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굳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인 조연출이 사망했다. 촬영 현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힘겨운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인격 모독까지 당하는 상황에서 이 청년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렇게 시간이 6개월이 지나 세상에 이 문제는 언급하고 나섰다.
노동 현장 청년의 죽음;
대표적인 열정페이 요구하는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비인격적 행동 충격은 여전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하는 현장은 힘들다. 보여지는 것은 아름답고 화려하며 재미있게 다가오지만 실제 현장을 한 번이라도 목격한 이들은 절대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노동을 강요하는 현장에서 인권이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노조가 잘 되어 있는 할리우드는 철저하게 촬영 시간을 지킨다. 노동 강도에 걸맞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 케이 팝과 영화, 드라마 등 문화 산업이 큰 성장을 하고 아시아에서 큰 영향력을 끼칠 정도로 성장한 상황에서도 현장은 다르다.
실제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현장은 3D 직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자는 시간도 밥을 먹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한번 작업이 시작되면 출퇴근이라는 개념도 사라진다. 그저 모든 기준은 작품의 완성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엄청난 노동을 강요받고는 한다.
촬영 현장은 말 그대로 꿈을 잡기 위해 모인 청년들에게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다. 말도 안 되는 월급에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을 요구하면서도 그들은 당당하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열정페이를 요구해도 그 자리를 채워줄 수많은 노동자들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tvN의 드라마 <혼술남녀>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혼술 문화가 유행을 타면서 이를 직접적으로 공략한 이 드라마에는 청년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었다. 노량진 학원가 강사와 학생들을 통해 이 시대의 청춘 문화와 문제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현장에서 실제 제작에 참여한 누군가는 지독한 청년 문제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는 현장에서 과도한 모욕과 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인사 불이익까지 당하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한다. 현장에서 괴롭힘도 있었다고 하니, 그가 겪었을 고통의 깊이와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안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지난해 10월 26일 <혼술남녀> 종방 이튿날 숨진 채 발견된 故 이한빛 피디다. <혼술남녀> 제작팀은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첫 방송 직전 계약직 다수를 정리해고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짧아진 촬영 기간은 70분짜리 드라마 2편을 1주일 동안 생방송 하다시피 찍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제작진 감축이 이어지면 당연히 남겨진 이들이 그 모든 역할을 담당해야만 한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을지는 생방송 촬영이 증명한다. 배우들도 힘들지만 수많은 장비와 현장 인원을 통제하고 촬영하는 등 엄청난 일들을 해야 하는 제작진들이 힘들었을 것은 명확하다.
노동 강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현장이 행복해질 수가 없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초보 조연출이었던 故 이한빛 피디는 그 모든 폭력의 희생자였었던 듯하다. 고인의 생사가 확인되기 직전 회사 선임이 부모를 찾아와 근무 태도 불성실에 대해 무려 한 시간에 걸쳐 비난을 했다 한다.
고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 뒤 몇 시간 뒤 이한빛 피디의 죽음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촬영 현장의 불성실함을 따진 그들과 달리, 고인이 남긴 기록들을 보면 오히려 지독할 정도로 고통을 받아왔음이 드러났다. 고인의 동생이 확인한 형의 흔적들은 고통 그 이상이었다.
"형이 남긴 녹음 파일, 카톡 대화 내용에는 수시로 가해지는 욕과 비난이 가득했다"
고인의 동생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들 중 일부만 봐도 현장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알 수 있게 한다. 고인이 남긴 녹음 파일과 카톡 대화 내용에서 드러난 욕과 비난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초보일 수밖에 없는 신입 조연출이 현장에서 맞아야 했던 비이성적인 인권 파괴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 피디는 회사의 '근태 불량' 주장과 달리 현장에서 특정 시점 이후 딜리버리 촬영 준비, 영수증 정리, 현장 준비 등 팀이 사라질 경우 그 업무를 모두 일임하는 구조에서 일했다고 주장했다. 이 일들은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영수증 정리 하나만 해도 하루에 나오는 수많은 증비 서류 정리도 만만치 않은 일이니 말이다.
모든 촬영 현장이 이렇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좋은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행복하게 촬영을 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온갖 모욕을 참아가며 열정페이를 요구 받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엄청난 수익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빛 뒤에는 다수의 비정규직의 고혈을 짜내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재벌들의 수익 창출과 동일한 방식의 이 노동 착취는 영화나 드라마 등 문화 산업 전반에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연극영화학과는 그 어느 곳보다 군기가 쎄다. 군대도 아닌데 군대보다 더 한 곳도 많다. 함께 모여 작업하는 경우가 그 어느 학과보다 높기 때문에 선배들의 군기는 엄청나다. 폭력은 일상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는 현장으로 진출한 후에도 바뀔 수가 없다. 더욱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 현장은 열정 페이를 요구하기만 한다.
꿈을 꾸는 이들에게 그 꿈이 담보가 되어 현실의 본인을 파괴시키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폭력이다. 드라마 <혼술남녀>의 故 이한빛 피디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더는 유사한 일들이 벌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린 고인의 죽음을 보다 심각하게 바라봐야만 한다. 그 청년의 극단적 선택은 단순히 그만의 문제가 아닌 노동 착취가 기본적인 구조가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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