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없는 의자와 무기력한 계백, 연기력의 문제인가?
가잠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백제는 승리의 기쁨은 잠시이고 두 왕자의 공과가 누가 더 많은 가에 대한 논란이 심각해졌습니다. 초헌관 자리를 두고 두 왕자가 벌이는 심리전은 11회의 핵심이었습니다. 의자와 교기의 싸움은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왔고 순수 백제 귀족의 피를 이어받은 교기가 왕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신라 공주의 피를 받은 의자는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죽었어야만 했던 의자가 생명을 부지하고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움을 넘어 불안하게 다가올 정도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고비마다 스스로를 내려놓고 위기를 벗어나는 의자의 모습은 사택비에게는 두려울 뿐입니다.
과거에는 무진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의자를 돕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았지만 현재의 의자 곁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데 이렇듯 영특하게 상황들을 이겨내는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사택비에게는 당연한 궁금증이었을 듯합니다.
죽기를 바랐던 가잠성 전투에서 시체들 틈에서 고개를 내밀며 피투성이가 되어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경악을 넘어선 수준이었습니다. 스스로 가잠성으로 들어서 가잠성을 신라에서 빼앗는 일에 혁혁한 공헌을 한 의자의 모습은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실체를 드러낸 경계 대상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사택비로서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은고가 의자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한 채 의자에 대한 두려움만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이후 진행될 다양한 이야기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택비는 알지 못하는 은고의 분노는 그녀를 결정적인 순간 죽음에 빠트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강력한 정책으로 두려움이 되어버린 사택비이지만 그렇게 얻은 권력은 많은 이들에게 적개심을 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은고 역시 부모를 사택비 때문에 잃어버렸기에 어린 시절부터 사택비에 대한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존재입니다.
계백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무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입니다. 부모의 죽음 역시 무진의 무고를 밝히려는 노력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질긴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은고에게는 어쩌면 계백이라는 인물은 외로움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의자는 자신의 복수를 완성해줄 가장 강력한 파트너이지만 계백은 자신이 평생을 함께 할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은 가잠성 전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지요.
가잠성 전투를 통해 의자의 충신이 될 두 인물의 등장도 흥미로웠습니다. 성충과 흥수가 바로 그 인물들이지요. 제갈공명과 비견될 정도의 책략이 뛰어난 성충은 가잠성 전투에서도 의자를 도와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뛰어난 지략을 가진 그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일로 인해 의자는 자신의 야망에 꼭 필요한 존재가 성충임을 확신합니다.
은고와 성충이 함께하면 자신이 왕이 되어 사택비와 귀족들에 대한 복수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의자에게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가잠성 전투를 통해 전투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자신을 희생해 백제를 구하려는 노력까지 보인 의자의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호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지요.
그럼에도 차기 왕으로 가는 확실한 길인 초헌관 자리에 올라서기 위한 의자와 교기의 대립을 단숨에 정리해 버린 흥수의 등장은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말단 직책에 있는 그가 왕과 대신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목을 걸고 초헌관 자리를 교기가 아닌 의자가 차지해야 한다며 논리적으로 대신들을 제압하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사택비마저 반하게 만든 흥수라는 존재는 성충과 함께 의자가 왕이 될 수밖에 없는 강력한 이유로 다가옵니다. 흥수를 차지하기 위한 사택비와 의자의 대결은 의외로 사택비가 아닌 의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흥수로 인해 식상하게 마무리될 수밖에는 없겠지만 천군만마와 비견될 인재를 얻게 된 의자의 반격은 흥미롭습니다.
복수에 대한 독기만 간직하던 계백이 은고와 만나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사택비와 만나는 은고에 대해 의문을 품기는 했지만 복수를 하기 위해 적과 친근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은고의 발언과 대장장이 천돌을 만난 계백은 본격적인 복수를 다짐합니다.
무진을 위해 만든 칼을 녹이지 않고 간직하고 있던 천돌은 계백에게 칼을 전하며 복수를 부탁합니다. 자신들은 하지 못했던 무진에 대한 복수를 해주기 바라는 은고와 천돌과는 달리, 의자는 무진의 마지막 부탁이었다며 계백이 더 이상은 칼을 잡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의자에 대한 복수심이 여전한 계백에게 의자의 이야기는 특별함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복수심이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지요.
무진에 대한 복수심을 가진 계백의 이복형제인 문근이 사비에 다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잔인한 존재로 돌아온 문근이 과연 계백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올지 그가 어떤 역할로 극의 재미를 만들어나갈지도 중요하지요. <계백>은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인 의자와 계백의 존재감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너무 늙은 의자 왕자인 조재현과 무기력하기만 한 이서진의 연기는 흡입력도 떨어지고 캐릭터로서의 매력도 한없이 부족합니다. 11회 방송에서 보여 진 조재현의 어색한 대사들이 설정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난감하게 다가오며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격변하는 계백을 연기하기에 이서진의 연기력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표정 연기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최근 모습에서 이서진의 모습은 하나의 표정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고만 합니다. 다양한 표정들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모호한 표정 하나로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는 이서진의 모습에서 계백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사택비의 역할도 날이 갈수록 무력해지며 초반의 독한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아쉽게 다가옵니다. 사택비와 함께 극을 히스테릭하게 이끌어야만 하는 은고 역시 아직은 그 존재감이 미미하게 전해옵니다. 송지효의 등장에 많은 기대를 했지만 전체적인 등장인물들이 문제인지, 그녀 역시 다른 배우들에 묻혀 매력 없이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의자가 왕이 되고 계백이 백제 최후의 명장이 되어가는 과정들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시점임에도 극적인 재미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연출의 문제도 간과될 수 없습니다. 민망한 전투 장면도 그렇지만 극적인 전개 과정이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물 간의 감정 선들이 매력적으로 담겨지지 않는 다는 점은 연출의 문제로 풀어낼 수밖에는 없겠지요.
무척이나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좀처럼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두 남자 주인공들이 언제나 극중의 의자와 계백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극에 몰입하기 힘들게 만드는 두 남자들이 답답하게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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