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 축들의 충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한글을 둘러싸고 벌이는 권력 다툼은 마지막으로 향해가면서 더욱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 실체를 드러내느냐가 중요한 문제였지만 18회 마지막 순간 정체를 드러내며 믿고 의지까지 했었던 가리온이 정기준이라는 사실이 경악하게 됩니다.
이방지의 슬픈 과거를 알게 된 후 의외의 장소에서 스승을 만나게 된 채윤은 당황스럽습니다. 스승인 이방지 역시 정기준의 잔인한 방법이 여전히 씁쓸하기만 할 뿐입니다. 이방지는 자신의 유일한 제자인 채윤에게 윗사람들의 일에 관여하지 말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라고 합니다. 자신과 같은 불운을 제작도 함께 하지 않기를 바라는 스승의 바람은 그저 바람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삼봉을 모시는 호위무사로서 조선제일검으로 살아왔던 이방지. 하필 삼봉이 사랑한 여자를 사랑한 죄로 둘 모두가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바라봐야 했던 그로서는 그런 상황들이 힘겹기만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윤평에게 살수를 가르쳐야만 했던 이방지는 밀본이나 속세의 권력들에 영합하지 않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물론 타고난 무예를 갖춘 그가 그렇게 초로의 노인으로 늙어가는 모습이 그를 탐하는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순간들일 수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무력으로 자신들을 짓밟았던 왕에게 반기를 들었던 정기준이 오히려 잔혹한 폭력을 앞세우는 모습이 아이러니 합니다. 그런 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존재는 이방지였을 것입니다. 이방지에게 살수를 배운 윤평과 전설로만 내려왔던 살인귀 개파이, 여기에 이방지와 채윤까지 합세한다면 무휼이 지키는 이도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정기준의 바람과는 달리, 이방지는 철저하게 그를 외면하고만 싶습니다. 단순히 과거 주군을 잃은 패장이 가지는 자괴감이 아닌 철저하게 권력에 대한 탐욕만이 넘치는 정기준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백정으로 자신을 숨긴 채 밀본을 재건하고 이끌어나가면서도 그는 정작 가장 중요한 백성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존재이니 말입니다. 철저하게 사대부들만을 위한 나라를 생각할 뿐 백성들을 위한 나라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백정 위장 역시 가식적인 행동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이방지가 정기준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겠지요.
고민만 늘어가는 이방지를 자신을 찾아온 무휼과 맞서게 됩니다. 수십 년 전 대결을 펼쳤었던 그들은 '초로 같다'는 생각을 가질 나이가 되어 다시 칼을 빼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세종은 여전히 피의 정치가 아닌 문의 정치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정기준과 밀본을 일망타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만나 정사를 논하고 백성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뿐입니다.
그런 세종의 바람을 전하는 무휼과 무사의 혼을 드러낸 진정성에 마음을 돌린 이방지는 자신의 뜻과 닮은 세종의 말을 정기준에게 전합니다. 하지만 오직 자신이 생각한 권력이 아니면 무의미하다 생각하는 정기준에게 이방지의 이런 태도는 배신이나 다름없을 뿐입니다. 자신의 편이 아니면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기준은 개파이를 보내 이방지를 없애도록 명령합니다.
전설과 전설이 함께 한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기만 합니다. 대결을 하는 그들에게는 피 말리는 순간들이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는 없을 테니 말이지요. 북방의 전설이었던 개파이와 조선제일검의 만남. 하지만 이미 늙어버린 이방지가 상대하기에 너무 젊은 개파이. 그럼에도 자웅을 쉽게 가릴 수 없는 상황들은 이후 상황을 더욱 흥미롭게 합니다.
스승을 만나러 왔던 채윤은 난장판이 된 집을 보고 찾으러 나서고 세종의 뜻을 받들어 정기준의 의사를 전해 듣기 위해 이방지를 만나러 간 무휼 역시 사라져버린 그가 걱정입니다. 단단한 돌들도 단 칼에 베어버릴 정도로 대단한 무공을 지닌 둘의 대결은 낭떠러지에 떨어졌다는 개파이의 말로는 부족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방지가 사라지고 상황은 급변합니다. 생사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정기준으로서는 두려운 상황이 되었고 더욱 채윤이 자신들을 농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급하게 은신처를 옮기려 준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지를 통해 면담을 요청했던 세종은 가리온이 정기준인 줄 모르고 운명의 장소에서 그와 대적하게 됩니다. 백정으로서 한글 창제에 공헌한 그가 다름 아닌 밀본의 본원 정기준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긴장감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이방지가 생각하는 백성이 사는 법은 '치사하고 비겁하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는 그의 발언은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권력이 극단적인 소수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힘없는 백성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라는 이방지의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힘없는 서민들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살아야만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1%를 위한 세상이 된 현 정권하의 대한민국은 정기준이 외치는 사대부들이 모든 권력을 가지는 시대와 다름없으니 말입니다. 오직 자신들만이 권력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만 부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은 현재와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18회의 하이라이트는 세종의 발언들이었습니다. 최만리와 나누는 이야기들은 이 드라마가 왜 위대한지에 대해 잘 보여줍니다. 한글이 가져올 폐단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절대 한글이 반포되어서는 안 된다는 최만리의 주장에 일목요연하게 반박하며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는 세종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권력 세습을 예상이라도 한듯 날카롭기만 합니다.
"아니 그 시험은 무엇으로 보느냐. 너희만 아는 너희만 배울 수 있는 한자로 시험을 본다. 양인들도 시험을 통해 권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은 정작 한자를 아는 사람들만 관리가 되는 게 아니냔 말이다. 이대로 가면 백년 뒤에는 서열들의 과거가 금지될 것이고, 이백 년이 지나면 양반들만 시험을 보게 될 것이고, 삼백 년이 지나면 양반들을 사고파는 지경이 될 것이다"
"조선은 그렇게 경직될 것이고 그 패해 또한 날로 심해질 것이다. 역사를 보아라. 어느 나라의 역사나 다 그렇지 않느냐. 하여 과인은 그 패해를 이겨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 작은 희망으로서 글자를 만든 것이다"
경직된 세상이 가져올 폐단을 밝히는 세종의 이 대사는 중요합니다. 소수집단들만이 권력을 가지는 세상이 고착화되면 그 폐단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그런 세상은 곧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는 세종의 발언은 우리 시대의 독선들과도 충돌합니다.
재벌들은 독재자를 통해 거대한 부를 거머쥐었고 그런 부를 통해 권력의 시녀를 자처하더니 막강해진 부는 이제 권력을 지배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커진 부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지겠다며 동네 순대 장사까지 자신들이 도맡아 하려 합니다. 이런 독주를 견제해야만 하는 권력은 오히려 그들과 부화뇌동하여 그들에게 힘을 주는 상황은 공멸로 나아가도록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소수의 지배자들이 모든 권리를 가지고 다수의 국민들을 종으로 삼겠다는 가증스러운 독선이 지배하는 세상에 세종의 발언은 그렇기에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글자가 무기가 된 세상. 정보가 무기가 된 세상. 이 유사한 상황에서 세종은 한글을 창제해 반포했고 민주정권은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를 공유해서 권력을 국민모두가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국민들이 가장 만만하게 본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 것입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국민들과 함께 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자신들이 독점할 수도 있는 권력을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현 정권 들어 인터넷을 감시하고 광장을 폐쇄하며 '명박산성'으로 모든 소통을 통제하는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최만리가 모든 백성이 글자를 사용하게 되면 신분체제가 위협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면 우려합니다. 하지만 그런 신분제도가 당장 사라지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세종의 말에 그럼 백성들을 고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세종이 최만리에게 건넨 이 대사는 우리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그들이 스스로 길을 모색해 나가야만 합니다. 서로 싸우고 타협하며 만들어가는 세상만이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드라마 속 대사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것은 소통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일방적인 독선이 아니라 모두가 적극적으로 사안에 대해 토론하고 경쟁하며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발언은 우리시대 위정자들이 알아야만 하는 절대 진리입니다. 오직 자신들만이 정답이라 외치며 국민들을 외면한 채 자신들만의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가진 자들의 모습은 세종이 보았다면 전조 고려처럼 썩어서 사라질 것이라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한석규가 피를 토하듯 토해내는 이 대사들은 우리 시대 많은 이들을 깨우게 합니다. 과연 우리 시대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정답을 던져주고 있는 세종의 발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연 나라가 부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중요한 것은 독선과 아집이 아니라 소통과 대화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세종의 모습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는 체감하게 합니다.
-SBS 드라마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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