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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 15회-진범은 신은경, 충격적인 반전에 담긴 작가의 의도

by 자이미 201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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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다. 대광목재 남씨 부인이 남편을 위해 김혜진을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마지막 반전으로 모든 것을 뒤집었다. 김혜진을 죽인 범인은 남씨도 그의 부인도 아닌 바로 친모인 윤지숙이었다. 대광목재까지 찾아와 혜진을 죽여야만 했던 이유가 곧 작가가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손톱에 담긴 메시지;

선명해진 작가의 주제의식, 성폭행 피해자 윤지숙은 왜 잔인한 살인자가 되어야 했을까?

 

 

 

유나가 전해준 자개 상자를 받은 소윤은 집에서 죽은 혜진을 만난다. 유나의 외할머니가 신기가 있었다는 말처럼 그녀가 소윤에게 그 자개 상자를 전달하라고 했던 이유는 명확했다. 그리고 그녀가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의자 손잡이를 끓었던 이유 역시 신기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자개 상자에 손톱을 끓다 부러지는 장면을 목격한 소윤은 잠에서 깨어난다. 그 길로 박순경에게 자개 상자에 혜진의 손톱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꿈에서 나온 이야기를 믿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허망한 꿈이 강력한 힘으로 다가온 것은 하이패스 기록을 통해 대광목재 남씨가 문제의 그날 9월 15일 그곳에 있었음을 알아낸다.

 

남씨의 아내가 애써 감추려 했던 장부 안에 소윤이 보여주었던 자개 상자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꿈을 단순히 꿈이라 볼 수 없었던 박 순경은 최 형사에게 부탁하고 국과수 검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손톱이 김혜진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남씨는 긴급체포 당한다.

 

예견된 상황에서 남씨는 자신의 부인이 문제의 그날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겠다고 밝힌다. 이미 파브리 병 증세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아내가 잡혀가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어린 딸을 보호하기 위한 부정은 그렇게 발현되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자신이 성폭행해서 낳은 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면서도 일곱 살 어린 딸에 대한 애정만 보이는 남씨의 행동은 그래서 경악스럽다. 괴물을 잡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던져야 했던 혜진은 자신이 괴물의 딸이라는 사실에 스스로를 증오해야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괴물의 딸이 되어야 했던 운명. 그녀에게는 그 지독한 운명이 평생 굴레가 되어야 했다.

 

 

남씨는 이미 오래된 일이고 충분히 반성하고 살았는데 뒤늦게 왜 내 인생을 망치려고 했다고 분노한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망치려고 한 혜진이 오히려 나쁘다고 주장하는 악랄한 성폭행범의 이중성은 그래서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자신을 찾아온 혜진을 '그 여자'라 지칭하며 다섯 살 된 딸과 가족을 보호하려는 모습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 딸만 소중하세요. 당신한테 짓밟힌 그 많은 딸들은요" 

 

"당신 가족만 사람인가요. 당신 때문에 낳아준 엄마한테 조차 괴물 취급받는 나 같은 사람은요. 우리 인생은 어떻하라구요"

 

"돈요.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괜찮다고. 당신, 당신 가족 모두 똑 같이 당해봐. 당신이 밝히지 않으면 내가 밝혀요"

 

취조 중 남씨가 밝힌 진술 속에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이 잔인한 상황 속에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혜진과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은 채 철저하게 자신만을 생각하는 괴물의 본성은 그렇게 억울한 죽음들을 양산해 냈다.

 

피해자 경순의 딸 가영도 빗길에 쓰러진 후 급격하게 나빠진 상태로 그렇게 숨져야만 했다. 파브리 병이라는 악마의 씨는 그렇게 스스로 충분히 반성했다는 괴물과 달리 잔인하게 그 상처들을 남기고 있었다. 혜진이 마지막까지 하고 싶었던 것은 진정한 사과였을 것이다.

 

뱅이 아지매라고 불렸던 지숙의 어머니는 주희를 찾았다. 간만에 찾아온 엄마가 반가웠던 주희는 혜진을 너의 딸로 이야기하라고 강요받는다. 지숙의 어머니가 둘째 딸인 주희에게 그렇게 강요를 했던 것은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하고 아이를 낳아야 했던 딸에 대한 안타까움이 평생 가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딸을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결국 다른 딸에게는 고통과 큰 상처를 남겨주었을 테니 말이다.

 

 

주희를 통해 드러난 그간의 과정들은 이미 봤던 것들을 풀어주는 다이제스트와 같았다. 주희에 의해 정리된 혜진의 삶은 그렇게 처참하고 아프고 힘겨웠을 뿐이다. 누가 친모인지도 모른 채 살아갔던 아이. 그렇게 자신이 진짜 가족이라고 믿었던 부모는 사고로 사망하고, 친 여동생이라 믿었던 소윤은 할머니와 함께 캐나다라도 떠난 채 홀로 남겨졌다. 그렇게 혜진은 자신이 어떤 운명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온 아치아라에서 그녀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 자신의 친모마저 부정하며 '괴물'이라고 증오하는 현실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죽기 전 괴물을 응징하고 싶었다. 그를 죽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세상에 고하고 처벌을 받기 원했다. 하지만 그 괴물은 그렇게 쉽게 바뀔 존재는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는 괴물의 손에 의해 죽어야만 했다.

 

지명수배를 받고 도피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강필중은 소윤에게 결정적인 문자를 남긴다. 남씨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아줌마는 거짓말을 한다는 발언과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부모는 그걸 기록한다는 문자에서 힌트를 얻은 소윤은 대광목재로 향한다.

 

작업실 현장에서 남씨의 어린 딸의 키를 잰 흔적을 찾고 그곳에서 2013년 9월 15일 아이도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그날 남씨는 존재하지 않았고 부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소윤까지 알게 된 현실 속에서 그녀는 마지막 퍼즐과 같은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날 혜진을 잔인하게 죽이려 했던 것은 바로 남씨도 자신도 아닌 지숙이라고. 지숙이 혜진의 목을 조르는 장면에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딸을 '괴물'이라 지칭하며 분노하던 어머니인 지숙이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은 충격이니 말이다. 물론 남씨 부인의 말 속에 머리를 내리친 이는 그녀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하지만 어찌되었든 혜진을 죽이고 그 시체를 야산에 묻은 공범은 둘이라는 확신을 하게 한다.

 

지숙은 왜 자신을 성폭행한 남씨에게 분노하지 않고 딸인 혜진을 죽이고 싶었을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 힘들다. 그 두려움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를 감행하고 실제로 복수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 정도로 가해자에 대한 공포심은 평생을 지배하기 마련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당한 그 사건으로 인해 지숙의 인생은 피폐해졌다. 그녀가 만약 그런 몹쓸 짓을 당하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포악하게 시어머니를 몰아세워 죽음으로 이끌고도 반성은 고사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지숙의 정신 상태는 그 오래 전 잔인하게 성폭행을 당한 날부터 시작되었다.

 

성폭행을 당한 것도 숨기고 아이를 낳은 사실조차 망각해야만 살 수 있었던 피해자는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그렇게 지독하게 살아야 했던 그녀는 갑자기 등장한 딸 혜진을 보고 그날의 기억을 재생하게 되었다. 돌이키고 싶지도 않고 애써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그녀의 분노는 더욱 강렬해졌다. 거침없이 이어지는 그 지독한 분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제압할 수 없는 남씨가 아닌 스스로 '괴물'이라고 부르던 딸 혜진을 대상으로 삼아야 했다.

 

가해자는 손쉽게 자신의 죄를 용서한다. 이미 오래 전에 벌어졌던 그 일로 인해 자신 역시 큰 상처를 받았고 반성했다고 한다. 그렇게 반성했으니 그만이라는 그의 뻔뻔함은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만약 그가 반성하고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면 아치아라의 비밀은 쉽게 밝혀지고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는 참혹함은 없었을 것이다.

 

지숙과 남씨 부인이 함께 저지른 혜진의 죽음. 그 잔인한 죽음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명확하다. 잔인하게 짓밟힌 여성의 일대기에 대한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은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다. 과거 일제의 강압에 의해 '정신대'라는 명칭으로 강제징집을 당해 잔인한 일을 당해야만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 역시 다를 게 없다. 일본은 자신들이 한 행위를 정당화할 뿐 반성은 없다. 가해자는 쉽게 스스로를 용서하지만 피해자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드라마는 강력한 주제의식과 흥미로운 형식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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