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드라마 피스타 마지막 작품이 12월 31일 늦은 시간 시작되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선택된 <한여름의 추억>은 그래서 더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이중적인 의미를 품은 이 드라마는 사랑이라는 기본적 가치에 대한 탐구이자 자문이고 우문이자 현답이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나;
한여름의 끝에서 시작된 이야기, 사랑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방송 작가 한여름(최강희)는 기억에 남겨진 네 명의 남자가 있다. 고등학생 시절 첫 사랑이었던 최현진(최재웅), 대학 CC였던 김지운(이재원), 가장 오래 사귀었던 박해준(이준혁), 마지막 남자가 된 오제훈(태인호)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이 드라마는 그래서 흥미로웠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여름은 마음에도 없는 선자리에 나가 앉아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마음껏 조롱하고 성희롱까지 하는 한심한 남자. 무더운 여름 지독한 더위 만큼이나 여름을 붙잡고 있는 짜증의 무게는 더욱 무겁게 느껴지기만 했다.
지독할 정도로 햇살이 맑았던 날. 걸려온 엄마 전화에 화풀이를 해야만 하는 여름은 답답하기만 하다. 라디오 작가로 일을 하는 여름은 담당 피디인 제훈과 썸을 타고 있었다. 하지만 이혼 후 무책임한 바람둥이가 된 제훈과 사랑은 사랑도 아니고 불안을 증폭시키는 관계일 뿐이다.
어느 자리에서나 여자 나이는 화제가 되고,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여름과 25살의 어린 나이가 무기인 후배 작가와 그걸 가지고 희희덕 거리는 남자들의 술자리는 그래서 무겁기만 하다.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이라고는 생명보험 회사의 이례적인 생일 축하 문자가 전부다.
외로웠다. 그 지독한 외로움이 바람둥이에 책임감도 없는 제훈에게 끌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친한 작가 선배인 장해원(최유송)은 알면서도 만나면 그건 여름의 탓이라고 구박도 했다. 그저 여자면 모두 좋은 제훈에게는 수많은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인 여름이지만, 여름에게는 이제는 정착하고 싶은 한 남자이기도 했다.
여름 휴가를 가기 전 6년 전 헤어진 전 남친이자 팝 칼럼리스트인 박해준이 초대 손님으로 결정되었다. 결혼하자고 했던 해준에게 모진 말로 이별을 선언했던 여름은 선배 언니인 해원을 통해 섭외를 마무리한다. 속도 모르고 섭외를 받아들인 해준은 뒤늦게 그 프로그램 작가가 여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하던 여름은 결승점을 앞두고 넘어지고 말았다. 우승을 앞두고 무너진 여름에게 남겨진 것은 상처들 뿐이다. 그리고 투박하게 다가온 제훈에게 다시 마음을 주는 여름은 정말 외롭기만 했다. 그 남자 여전히 수많은 여자들 중 하나로 자신을 바라볼 뿐임에도 말이다.
여름 휴가로 언니가 살고 있는 미국으로 향한 여름. 언니네가 집을 비운 사이 그곳에서 충전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휴가는 여름의 마지막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나간 여름은 누군가 쏜 총에 맞고 숨지고 말았다. 그리고 여름은 3일이 지나 발견되었다.
여름의 죽음. 그 죽음은 그녀와 사귀었던 남자들에게도 충격이었다. 대학 CC로 열정적인 사랑을 했던 지운은 회사에서도 나이 많은 여자와 열애 중이다. 그리고 대학 때도 그랬듯 열정적으로 싸우고 헤어지자는 말을 달고 살아간다. 과거의 문제를 여전히 품은 채 살아가는 지운에게 여름은 과거의 여자일 뿐이다. 그리고 현재의 여자에게 마지막을 고하는 순간 나오는 주문과 같은 이름일 뿐이었다.
첫 사랑이었던 현진에게 여름은 잔인한 기억이었다. 너무 예뻐 한 눈에 반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졌던 고등학생 현진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른 남학생과 햄버거를 먹으며 환하게 웃는 여름을 보면서 사랑은 없다고 생각했다. 은행에 취직해 수많은 선을 보면서도 현진은 단 한번도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살았다.
첫 사랑이었던 여름은 그렇게 현진에게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가장 오래 사귄 그래서 결혼까지 생각했던 해준은 결혼하고 싶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 역시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여름은 너무 솔직한 팩트 폭행으로 결혼을 거부했다. 서로 좋은 집안도 아니고 직업도 불안정한데 결혼해서 살면서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신은 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욕심이 많다며 그렇게 해준의 곁을 떠났다. 해준은 그래서 결혼을 믿지 못한다. 여름이 선사한 트라우마는 결혼에 대한 무거운 거부감만 만들어냈다. 그 지독한 트라우마로 인해 상처입고 힘겨워하는 그들에게 여름은 어떤 존재였을까?
여름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대학 CC였던 지운에게는 반차를 사용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제훈은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그걸 잊기 위해 다른 여자 만나기에 여념이 없다. 현진은 여름의 죽음은 그저 막막함이었다. 하지만 선 본 여자에게서 지독했던 첫 사랑 트라우마를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여자의 특징이 아닌 상대에 대한 마음일 뿐이라는 것. 햄버거를 못 먹는다고 거짓말을 한 여름은 현진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거짓말이 현진에게는 충격이고 상처였지만, 여름은 현진을 너무 좋아해 잘 보이고 싶어 거짓말을 했을 뿐이었다.
휴가를 가기 전 제훈이 건넨 돈 봉투. 휴가 비용으로 사용하라는 의미였지만 여름에게는 상처였다. "우리가 무슨 사이인가요?"라며 정확하게 입장을 요구하던 여름에게 "그냥 편하게 만나면 안돼"라고 이야기했던 남자. 그런 남자에게 다시 돌아간 여름은 그 봉투를 통해 마지막임을 감지했다. 자신을 그저 돈 주고 사는 여자 정도로 전락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름은 지난 연애를 통해 성장했다. 하지만 제훈은 결혼 실패 후 오히려 막 사는 삶을 선택했다. 수많은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문어발처럼 많은 여자들을 한꺼번에 사귀는 제훈은 여름의 말처럼 '실패를 나아가는 성장판으로 삼지 못했다' 그저 자기 합리화는 존재할 뿐이었다.
어린 시절 만났던 현진을 통해 여름은 마음 감추고 내숭만 떨면 아무도 내 진심 몰라준 다는 것을 배웠다. 20살 시절 만났던 지운에게서는 헤어진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가장 오래 사귀었던 해준에게서는 내 욕심 때문에 상대 진심 짓밟으면 벌 받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여름은 자신의 지난 연애를 통해 삶을 배웠다.
여름은 제훈과 같은 자신에게 간만 보고 떠나는 남자들로 인해 내가 상처 받지 않게 치는 울타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여름은 자신의 연애를 통해 삶을 배우고 깨닫고 성찰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총에 맞아 타지에서 숨져가는 그 순간에도 여름은 자신의 지난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 지난 경험을 통해 성장해갔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잘못을 답습하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여름의 추억은 끝을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이들을 통해 성장하는 발판이 되거나 무한 반복하듯 잘못만 답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니 말이다.
담담했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특별했으며 아름다웠다. 대단하지 않아서 더 섬세하고 상처 받기 쉬운 우리의 기억들. 그 기억의 파편들은 그렇게 내 안 곳곳에 퍼져 나를 성장시키거나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너무 일상이라 간과하고 넘기기 쉬운 우리의 그 기억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담은 <한여름의 추억>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성찰을 해가는 이 기억은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되어간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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