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홍자매의 조급증은 결과적으로 자기만족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영혼이 바뀌고 이를 통해 어린 경준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과의 소통도 실패하고 재미마저 놓치며 그 무엇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무리를 위한 마무리에 급급하기만 했습니다.
자기만족에 빠진 홍자매의 이야기 분명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탁월한 존재감을 보여 왔던 홍자매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공유와 이민정, 수지로 이어지는 막강 트로이카는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이야기는 사라지고 집착에 가까운 대사를 통한 상황 전개는 악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청자들은 불편하고 제작진들은 편리한 방식의 마무리는 뭐가 있을까? 바로 열린 결말입니다. 물론 모든 열린 결말이 제작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열린 결말이 주는 파괴력이 대단한 작품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무조건 열린 결말을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빅'의 결말의 경우 조급하게 쫓기며 마무리를 위한 마무리에 급급한 모습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작가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행복은 시청자들에게는 불행이었습니다. 무조건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결말은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완성도에서도 문제를 드러냈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에 대한 핵심도 놓친 듯 보였으니 말입니다.
오래 전부터 공유를 생각하며 드라마를 구상했다는 홍자매가 '빅'을 통해 공유의 무슨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주인공으로서 10대와 30대를 오가는 연기가 중요하기는 했지만 이를 통해 과연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대사를 통해 복선을 깔고 시청자들을 이해시키려는 방식은 답답함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단편적이고 밋밋하게 모든 것은 대사에서 시작해 대사로 끝나는 '빅'은 긴장감이나 애절함도 없었습니다. 실패한 캐릭터인 길다란은 시작부터 끝까지 울기만 하면서 과연 그녀가 무엇을 위해 저렇게 울어야 하는지도 종잡을 수 없게 했습니다.
무리하게 진행되는 러브 라인이 과연 무엇을 위한 이야기 전개인지도 모호하고 이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도 어설펐습니다. 그저 사랑이란 이렇게 무모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이었다면 성공했을 듯합니다.
윤재의 몸을 한 경준이라는 설정 자체가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하기에는 맹점을 지닐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과연 길다란이 윤재의 몸을 한 경준을 사랑하는 것인지 실체와 상관없이 경준 자체를 사랑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니 명확하게 대사를 통해 여러번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쉽게 와 닿지 않은 것은 외형이 너무 번듯한 윤재라는 점입니다.
윤재가 되든 경준이가 되는 사랑하는 대상으로서 누구를 선택하든 손해는 아닐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다란이 어린 경준을 선택하는 것에 시청자들이 극적인 반응을 할 것이란 기대를 했다면 홍자매의 착각이었을 듯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윤재의 몸을 한 경준의 모습으로 처리한 상황에서 과연 다란의 사랑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그녀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윤재 역시 다란을 사랑했고, 그녀를 위해 결혼반지까지 준비한 상황에서 갑자기 사고를 통해 몸이 바뀌며 모든 것이 뒤틀린 것은 결과적으로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홍자매식 증명을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윤재는 사라지고 윤재의 몸을 한 경준과의 사랑만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홍자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랑'은 증명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일방적인 주장에 가까운 사랑은 강요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윤재라는 인물이 다란을 이용하고 버리려고 했다면 경준을 통해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가고 찾는 과정들이 어느 정도 힘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용 전개상 윤재는 한 번도 다란을 배신한 적도 없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해 그녀를 지키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사랑을 의심하고 배신한 것은 다란이었고, 그녀는 윤재와 경준이 이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경준을 선택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사랑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개연성도 의미도 찾아볼 수 없는 '빅'의 사랑은 오류 투성이었습니다.
윤재의 경준이 과연 영혼을 바꿨을까? 에 대한 의문도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저 마리의 메일 하나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허망합니다.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이유 역시 마지막 2회를 엉망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설픈 줄다리기에 모든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공감대와 재미를 주지 못한 홍자매의 이야기는 마지막 시점에 다가오자 그저 마무리를 위한 마무리를 선택했습니다. 일방적인 방식으로 대사와 상황 정리를 통해 모두가 행복해졌다고 밝히는 상황에서 윤재와 경준의 실체는 누구도 알 수 없게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윤재의 몸을 하고 찾아 온 이가 경준인지 아니면 그저 윤재인지도 모호합니다. 물론 상황 상 경준이라는 사실은 명확하지만 이런 형식적인 처리가 의도적으로 구성된 방식인지도 모호한 상황에서 그저 알아서 해석하라는 식의 결말은 무책임하기만 했습니다.
그럴 듯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대사들로 이야기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빅'을 이끌어온 홍자매는 스스로도 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지 의문입니다. 시종일관 작가 편의주의만 앞세운 채 시청자들과의 소통에 실패한 '빅'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민망한 광고만 노골적으로 보여주는데 급급하며 시청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쓴웃음을 지어야만 했습니다. 무책임한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 행복을 강요하기만 했다는 점에서 서글프기만 했습니다.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고도 이렇게 산으로 가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빅'은 완벽하게 실패한 드라마입니다. 초딩 수준의 감각으로 일관한 홍자매의 판단 실수 혹은 한계가 만들어낸 재앙에 가까운 드라마는, 경쟁 상대였던 '추적자'와 비교되며 그 초라함만 더욱 커졌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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