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극적으로 잡아내고 있다
승유만을 사랑하는 세령의 지고지순함은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공주의 자리마저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세령과 원수의 딸이지만 증오할 수 없는 승유의 마음은 그렇게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유곽을 찾은 면의 일행에게 들킬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를 도운 것은 이번에도 세령이었습니다. 궁으로 입궐했어야만 하는 그녀가 궁이 아닌 저자거리에 나와 있는 것도 당혹스러운 상황에 자신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은 승유를 다시 한 번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철저하게 숨기고만 있었던 승유의 감정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왕노걸에 의해 드러납니다. 표정은 저래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런 주변의 이야기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진리이지요.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황. 복수를 다짐하고 밤이면 자신의 가족을 해하고 단종을 폐위시킨 무리들을 찾아나서는 승유에게 사랑은 사치일 뿐입니다. 더욱 그 대상이 자신이 복수를 해야만 하는 수양의 딸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감정을 숨겨야 하는 강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던지며 승유를 살렸지만 여전히 마음을 열지 않는 그에게 마음이 아프고 힘겨운 것은 당연합니다. 공주의 자리도 마다하고 승유를 찾아왔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냉담함뿐이라는 사실은 세령에게도 힘겨운 일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이지만 그 대상이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한 이라면 그 어떤 누구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받아들이기는 힘들 테니 말입니다.
세령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행합니다. 그녀가 승유의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할지 몰라도 자신의 승유에 대한 사랑은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합니다. 승유에게는 너무 소중한 조카와 형수를 만나게 하고 수양의 곁에서 그가 행하는 잘못들을 막아내는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죽었다는 소문만 들었던 조카와 형수가 살아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승유는 세령을 말에 태워 그 장소로 향합니다. 그들의 사랑을 이어주었던 말 타기가 어색하고 힘겨운 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만들어낸 현실입니다. 더욱 등에 맞은 화살로 인해 말을 타고 달리는 걸 힘겨워하는 세령을 감싸주지도 못하는 승유는 차라리 말에서 내려 그녀에게 충격을 주지 않게 천천히 걷는 길을 택합니다.
세령에 대한 마음은 승유의 말 타기에서 그대로 전해집니다. 세령이 느낄 수 없는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이지만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조카와 형수를 만나러 가는 길에 원수의 딸이 힘들까봐 말에서 내려 천천히 말을 끌고 가는 승유의 모습에는 세령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게 퍼져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서로 죽은 줄만 알았던 상황에서 만나게 된 승유와 어린 조카와 형수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최고 권력자에서 한순간 역전의 집안이 되어 모진 일들을 겪어야만 했던 그들은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그간의 고통을 씻어냅니다.
어린 조카를 만나러가는 삼촌을 위해 세령은 저자거리에서 조카 아강이 좋아할만한 신을 구입해 건넵니다. 그저 형식적인 마음이 아니라 세령의 마음 속 깊이 승유와 가족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는 그런 세심한 모습에서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노비로 격하되어 원수의 집에서 노비 생활을 하는 자신들을 몰래 빼내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든 것 역시 세령이었다는 사실은 흔들릴 수 없었던 승유를 흔들게 만듭니다.
밤마다 원수들을 찾아 나서 피를 묻히고 다니는 승유는 아버지의 별칭인 '대호'라는 글씨를 적어 수양과 무리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줍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행동에 우려를 보이는 이들은 많았습니다. 형수는 과연 아버님에 누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기를 권하고, 승유의 스승 이개는 상왕이 된 단종을 복원하는 일에 동참하자라고 합니다.
후에 사육신으로 불리는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박팽년, 유응부 등은 왕권을 강화시키려는 수양에 대항해 어린 단종을 다시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집현전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던 그들이 피를 부르는 혁명을 수행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무예가 출중한 승유는 중요한 힘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사육신과 집현전 학자에 대한 시각들은 다양할 수밖에 없지만, 학자가 정치에 뜻을 두고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갔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폴리페서'와 유사합니다. 일인 독재가 아닌 신하들과 국정을 논해야 한다는 집현전 학자들의 외침은 자연스럽게 왕권을 강화하려는 수양과 적이 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병약했던 문종에 이어 어린 단종을 통해 자신들이 내세웠던 왕 중심이 아닌 신하 중심의 정치는 강력한 군주를 꿈꾼 수양에 의해 위기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수양이 왕이 된 이후 공신들의 명단에 사육신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들의 정치적 모습은 많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상왕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수양이 명의 허가를 받게 되면 단종은 폐위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위기감은 경혜공주와 부마, 그리고 그들을 통해 신하 중심의 정치를 꿈꾸는 집현전 학자들이 반란을 꿈꾸도록 했습니다.
세령의 혼례식 날 수양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금성과 부마가 뜻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명의 사신들 앞에서 수양을 제거하려는 그들의 계획은 결과적으로 다시 실패로 돌아갑니다. 수양의 브레인 역할을 한 한명회가 축하연 자리를 급히 변경하며 그들의 반란을 사전에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창덕궁에서 열린 연회는 세조를 암살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는 극적인 장소가 아니라 그들의 계획이 무모했음을 알게 하는 자리가 됩니다.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했던 김질이 장인에게 고하고 이를 다시 세조에 알려 거사에 참여했던 이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반란은 완벽하게 끝이 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궁 외곽에서 군을 이끌고 반란을 완성하는 임무를 부여받는 승유가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시되었습니다. 거사에 도모를 하기는 했지만 현장에 있을 수 없었던 승유는 사육신들의 죽음과 달리, 세령과 함께 사랑의 도피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공주의 남자>가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승유가 더 이상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세령은 경혜공주를 찾아 벗인 부마에게 부탁해 승유가 더 이상 복수를 하지 말도록 요청하려 합니다. '대호'라는 별칭을 남기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은 언제 승유가 다시 죽음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승유를 살리기 위해 찾은 경혜공주의 집에서 세령은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듣게 됩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승유를 죽게 해야 하고, 승유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죽는 것을 알고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령을 힘겹게 합니다.
자신에게는 언제나 따뜻했던 아버지이지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동생과 조카들까지도 죽이는 포악함을 보인 아버지의 이중성은 세령에게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는 게 세령의 마음이고 이런 혼란스러움은 그녀를 힘들게만 합니다.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리고 승유와 함께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살기를 바라는 세령의 마음은 승유가 품고 있는 바람이기도 할 것입니다.
경혜공주의 집에서 반란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는 장면은 극적인 반전을 이야기하는 브릿지로서 훌륭하게 작용했습니다. 극적인 흐름을 이끄는 장면이 마지막 이 장면이었다면 감정 선을 폭발시키는 장면은 세령이 승유의 스승이기도 한 이개에게 수업을 드는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서로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면서 승유를 입 밖에 드러내지 못한 채 그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감각적이며 매력적인 흐름의 정점이었습니다. 서로 생존을 알면서도 알려서는 안 되는 특별한 존재인 승유. 그를 그리워하며 흘리는 세령과 이개의 눈물 장면은 감정 선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조선 7대 왕으로 13년 동안 집권하며 세종 말년부터 흐트러졌던 왕권을 강화한 세조. 그런 세조의 역사에서는 지워져버린 딸과 원수가 되어버린 김종서 집안의 아들의 사랑이야기는 그 어떤 것보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는 시대 공주의 신분으로 원수의 아들과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사실은 그 어떤 이야기 소재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울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극대화되어 표현되고 있는 <공주의 남자>는 섬세한 감정의 변화들을 효과적으로 이끌며 흥미를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껏 물오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문채원의 존재감은 회를 거듭할수록 높아만 가고 박시후의 매력 역시 단단함으로 다가옵니다.
매력적인 이야기 소재에 연기자들의 탄탄한 연기력까지 하나가 된 <공주의 남자>는 웰 메이드 드라마라 칭해도 좋을 작품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승유와 세령과 같은 사랑이 진짜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질 예정입니다. 과연 그들의 사랑은 어떤 결실을 맺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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