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사건들 사이 빈 구석을 채워넣는 작가의 힘은 재미있다. 정통 사극이 아니라는 점에서 역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흥미롭게 이끄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육룡이 나르셔>는 이런 기록된 역사 이외의 세밀한 부분들에 대한 상상력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성계와 최영의 대립;
이임겸마저 알지 못했던 비밀조직, 결국은 육룡이 넘어야 할 산은 그들이다
정도전이 이성계의 뒤에서 모든 것들을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최영은 분노한다. 그리고 도당에서 이성계에게 정도전과 함께 하라며 자신은 이인겸과 함께 하겠다고 선언한다. 고려 최고의 무사인 최영과 적이 되어서는 대업을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정도전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버겁게 다가온다.
결국 최영을 내쳐야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그와 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현실 역시 불안하다. 쳐내야만 하는 이인겸을 오히려 품겠다고 나선 최영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상황에서 정도전은 더욱 큰 고민을 안게 되었다. 최영이 들어선 화사단에 뒤이어 원나라 사람들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최영은 왜 이 시급한 상황에 원나라 사람들을 만났는지가 중요하다. 명의 중국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원이 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영의 움직임은 좋은 징조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공민왕 시절 중국의 권력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원을 배척하고 명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부패한 권력을 제거하고 백성들에게 귀족들의 토지를 나눠주는 등 사력을 다했지만 노국공주의 죽음 뒤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북진 정책을 통해 잃어버린 북쪽 땅을 되찾는 일도 고려라는 국가를 제대로 만드는 과업도 모두 내팽겨 치고 신돈에게 모든 임무를 맡긴 채 노국공주를 위한 일만 하다 암살을 당한 공민왕. 그 공민왕의 시절이 지나고 우왕의 시대 고려는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도당 3인방의 횡포가 극에 달하고 무능한 왕의 한심함은 백성들을 더욱 도탄에 빠트리는 이유가 되었다.
원을 배척해왔던 고려가 다시 원과 손을 잡는다? 고려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문하시중인 최영의 행보는 그래서 궁금증과 함께 불안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정도전의 그런 불안은 도당 회의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명이 직접 이성계 장군이 개척하고 지배하고 있던 동북 지역이 포함된 철원 이북 지역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더욱 황당한 것은 최영이 크게 분개하지 않고 '할양'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강직한 장군인 최영이 명나라의 오만불손한 요구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욱 이런 위급한 상황에 최영은 이성계에게 왕과 함께 사냥에 가자고 제안까지 한다. 누가 봐도 이상할 수밖에 없는 최영의 행보는 정도전에게는 불안 요소다.
최영의 이런 행동과 함께 처형당한 홍인방의 집에서 뭔가를 옮기는 존재들을 발견했고 이를 수상하게 여겨 몰래 따르던 덕칠이가 사체로 발견되며 분이는 분개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번 사건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수레에는 금괴가 가득 실려 있었고, 그곳이 향한 곳이 바로 지재상인인 적룡이 있는 비국사였다.
방원과 분이, 그리고 무휼이 비국사로 숨어들어 창고 안에 가득하게 쌓여 있는 물소 뿔들을 발견하게 된다. 엄청나게 준비된 물소 뿔들은 당시 각궁을 만드는 최고의 재료였다. 홍인방의 집에서 몰래 빼내온 금을 물소 뿔과 바꿔 놓았다는 것은 곧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와 다름없었다.
사냥을 떠난 최영과 이성계, 그리고 우왕 역시 전쟁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요동을 정벌하자는 최영의 제안은 공민왕의 업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와도 같다. 명나라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들과 맞설 준비를 하겠다는 최영의 선택은 모두를 놀라 게 만들 뿐이었다.
최영의 이런 선택이 비난받을 수는 없다. 문제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로 전쟁을 치르기에는 힘겨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정계 군사가 존재한다고 해도 전쟁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참여해야만 한다. 더욱 거대한 땅덩어리는 가진 명나라와 대항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백성들의 희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욱 당시에는 북쪽 오랑캐들만이 아니라 왜구의 침입도 빈번하다는 점에서 한 곳에 모든 역량을 동원하기에 불안한 요소가 존재했다.
이성계의 '4불가론'이 나온 이유 역시 당시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무지하고 부패하고 능력 없는 우왕을 앞세운 최영의 요동 정벌은 무산되고 '위화도 회군'을 이끌어낸다. 이후 최영의 운명은 끝나고 우왕 역시 권좌에서 물러나는 신세가 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 속에서도 방원과 분이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이를 눈치 챈 민다경의 간섭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가상의 인물을 통해 실제 역사에 남겨진 인물의 성격을 분석하고 기록에 영혼을 심어내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이자 조선 건국을 하는 과정에서 큰 힘을 보인 강씨 부인의 등장도 흥미롭다. 이방원에게 민다경이 있다면 이성계에게는 강씨 부인이 존재했다. 그리고 조선을 건국하고 왕자의 난을 통해 조선 세 번째 왕이 되는 방원의 여정은 강씨 부인의 등장으로 인해 더욱 선명해졌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다시 급부상하기 시작한 비밀조직은 이번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적룡을 한 방에 무너트리고 최영을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이성계의 갈라서게 만들기까지 했던 일련의 과정에서도 그들은 등장한다. 표식 하나만으로 모두를 떨게 만드는 그 비밀조직은 누구인지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비밀조직의 정체는 땅새와 분이 남매의 이야기로 올라가게 된다. 사라진 자신의 어머니의 흔적 속에 그 표식이 존재한다. 땅새는 그렇게 그 표식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현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이와 연희를 지키기 위해 정도전의 호위무사로 있지만 그 표식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면 이방지가 된 땅새의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무명'이라고 불리는 비밀조직의 정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그들이 분명 거대한 조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고려의 최고 권력자인 이임겸을 돕고 만든 것이 바로 그들이라는 점에서 그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는 명확해진다. 문제는 그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지배하는 고려는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당 3인방이 무너지며 다시 등장한 비밀조직은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들은 적룡을 앞세워 최영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방원에게 알려줬다. 필담을 나누던 최영과 원나라 사람들. 그들이 남긴 종이 위에서 어렵게 세 글자를 찾아냈고 그게 바로 '압록강'이었다. 그 압록강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요동이었다.
'압록강'이라는 단어를 통해 '요동 정벌'을 떠올린 정도전은 불안하다. 정도전이 생각하는 최영은 탐욕이 없는 권력자다. 도당 3인방처럼 백성들의 땅을 빼앗아 자신의 배를 채우지도 않는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금을 돌같이 보라'는 최영의 말처럼 그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강직한 장군이다.
개인적인 욕심이 전무한 최영은 고려의 새로운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그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왕도 아닌 국가다. 우왕이 누구의 피를 받았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도 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고려 그 자체이지 왕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로 다가온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뭐든 희생시키는 권력자라는 사실이 문제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백성들의 안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영은 제거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위화도 회군'과 함께 최영이 이성계에게 제거되는 그 근간 역시 이런 '탐욕이 없는 권력자'의 사고 때문이다. 과거에는 국가의 명운과 발전을 위해 움직인 최영과 같은 권력자가 불안요소였지만 현재 사회에서는 '탐욕까지 있는 불안한 권력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도당 3인방처럼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면서 나라를 앞세운 위정자들의 꼴은 그래서 분노를 유발할 뿐이다.
이 모든 상황을 꽤 뚫어 본 비밀조직은 이방원을 통해 경고를 했다. 그리고 정도전은 최영의 의중을 읽었다. 그리고 이성계 역시 현재 시점에 명과 싸워서 이득을 볼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다. 그렇게 고려의 몰락은 목전에 와 있고 '위화도 회군'은 조선 건국의 시발점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비밀조직이 누구인가다. 적룡이 비밀조직의 표식을 가지고 온 초라한 노인에게 극존칭을 쓰며 시키는 일을 수행하는 모습에서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지재상인으로 그 누구에게도 본심을 다해 고개를 숙이는 일이 없던 적룡의 행태는 비밀조직의 힘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왕족들의 조직일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우왕이 신돈의 자식이라는 말이 많은 당시 왕족들이 이런 사조직을 이끌 가능성은 농후하다. 물론 왕좌에 오른 우왕의 직계 가족들이 아닌 공민왕 시절의 왕족들이 그 대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왕족이 아니라면 공민왕이 망가지기 전 그가 품었던 이상을 따르는 귀족들일 가능성도 높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힌트는 결국 같은 작가가 쓴 <뿌리깊은 나무>에서 찾을 수 있다. 세종에게 두려움을 선사했었던 가리온은 바로 비밀조직 밀본의 3대 본원이었다. 정도전의 동생 정도광의 외동아들인 정기준이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백정 가리온이 되어 세종 가까이에서 '왕권 정치'가 아닌 '신권 중심의 제상총재제'를 실현시키려 했다는 점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정도전이 꿈꾸었던 세상을 그의 동생 아들인 정기준은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설정은 <뿌리깊은 나무>의 중요한 반전 요소이자 핵심이었다. <육룡이 나르샤> 역시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그 가치를 찾고 있다.
이성계나 정도전, 이방원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역들이 분이와 이방지, 무휼 등이라는 점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귀족이 아닌 백성들인 그들이 '육룡'이라는 사실은 이 드라마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가 명확해지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나무>에 가리온 정기준이 있다면 <육룡이 나르샤>에는 무휼의 무술스승인 홍대홍이 존재한다. 가볍게 버려질 수 있는 캐릭터였지만 그는 가별초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그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함께 하고 있다. 가리온보다는 약한 존재감이기는 하지만 홍대홍이 비밀조직과 어느 정도 연결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역시 가리온 때문이다.
1/3을 넘어서기 시작한 시점에서 보다 강력하게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비밀조직. 그들의 움직임과 정체 찾기는 <육룡이 나르샤>를 보다 흥미롭고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가 될 것이다.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는 제자인 이방원에 의해 꺾였다. 괴물을 키운 정도전은 이방원의 칼에 죽임을 당해야 했고, 그의 아들인 세종은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위협했던 가장 강력한 존재가(드라마에서) 가리온 정기준이라는 사실은 묘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밀조직의 전면적인 등장이 반갑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Drama 드라마이야기 > Korea Drama 한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룡이 나르샤 20회-천호진 눈빛 연기로 재현한 위화도 회군, 2막은 시작되었다 (0) | 2015.12.09 |
---|---|
시그널 tvN 회심의 역작 15초 안에 담아낸 걸작의 품격 (0) | 2015.12.09 |
응답하라 1988 10회-사랑이 꽃피는 쌍문동, 외로우니까 사랑이다 (0) | 2015.12.06 |
응답하라 1988 9회-덕선과 택이 사랑보다 쌍문동 이웃사촌이 더 강렬했다 (0) | 2015.12.05 |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 15회-진범은 신은경, 충격적인 반전에 담긴 작가의 의도 (0) | 2015.12.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