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들의 슬픔은 많이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하지만 뭉떵 그려진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우린 스스로 편하기 위해 이런 말들을 하고는 한다. 정작 피해 당사자와 그렇게 남겨진 이들의 진짜 슬픔과 아픔은 단 한 번도 공감하지 못한 채 말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린 그렇게 그 고통마저 소비 시키고 있었다.
아직, 있다;
살아서 고생한 남겨진 이들도 희생자다
비 오는 날 문수는 강두를 찾으러 갔다. 공사장 야간 근무를 하는 강두를 찾아 나선 문수. 강두는 야간 순찰을 하다 한쪽이 무너진 곳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흙 속에서 보이는 신발은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강두는 제대로 잠도 못잔다.
무너진 건물 속에 남겨진 것은 강두만이 아니었다. 온전하게 그곳에 갇혔던 문수는 구조가 되었지만, 다리를 다친 강두와 건물 더미에 묻힌 또 다른 남자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건물 붕괴 7일차 마지막으로 구조된 이는 강두였다. 무너진 건물에 갇힌 채 강두의 다리를 붙잡고 살려 달라고 했던 그 남자는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두를 괴롭히고 있다.
그 신발이 자신을 붙잡은 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성을 잃고 신발이 묻힌 곳을 파기 시작하는 강두는 문수가 와서 말리는 것도 몰랐다. 정신 없이 신발을 파던 그는 기억을 지배하는 그 남자의 사체가 아님을 알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둑이 무너지듯 비와 강두가 파버린 그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구사일생으로 다른 작업자가 등장해 위기를 모면했지만, 강두와 문수는 보다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문수는 모르지는 두 사람은 이미 함께 붕괴 현장에서 살아났던 인연이었으니 말이다. 애써 그 날의 기억을 가둬 놓고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문수는 그 날의 기억이 너무 두렵다.
악몽 속에서 동생의 마지막 모습에서 언제나 끊기는 그 기억. 그 뒤 기억 속에는 강두가 있다. 강두는 문수를 기억한다. 하지만 애써 그 기억을 깨우지 않고 있다. 나만 홀로 힘든 거 같아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문수를 자신과 같은 고통으로 이끌고 싶지 않다. 강두는 그런 남자다.
마마라 불리는 약장수 할머니와 강두의 인연은 10년 전이다.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풍비박산이 난 집에서 어린 강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사채업자였던 마마를 찾아가 강단있게 1억을 빌려 달라 던 강두. 지금 당장 갚을 수 없지만 꼭 갚겠다는 어린 소년. 그 어린 강두를 마마는 좋아했다. 그렇게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강두가 파괴한 추모비를 다시 세우는 일을 문수와 둘이 진행하고 있다. 추모비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제작비는 확보되었다. 그리고 그 책임자로 강두와 문수가 지정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추모비를 세우기 위해 고민 중이다. 그 와중에 강두는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상만에게서 중요한 깨우침을 얻게 된다.
애완견을 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부정적인 강두와 달리, 상만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 "사람은 그냥 저래야 되는 것야" 인간에 대한 무한 믿음을 보이는 상만의 말에 강두는 머리를 강하게 맞은 듯 멍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추모비의 핵심이 무엇인지 겨우 깨달았기 때문이다.
추모비를 세우기 위해 선결 되어야만 하는 일은 그럴듯한 비석을 적당히 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남겨진 이들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희생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현재를 알지 못하는 한 '추모비'는 무의미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겨진 이들을 찾아다니던 강두와 문수는 사망한 희생자 가족과 마주하게 되었다. 노모를 둔 아들은 일용직으로 일을 하러 간 첫 날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숨지고 말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는 아들이 사망 한지도 모르고 10년 동안 아들이 돌아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숨지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햇볕이 좋은 마당에 나와 아들을 기다려왔다는 노모는 그렇게 홀로 방에서 숨을 거뒀다. 뭔지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담을 넘어 그 집으로 들어선 강두로 인해 더 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장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 끔찍한 현장을 보지 못하도록 막는 강두. 그리고 그런 그의 본심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문수.
남겨진 이들도 희생자다. 살아서 먼저 보낸 가족을 그리워하고 고생한 이들도 희생자라는 강두의 말은 문수에게도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당장 어머니는 여전히 동생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문수 본인도 꿈 속에서나 겨우 만나는 동생이 힘겹다.
문수는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기억마저 봉인해 버린 상태다. 강두는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잠을 자려고 하면 자신의 발을 잡고 살려달라던 그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상을 크게 입은 강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강두는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워 해야만 했다. 그게 남겨진 이에게 주어진 고통이었다.
살아서 다행이었지만, 그래서 지독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남겨진 자들의 아픔은 그렇게 힘들다. 강두를 여전히 괴롭히는 그 남자의 이름은 성재다. 그리고 그 성재는 어린 문수가 좋아했던 첫 사랑 오빠였다. 동생 촬영장에 억지로 따라가야 했던 문수는 그날 만나기로 했던 성재에게 문제의 쇼핑몰 3층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만나자고 했다.
문수가 성재에게 그곳으로 오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문수는 아프다. 그 지독한 기억과 죄책감은 문수가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도록 만드는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강두와 문수, 그리고 성재는 그렇게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마지막까지 함께였다.
강두와 문수의 지독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성재. 그렇게 그들은 점점 강렬한 끌림으로 연결되어갔다. 지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남겨진 자들의 사랑. 그 위태로운 사랑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한다. 불안과 불편함이 자리한 그 지독한 사랑은 10년 전 사과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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