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공포를 TV 속 공포로 대처하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MBC가 파일럿으로 제작한 <심야 괴담회>가 첫 공개되었다. 목요일과 토요일 저녁 10시 방송되고 있는 <심야 괴담회>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였다.
한동안 국내 TV에서는 공포물은 사라졌다. 한정된 장르만 가득한 상황이었다. 최근까지도 꾸준하게 사랑받는 장르는 '막장'이다. 극단적 상황들을 통해 자극을 파는 드라마만이 성공하는 시장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끔찍한 공포와 같은 현실이다.
현실이 더 끔찍하니 이를 회피하기 위해 달달하거나 허당인 이야기들만 가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를 대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비판적인 이야기를 담고 정의를 실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환영받고 있다. 소위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말이다.
드라마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막장 외에는 제대로 된 시청률을 올리기 어려운 시장 구조 속에서 이를 탈피한 이들은 TV를 보지 않는다. OTT에서 자신이 원하는 드라마를 찾아보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다른 선택을 하는 동안 막장이 TV를 지배한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심야 괴담회>는 야심찬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96년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이후 처음 나온 소재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보낸 공포 경험담을 읽어주는 방식의 방송이다. 과거 재현하는 방식으로 사연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라디오 방송을 하듯 이를 소개하는 방식을 취했다.
신동엽, 김숙, 박나래, 황제성, 허안나, 심용환, 곽재식 등이 출연자로 나왔다. 무서운 이야기를 두려워한다는 신동엽을 중심으로 스스로 공포 마니아로 자청한 김숙과 박나래가 핵심 화자로 등장했다. 여기에 황제성과 허안나까지 4명의 화자가 시청자들이 보낸 사연을 읽어주는 방식을 취했다.
역사교육을 하는 심용환이 과거 유사한 형태의 괴담이 있었는지를 확인해 주는 전문가로 등장했다. 이와 다른 측면에는 카이스트 출신의 괴물 전문가로 알려진 곽재식이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며 방송의 재미를 더욱 키웠다는 점에서 좋은 조합이었다.
첫 방송에서는 세 편의 시청자 사연이 소개되었다. '원한령과의 동거', '모텔에서 들리던 소리', '물귀신을 모으는 남자들'로 이어진 사연은 제법 흥미로웠다. 실제로 경험했다는 끔찍함으로 다가왔을 사연이니 말이다. 다만, 재현이 최소화되고 화자가 나서 육성으로 들려주는 상황들은 공포감이 상대적으로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이 점점 늘어가는 상황에서 단순히 읽어주는 방식으로 공포를 극대화하기는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농익은 김숙과 박나래가 그 한계를 조금은 넘어서기는 했지만, 조금은 과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등 한계는 명확했다.
온라인으로 한정된 시청자들이 함께 보며 투표를 통해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이가 최종 승자가 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은 좋았다. 언택트 시대가 되며 다양한 방식들이 동원되고 있다. 여기에 제작비 절감하면서도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심야 괴담회>가 옳은 방식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현하는 방식을 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쩔 수 없이 화자를 통해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공포는 단순히 읽어주는 것으로 전달되기는 힘들다.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전달자에 의해 이야기를 전하는 과거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현재로서는 모호함으로 다가온다. 이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전달 과정에서 표현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재현 없는 화자 방식은 '공포'라는 단어와는 멀어 보이기는 했다.
두 전문가가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이용해 해당 사연들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주는 방식도 좋았다. 과학적 접근으로 귀신이라는 존재를 해설하는 곽재식과 과거 기록들을 통해 유사한 경험들을 찾아주는 심용환은 <심야 괴담회>를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2회로 준비된 <심야 괴담회>가 정규 편성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MBC가 드라마를 최소화시키고 예능을 늘려간다는 점에서 이 역시 정규 편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규 편성된다면 다양한 형태의 많은 사례들이 준비되어야만 한다.
실제 경험담에 집중한다면 더더욱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존재한다. 수많은 사연들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과연 방송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실제 경험담이 얼마나 존재할지는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여기에 기존 방식처럼 화자를 앞세울 것인지 재현을 통해 공포를 극대화할 것인지도 판단해야 할 것이다.
화자 방식이 통하는 유형도 많지만, 공포물의 경우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을 <심야 괴담회> 첫 회는 잘 보여주었다. 분명 공포스러운 상황을 적절하게 전달하는 전문가가 있으면 모를까?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분명한 한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심야 괴담회>는 분명 틈새다. 그렇고 그런 주제들이 남발되는 상황에서 공포를 앞세웠다는 점에서 반갑게 다가온다. 하나의 장르로서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들이 나오는 공포와 스릴러 장르들이 국내에서는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TV를 보는 주층이 한정되어 있다. TV를 보는 시청자보다 다른 매체를 이용하는 이들이 더 많은 시대에서 과연 TV는 어떤 길을 걸을지 궁금해진다. 한정된 시청자를 두고 입맛에 맞는 자극을 선사하며 돈을 벌 것인지, 떠난 이들을 불러올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지 이제 그건 방송사들의 몫이다.
분명한 사실은 TV가 사망 직전까지 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법도 개정되며 보다 다양한 형태의 제작이 가능해졌다. 과연 방송사들이 과거의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들을 통해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MBC가 <심야 괴담회>를 통해 현재의 예능 편향성에 한방을 날렸다. 이런 변화를 통해 보다 다양한 도전들이 이뤄지기 시작한다면 많은 이들이 다시 TV 앞에 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경험담을 들려주는 이 방식은 편안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반갑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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