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과연 소수의 책임질 수 있는 자들만의 몫인가?
가리온이 정기준일 것이라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종은 의외의 상황 순간 가장 지근거리에서 한글 창제에 큰 공을 세웠던 이가 밀본의 핵인 정기준이었다는 사실은 모두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설마 가리온이 정기준일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들에게 이런 상황은 당혹스럽기만 했습니다.
세종으로서는 낯선 상황이기는 했지만 정기준과의 토론을 요구했던 만큼 자신이 원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무휼과 개파이가 날 선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토론을 하자는 세종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대단하게 다가왔습니다. 19회의 핵심은 초반 등장했던 세종과 정기준의 토론이었습니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은 '뿌리깊은 나무'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였다는 점에서 그들의 논쟁은 흥미롭게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힘을 믿는 세종과 무지몽매한 그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는 정기준의 대립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그 가치 기준의 차이는 너무 단단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대단한 글자를 만들어 역설적이게도 막아야만 하는 명분이 생겼다는 정기준과 그런 그를 깨닫게 하기 위한 세종의 토론은 서로의 가치들이 충돌하며 과연 백성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무지몽매하고 책임질 수 없는 백성들이 글자를 알게 되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지옥과도 다름없다고 외치는 정기준. 삼봉이 주장했던 언로의 해방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며 백성이 깨우치면 보다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세종의 주장은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대부의 욕망은 멸망한 고려와 다름 없이 음서제도 등을 부활시켜 스스로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세종은 그 대안이 곧 백성들의 견제에서 시작된다고 강변합니다. 그런 세종에게 백성들의 욕망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격하는 정기준의 모습은 그 치열한 논쟁의 핵심이었습니다.
사대부의 욕망이 있듯, 백성들에게도 욕망이란 존재하는데 신분 질서가 엄연한 사회에서 과연 수없이 터져 나오는 백성들의 욕망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정기준의 반격은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글을 알면 많은 지식들을 탐하게 되고 그렇게 탐한 지식은 곧 권력을 잡기 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기득권을 가진 그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바로 '욕망을 가지게 된 백성'일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질서와 조화를 내세우며 기득권을 이야기하는 정기준과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백성에게서 찾겠다며 기득권 견제를 이야기 하는 세종의 모습은 치열한 대치 점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거대한 바다와 같은 욕망을 이미 경험해봤던 세종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글 창제가 시작되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백정으로 자신을 숨기며 살아왔던 정기준이 내뱉듯 던진 무지몽매하고 책임감도 없는 백성이라는 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신분제도가 명확한 사회에서 백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을 사랑하과 위하는 마음으로 만든 한글. 그런 한글과 세종을 공격하기 위해 정기준은 세종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던 감정을 건드리기 시작합니다. 백성들에게 권력을 나누기 위함이 아니라 책임을 나누기 위함이 아니냐는 그의 반격은 세종을 힘들게 합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백성이 귀찮아져서 너무나 완벽한 한글을 통해 자신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는 것은 책임 회피가 아니겠느냐는 정기준의 말은 세종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맙니다.
그 스스로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 백성에 대한 두려움 혹은 귀찮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분노하며 소이에게 경멸하듯 이야기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런 자신의 숨겨진 마음 한 켠에 백성에 대한 귀찮은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하게 합니다.
이런 서로의 고민들을 나누던 그들이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은 첫 인쇄본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성리학을 가르쳐 백성들을 깨우치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인쇄본은 불경이었습니다. 고려 시대 500년 동안 모두가 믿었던 불경은 백성들이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종으로서는 백성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선택해 한글을 깨우치게 하겠다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지만, 정기준으로서는 성리학이 아닌 불경을 첫 인쇄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경악합니다. 세종이 자신에게 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고 오직 자신이 만든 한글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정기준은 광평대군을 시해합니다.
광평대군의 주검(광평대군은 가시가 목에 걸려 굶어 죽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입니다)을 접하고 한없이 슬퍼하는 세종. 자신이 가장 총애했던 아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모습을 보며 무너진 아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세종의 모습은 그동안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무너져버린 세종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채윤이었습니다. 세종이 자신의 힘으로 살린 첫 번째 백성인 채윤이 흔들리는 세종을 바로 잡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전개를 예고하게 했습니다.
가치들이 충돌하며 많은 것들을 고민할 수밖에 없도록 했던 19회는 흥미로웠습니다. 백성들의 역할. 그들이 과연 욕망이 지배하는 거대한 집단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 내는 유일한 대상이 될지는 여전히 모호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소수의 권력자들의 모습만 봐도 그들이 국민들을 어떤 존재로 보고 있는지는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지식 습득과 정도 공유를 철저하게 막기에 바쁜 권력자들의 모습은 과거 세종 시절의 정기준의 가치관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종편을 통해 기득권 세력들의 영구적인 권력 세습을 용이하게 하고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견들과 정보들이 소통되는 SNS를 규제하고 탄압하는 조직을 세운 현 정권은 과거 사대부들의 권리만을 찾고 백성들을 무지몽매하고 불평불만만 많은 나약한 존재라고 폄하한 정기준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보여준 한석규의 연기력은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눈이 빨갛게 충혈이 되어 열변을 하는 그의 연기는 더 이상 감정을 끄집어 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모습이었습니다. 분노하고 고민하고 무너지는 왕을 이토록 완벽하게 연기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할 정도로 한석규의 연기는 완벽했습니다.
기존 왕이 가지고 있었던 틀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가장 인간적인 왕으로 분한 한석규로 인해 이후 등장하는 사극의 왕 역할은 무척이나 힘들 수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왕 연기의 기준이 한석규가 되었다는 점은 무척이나 힘겨운 일일 수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세종과 정기준의 끝장토론은 우리 시대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장면이었을 듯합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생명만을 위해 국민들을 우롱하는 위정자들의 모습들은 과거보다 못한 존재감으로 국민들을 희롱하기만 합니다. 국민들을 그저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종, 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그들을 바라보며 세종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부패할 대로 부패해버린 권력 집단들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언로가 아닌 자로'로 인해 힘을 얻은 국민들 밖에는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민들이 똑똑해지기를 두려워하는 집단들을 상대로 국민들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바른 시각으로 현재의 문제점들을 논의하고 소통해서 미련한 세상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일 것입니다. 피를 통하는 연기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킨 한석규가 연기한 세종. 그가 그토록 원했던 진정한 백성의 힘. 그 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은 바로 현재 일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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