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이 만들어낸 방송 생태계 파괴, 방통위는 보고 있나?
무도 일곱 명의 멤버들이 각자의 TV를 개국하고 먹이사슬 속에서 서로를 잡아 타인이 확보하고 있는 방송 시간을 빼앗는 '꼬리잡기'의 변형인 'TV전쟁'은 흥미로움을 넘어 소스라치도록 끔찍한 언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송을 만드는 이가 스스로 방송 메커니즘과 상업성에 매몰된 방송의 현실을 이렇게 풍자한다는 점에서 김태호 피디의 영특함은 대단하게 다가옵니다.
무한도전 멤버 각자의 이름이 적힌 TV와 한정된 시간이 주어진 테이프 2개와 미션이 그들에게 전해집니다. 미션에 적힌 상대의 전원을 끄면 남은 테이프를 가져갈 수 있다는 'TV 전쟁'은 무도 특유의 추격전에 꼬리잡기를 결합한 흥미로운 대결이었습니다.
TV가 꺼지는 순간 해당 멤버의 TV는 종영되고 최종 우승자에게는 TV 수신료를 지급하겠다는 이 게임은 멤버 각자의 특성과 무도 특유의 레이스의 긴박감이 그대로 드러난 흥겨움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쫓아야만 하는 대립 구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준하가 홍철을 잡아야만 하는 상황과 길에게 주어진 재석 잡기였습니다.
하하가 재석에게 "친구 좀 사귀어라"라고 이야기를 했다가 강력한 후폭풍에 시달렸던 것을 알고 난 이후 길에게는 너무 곤혹스러운 미션이 아닐 수 없지요. 게임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재석을 잡아야만 하지만 감히 재석을 잡아 방송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길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길은 시민들에게 "만약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출연하지 않으면 어떨까요?"라는 설문 조사를 시작합니다. 그가 인터뷰를 한 모두가 "안 봐요"라고 말할 정도로 무도에서 재석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길의 인터뷰는 재석을 옆에 두고도 공격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냅니다. 스타의 파워가 대중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잡으면 길의 승리로 끝나는 상황에서도 망설이며 마무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아이러니를 넘어 현실의 냉혹함을 깨닫게 합니다.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슈퍼스타에 대한 경계심은 모든 것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재석을 두고 보이는 하하와 길의 행동 양식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무도 게임의 황제인 노홍철은 기고만장입니다. 다양한 게임들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여주었던 그에게 이런 게임들은 시시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의 머리 위에서 게임을 지배한다고 생각한 그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나태해지고 그런 행동들은 칼을 갈고 있었던 다른 멤버들에게는 표적이 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하하를 잡아야 하는 홍철과 홍철을 잡아야 하는 준하 사이에 절묘한 연대가 이뤄지고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혹은 알아도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교만은 노홍철이 첫 탈락자가 되는 기이함을 제공합니다.
요즘 대세 형돈 역시 명수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더니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합류해 하하에게 잡히게 되면서 곧바로 탈락되는 모습은 우리 시대 방송환경을 엿보게 합니다. 방송에 대한 통렬한 조롱은 다음 주 방송될 시청률 경쟁에서 스타들을 내세워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최근 종편이 개국을 앞두고 미친 듯이 스타 사냥에 나서고 있는 점은 누가 봐도 홍보효과를 위함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지요. 스타 피디들의 영입이 시작되고 스타 마케팅을 위한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 제작으로 언론 홍보에 주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종편이 4개나 갑자기 늘어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의아하게 만듭니다.
종편 4개와 기존 공중파 3, 도합 7개의 종합편성 권을 가진 방송의 난립은 곧 공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입니다. 로비를 통해 급하게 조성된 종편은 자연스럽게 기존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잘못된 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생명을 얻게 된 종편은 태생부터가 문제일 수밖에 없는 방송입니다. 방송과 관련해 전권을 쥔 방통위가 전문가의 의견도 무시한 채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해 벌인 종편 사건은 공정하고 중립적인 방송이 대한민국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알린 사건이기도 합니다.
종편 사업자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공중파 방송에 낙하산 사장을 투하시켜 선명한 이미지를 훼손하고 스스로 자멸하도록 만드는 더러운 전략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종편이나 공중파나 그렇고 그런 존재라는 이미지 확산은 종편의 시작을 가볍게 해줍니다. 종편 사업자들은 권력의 힘으로 시작된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 '광고 직접영업'을 시도하려 합니다. 광고시장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면 방송은 재벌 등 소수의 자본 권력에 의해 종속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광고 대행을 통해 분배하는 형식이 아닌 직접 광고는 그만큼 광고주의 힘을 강력하게 만들어 자본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편 사업자들이 스타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스타의 이미지를 통해 개국을 알리고 호감도를 높이기 위한 선전도구의 역할밖에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도하게 높아진 몸값은 결과적으로 방송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과다한 몸값 경쟁은 콘텐츠의 질적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스타 마케팅의 숨겨진 곳에는 종편 사업자들의 뉴스가 존재합니다. 수구언론의 편향된 기사가 그대로 방송으로 전파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타 마케팅은 그만큼 중요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들의 움직임은 씁쓸함을 넘어 지독할 정도로 비릿할 뿐입니다.
방송 재허가권을 쥔 방통위의 무소불위의 힘은 잘못된 권력에 의해 황소개구리나 배스보다 무의미한 종편이라는 생명체를 탄생시켜버렸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무시한 채 권력을 쥐게 해준 공로로 얻게 된 종편 사업권은 이제 기존 방송 환경을 파괴한 채 자신들의 배만 불리겠다는 심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방송의 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에서 종편 사업자를 위한 정책에 혼신을 다하는 방통위로 인해 대한민국의 언론은 종이 시장에서 방송 시장까지 궤멸로 이끌고 있음은 경악스럽기만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먹고 먹는 먹이사슬로 표현한 무도의 TV 전쟁은 그저 웃고 넘어갈 수준의 게임은 아닙니다. 잔인하게도 즐거운 레이스 속에 너무나 민감하고 복잡하게 얽혀지는 'TV 전쟁'을 능숙한 방식으로 풀어낸 김피디의 재능은 악마가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타 마케팅의 허와 실, 짝짓기와 다양한 입질 등으로 공정한 게임의 룰은 모두 사라진 채 오직 살아남는 것만이 의미 있는 행위가 되어버린 그들의 전쟁처럼 현재 방송은 진흙탕 속에 깊이 빠진 채 언론의 본질도 잊어버린 듯합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게임을 해야 하고 '방송 재허가'를 통해 게임 자체를 중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게임의 룰은 단순한 예능을 넘어서 현실에 대한 잔혹한 풍자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재석과 형돈이 함께 하는 장면에서 광고주의 변심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재석이 위험에 빠져드는 상황은 흥미롭습니다. 이제 곧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자본의 언론 장악 모습을 잔혹한 풍자로 엮어낸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무도 TV 전쟁'은 가치를 다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수수방관하는 사이 대중들을 기만하고 권력을 위한 언론들이 속속 우리 곁으로 다가서려 합니다. 기득권들을 위해 움직이는 언론들의 사악한 음모가 과연 99% 대중들을 얼마나 기만할지는 이미 페이퍼 언론을 통해서도 우리는 처절하게 경험해왔습니다. 이런 경험도 무색하게 우린 이제 방송을 통해서도 이런 기만행위를 경험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움으로 다가옵니다. '무도 TV전쟁'이 보여주듯 바보들의 행진 같은 그들의 엉망진창 게임은 우리 시대 언론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눈 여겨 봐야만 할 것입니다.
'Broadcast 방송이야기 > Variety 버라이어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도 TV전쟁, 스타 마케팅과 과도한 시청률 경쟁을 비판하다 (4) | 2011.11.20 |
---|---|
1박2일 김치로드-두 마리 토끼 잡은 그들 진정 마지막을 준비하나? (0) | 2011.11.14 |
1박2일 카이저 태웅, 자생능력 갖춘 그들의 여행은 이제부터다 (6) | 2011.11.08 |
나가수 바람났어 그래서 흥겨웠어 (0) | 2011.11.07 |
무한도전 수능특집은 지식 배틀이 아닌 쌍방향 리얼 극 이었다 (0) | 2011.11.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