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반전을 이끄는 승유의 도발, 사랑은 시작되었다
승유가 유배지로 가는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세령은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 슬프기만 합니다. 원수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세령에게 그의 사망 소식은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세령의 동생인 세정이 아버지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면 자신은 공주가 될 수 있으니 충분히 행복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는 것처럼 성공한 반란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세령이 가장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비록 원수의 집안이 되어버렸지만 승유가 살아있기만을 바랐던 세령에게 승유의 사망소식은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랜 벗이었던 승유를 죽음으로 내몰고 세령과 혼사를 하려는 면은 그녀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려합니다. 승유의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배려 역시 오랜 벗에 대한 애틋함이라기보다는 세령을 위함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겠지요.
원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승유는 자연스럽게 세령의 집 앞으로 향하고 그렇게 마냥 그녀를 기다립니다. 그들의 지독한 운명은 오해를 낳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만 만들어내지요. 멀리서 세령과 면의 모습을 바라보며 원통함을 넘어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승유는 힘겹기만 합니다.
승유로서는 수양대군에 대한 복수와 함께 남겨진 형수와 조카를 찾기 위해 유곽에 남기로 합니다. 탁월한 무애 실력을 가진 승유가 유곽에 남기로 하자 초희는 그에게 기둥서방 역할을 하라고 합니다. 복수에 미쳐있는 그를 이용해 유곽을 지키고 호시탐탐 유곽과 살아 돌아온 조석주를 함귀에게서 지키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는 선택이었지요.
낮에는 남겨진 가족들의 생사를 찾아다니고 밤에는 유곽에서 기둥서방이 되어 살아가는 승유는 이런 초라함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세령에 대한 생각입니다. 형수와 조카가 굴욕적인 삶을 참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다는 천청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분노하던 그였지만 세령에 대한 분노만은 복잡함 그 자체였습니다.
죽은 이를 마음에 품고 원하지 않는 혼례를 치러야만 하는 세령은 경혜공주를 찾습니다. 자신의 혼례 소식을 전하러간 자리에서 경혜공주는 과거 자신을 세령이라 알고 건넨 승유의 반지를 세령의 결혼 선물로 건넵니다. 어차피 세령의 혼례식 날 거사를 준비하고 있는 금성과 경혜공주로서는 세령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당연할 듯합니다.
비록 수양대군으로 인해 원수가 되어버렸지만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친구이자 친자매 같았던 세령을 그렇게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지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던 세령에게는 경혜공주가 건넨 승유의 쌍가락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잊은 듯했던 승유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크게 밀려왔기 때문이지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남의 여자가 된다 해도 평생을 마음속에 담고 살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 승유가 남긴 마지막 유품은 특별하게 다가올 뿐입니다. 혼례를 하루 남긴 날 세령은 승유를 만났던 장소들을 돌아봅니다.
유곽 앞에서 만났던 기억들부터 그네 터와 절에서 나누었던 그 애틋 함들은 그녀를 더욱 힘겹게 만들 뿐입니다. 승유가 남긴 마지막 유품을 절에 모시며 자신의 마음을 이곳에 담고자 했던 그녀는 승유가 자신을 따라 왔음을 몰랐습니다. 이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승유는 호시탐탐 그녀를 납치할 수 있는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여자를 이용해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는 유곽 조석주의 이야기를 듣고 승유도 세령을 납치해 수양대군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수양대군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존재했고 그것이 바로 세령이라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납치로 이어지도록 요구했습니다.
형수와 조카마저 숨진 상황(물론 세령에 의해 안전하게 지내고 있지만)에서 승유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없고 유곽의 기둥서방으로 삶을 연명할 이유도 의미도 찾지 못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복수를 하고 장렬하게 사망하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양대군에 대한 반격을 하기 위해 금성과 경혜공주가 잡은 거사 날이 바로 승유가 세령을 납치한 날이라는 점입니다. 혼례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금성대군이 준비한 자격들을 통해 수양대군을 제거하겠다는 계획은 실행도 하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습니다.
물론 금성대군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수양대군은 금성대군이 준비한 자격마저 포섭해 역으로 금성과 경혜공주를 모두 제거하려는 노력도 흔들릴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혼례가 한창인 시점 복수는 시작되고 그런 어수선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철저한 대비를 했다고 해도 수양대군의 안전이 확실하게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승유의 납치는 결과적으로 수양대군을 지킬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만 하는 세령. 그것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유일한 남자인 승유를 잔인하게 죽도록 만들었던 원수에게 시집을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한스럽기만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낯선 하지만 너무나 그리웠던 그림자는 그들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거사를 치르러 나가며 처음으로 공주를 품에 안던 정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힘으로 단종과 경혜공주를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종의 그 애절함은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거사의 실패는 곧 정종의 죽음과 경혜공주가 노비가 되도록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승유가 세령의 혼례 날 그녀를 납치하며 <공주의 남자>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공주의 남자가 아닌 공주인 척 한 세령이 좋아하는 남자였던 승유가 납치 극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령에게 알렸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연스럽게 왕이 된 수양대군으로 인해 공주가 된 세령이 승유와 나누는 사랑은 진정한 <공주의 남자>일 수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삶과 죽음을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이다"라는 말을 되뇌는 세령. 계곡에서 서로 필담을 나누며 사랑을 확인하던 시절 서로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이 대사는 그들의 사랑을 함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다는 사실. 누군가의 죽음은 곧 자신도 함께 한다는 이 애절하면서도 결연한 다짐은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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