지 않았지만 식구나 다름없는 금오당 사람들은 잔인한 폭행에 이어 참수에 해당하는 행위까지 당했습니다. 이 상황에 괴물이 되어가는 태상에게 나월댁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 역시 상징입니다. 그런 희생들이 결국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5회는 과거 벌어진 사건들을 전달하는 과정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서사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과거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명자의 아들은 승조는 태어난 후 마에다의 손에 길러졌습니다. 아니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건 가족 관계가 아닌 실험체를 관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과거를 반복해서 보여줬던 것은 작가의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승조는 어린 나이에 아무렇지도 않고 조선인 몸종을 살해했습니다. 모두가 기겁한 상황에서도 마에다는 평온했습니다. "죽이는 건 괜찮지만, 들켜서는 안 됩니다"라며 경어를 사용하며 경고하는 마에다의 모습은 섬뜩하기만 합니다. 이 장면에서 일본인의 특징들이 모두 녹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하 실험실에 갇힌 채옥과 태상은 각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워진 듯했던 기억들을 태상이 찾으며 그 강렬함이 표출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쿠로코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격하는 상황에서 힘겹게 싸우는 그들을 도운 것은 승조였습니다.
승조는 왜 채옥과 태상을 구해준 것인지 모호합니다. 그저 자신이 태상을 좋아했고 믿고 따르던 인물이라는 말로 자책이 부른 행동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채옥을 구하려는 태상을 위해 그들을 실험실 외부로 도주하도록 돕는 승조는 정말 그들을 위함이었을까요?
승조의 도움으로 5호선 지하철 통로를 이용해 탈출에 성공한 태상은 밖에서 기다리는 채옥과 재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뜨거운 키스는 이들의 운명이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 잘 보여줬습니다. 죽음으로도 이들의 운명은 떼어낼 수 없으니 말입니다.
채옥과 태상만이 아니라 승조가 세상 밖으로 탈출하도록 도운 이는 더 있었습니다. 실험체 71호 역시 탈출해 지하철 통로를 서성거리다 사람들을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사건은 크게 논란이 되고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안테나 할머니 손자 종혁이 바로 71호였습니다. 그는 즉시 체포되었고, 그런 그들을 찾아온 것은 전승제약 사람들이었습니다. 쿠로코 1호를 필두로 전승제약 팀들이 경찰서를 찾아 종혁을 데려가려 합니다. 위험한 물질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다시 전승제약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주장은 질병청의 인정으로 인해 가능해졌습니다.
경찰이라 해도 윗선을 움직인 전승제약을 제어할 수는 없었습니다. 승조가 종혁을 탈출시킨 이유를 언급했습니다. 세상에 이들의 실험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이를 지금 막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며 필요악을 언급했습니다.
마에다가 꾸미는 이 행위는 인류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위들입니다. 나진을 이용해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마에다의 행동은 절대 용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승조는 자신을 키워준 마에다를 비난하며,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특별한 실험체였음을 채옥과 태상에게 고백합니다.
태상은 전승제약 사람들이 경찰서를 찾아 종혁을 구하겠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채옥은 쉬라며 혼자 하겠다고 나서는 태상에게 그는 중요한 말을 하죠. 자신은 누군가 지켜주는 삶이 아닌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합니다.
태상에게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난관을 뚫어 나가는 관계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달라진 남녀관계를 잘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기억을 되찾으며 옛날사람 같은 모습을 보이는 태상에게 채옥은 남과 여는 동등한 인격체임을 언급한 것이죠.
오토바이를 탄 태상이 앞서가고 채옥이 운전하는 차량에 승조도 함께 하며 경찰서로 향하지만, 이미 전승제약에서 선수를 쳐서 종혁을 데리고 가자 뒤쫓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승조는 채옥에게 1년 전 사건을 언급합니다.
태상이 기억을 잃은 1년 전 사건을 승조도 목격했습니다. 절대 자신들 조직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태상을 탈출을 시도했고, 쿠로코들이 추격한 상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승조는 마에다에게 태상을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친형 같았던 태상을 구하고 싶은 승조의 마음은 사실이었을 겁니다.
그런 승조에게 마에다는 특단의 조처를 취합니다. 나진이 24시간 동안 잠들게 하는 약물을 투여한 것이죠. 과연 나진없이 승조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을 겁니다. 아니 마에다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빼앗긴다면 절대 단 1분도 버틸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마에다의 예측처럼 승조는 감히 태상을 구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손바닥을 칼로 베었는데 과거 같았다면 바로 상처가 아물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진이 잠들자 극심한 고통과 함께 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순간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태상을 구할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운전하는 채옥에게 이런 말들을 하다 승조는 갑자기 목에 주사를 합니다. 그건 나진이 24시간 동안 잠드는 그 약이었습니다. 차량이 반파가 되는 상황에서 승조는 채옥을 죽이려 했습니다. 자신을 숨기고 그렇게 승조가 하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극도의 공포였습니다.
승조는 태상에게 왜 그렇게 싸우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그렇게 멀리 가서 행복하게 살면되지 굳이 거대한 조직에 맞서 싸우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태상은 상대가 미안하라고, 죄책감이라고 가지라고 싸운다고 했습니다.
태상의 대사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거짓말만 일삼는 일본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태상의 대사를 통해 등장시켰다는 것은 대단했습니다.
승조는 이제는 잊고 용서하고 살면 그만인데 굳이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뭐냐는 자들을 대변했습니다. 과거는 과거일뿐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은 좋지만, 그 전제조건은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 없다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태상의 말은 현재 벌어지는 황당한 상황들에 일침을 놓는 듯 합니다. 승조 친모를 죽인 것은 마에다입니다. 그럼에도 승조는 보지도 못한 친모보다 자신을 키워준 마에다가 더 믿을 수 있다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죽은 자를 어머니라 부르며 과거를 애써 망각하고 현재를 즐기는 승조의 모습은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그런 끔찍한 과거를 잊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행동일 뿐이죠. 승조의 역할은 그래서 더욱 분명하게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시대와 캐릭터를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충실하게 잘 전달되었습니다. 죽는 것이 무서워 태상을 외면했던 승조와 달리, 채옥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혼자 살아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채옥의 발언은 태상이 없는 세상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지만, 이를 돌려 언급하면 나라잃은 국민들에게 나라는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승조처럼 나라와 상관없이 자신을 개로 키운다고 해도 만족한 삶을 살면 그것으로 만족스럽다는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너무 다른 채옥을 죽이려던 승조는 형사에게 가로막히고 맙니다. 태상을 뒤쫓던 노 형사가 총을 쏴서 승조의 눈을 맞춰버립니다. 놀라 어쩔 줄 몰라는 노 형사를 차에 태우고 빨리 도망치라는 채옥은 인간의 몸으로 쿠로코들과 싸워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채옥이 쿠로코들과 싸우는 동안, 태상은 쿠로코 1호와 대결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쿠로코 1호는 자발적으로 나진을 몸에 들인 인물입니다. 그에게도 소중하고 꼭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반신 마비로 꿈을 잃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설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쿠로코 1호는 마에다를 배신하기로 결심합니다. 마에다가 원하는 것은 태상이 혼자 되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나서부터입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둘의 대결에 자신이 희생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 그는 나진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한 젊음과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할 뿐이었습니다.
마에다는 승조도 제거하려 했습니다. 쿠로코들을 보낸 것은 모두를 죽이기 위함이었죠. 승조는 마에다를 위해 태상을 속이고 채옥을 죽이려 했지만, 그에게는 태상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친구라며 친근감을 보였던 마에다의 생각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건 친구가 아닌 태상을 자신만이 소유하고 싶다는 갈망이었습니다.
마에다는 큰 판을 벌였습니다. 과거처럼 다시 태상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궁지로 내몰았습니다. 병원에서 깨어난 용길과 형사 반장인 명준을 실험실로 끌고 왔죠. 그리고 당연하게도 쿠로코들을 이용해 채옥까지 끌고 온 마에다는 태상에게 선택을 강요합니다.
인간의 목숨은 동등하냐고 묻습니다. 인간의 목숨이 공평하냐고 물으며 그럼 채옥과 지인 중 한쪽을 택하라고 요구합니다. 채옥은 수조에 넣어져 죽거나 기억을 잃을 운명이고, 지인들은 괴물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 쿠로코 1호가 건넸던 나진을 잠들게 하는 약을 마에다에게 주사한 태상은 지하로 향합니다. 절대 오지 말라는 용길의 외침에서 태상은 거대하고 단단한 유리문을 깨트리고 내려간 그는 거대한 괴물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마치 게임에 나오는 괴수들에 맞서 싸우는 듯한 모습을 재현하는 태상의 전투씬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액션 장면들의 능숙함과 고난도는 할리우드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을 정도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미 넘어선 모습이기도 합니다.
괴물들도 한때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태상은 싸움 후반부에 가서는 괴물을 설득하는 과정도 등장합니다. 나진을 잠재우는 가스가 배출되는 상황에 태상은 괴물을 밟고 뛰어 자신이 깨고 내려온 지상으로 올라갑니다.
태상은 왜 채옥이 아니라 지인들을 구하는 것을 선택했을까요? 채옥보다 지인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채옥이 집을 나서며 했던 말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기 바란다는 말을 믿은 것입니다.
채옥 역시 나진을 몸에 가지고 있고, 수조에 빠져 있다고 해도 그가 죽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처럼 채옥도 기억을 잃을지는 모르지만 살아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습니다.
태상과 채옥이 죽음에 맞서 싸우는 동안 승조는 마에다가 죽여버립니다. 자신을 한번이라도 가족이라 생각해 본 적 있냐며 그저 실험체로 대했던 마에다에 분노한 승조의 행동 역시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이런 식의 행동들은 나라를 잃어도 그저 다른 곳에 기생하는 자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니 말입니다.
강한 자의 곁에 붙어 기생하는 자들은 언제라도 상대가 나약해진다 생각되면 잔인하게 버리고 다른 강자에 기생하려 합니다. 이런 자들은 강자의 과거를 포장하고, 그들의 악행은 역사에 맡기라는 식으로 언급하고는 하죠. 그런 자들은 언제나 미래를 위해 품고 가야 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저온의 수조에 갇힌 채옥의 몸에서 나진이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가지러가는 쿠로코 1호와 채옥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도착한 태상은 수조에 갇힌 그를 꺼냅니다. 그렇게 장면은 안테나 할머니의 평범한 일상으로 연결됩니다.
찌개를 끓이고 누군가를 부르는 할머니는 손자가 아닌 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채옥은 평범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채옥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행복했습니다.
채옥이 누리는, 물론 완벽한 행복이 아닌 기억을 잃어 얻은 결과이지만 이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은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투쟁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의 평범한 행복조차 존재할 수 없음을 그 장면은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행복 속에서도 채옥은 뭔지 모를 기억에 이끌리고 있었습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 기묘함의 정체는 사랑이었습니다. 학교를 가던 평범한 그날 채옥을 멈춰 세운 것은 태상이었습니다. 태상을 보자마자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하는 채옥은 얼마 전 기억을 잃었던 태상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운명의 질긴 끈의 힘을 엿보게 합니다. 그 운명이란 지독할 정도로 질겨서 결코 끊어낼 수 없음을 태상과 채옥을 통해 잘 보여줬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란 그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로 나뉠 것 같지만, 이들의 운명처럼 반복되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결과임을 작가는 둘의 운명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태상과 채옥이 운명처럼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끝났다면 작가가 언급하고자 하는 주제는 흐릿해지거나 남녀의 운명적 사랑 정도로 이야기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마에다 대신 승조가 전승제약을 이끌고 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는 뜬금없는 생수 장사를 합니다. 거대한 생수안에는 적은 양의 나진들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건 나진을 통해 마에다가 가지고 싶은 욕망을 승조가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진은 이념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언급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일상의 평범한 속에 섞여들어간 나진은 그렇게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게 됩니다. 승조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생수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으로 보이죠. 그렇기에 더욱 끔찍하게 다가옵니다. 과거처럼 그저 무식하게 괴물을 만드는 실험이 아니라, 일상에 숨어들어 아주 작은 양으로 사회를 지배하겠다는 야욕이었습니다.
과거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그래서 입니다. 반성하지 않는 자를 용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렇게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은 자를 용서하면 결국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관계성을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잘 그려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 상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즌 3가 제작된다면 어떤 모습을 그려낼까요? 일상의 평범한 속에서 운명적 사랑을 하는 채옥과 태상이 승조라는 거악과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담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흐름을 끌어내기에는 약간의 무리수가 보이기는 합니다. 그만큼 시즌 2에 강렬한 메시지를 담았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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